제30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기자는 18일 뇌병변 장애 1급의 박계형(29)씨와 함께 저상버스를 20분 가량 탔음에도 마치 오지를 여행 하는 것처럼 힘겨웠다.
2007년 도입해 현재 전국적으로 2천700여대가 운행하는 저상버스에는 장애인이 휠체어를 탄 채 편리하게 차에 오를 수 있도록 차체 바닥이 낮고 출입구에 계단 대신 경사판이 설치돼 있다.
이날의 '과제'는 지하철 4호선 수유역 인근 정류장에서 저상버스를 타고 혜화로 터리까지 가면서 장애인들의 이동에 불편을 주는 문제점이 없는지를 점검하는 것.
박씨와 함께 그의 사무실에서 나와 버스 정류장까지 500여m를 가는 과정에 벌써 온갖 걸림돌이 발견돼 시련이 시작됐다.
울퉁불퉁한 보도블록과 거리에 쌓아놓은 가게의 짐, 그리고 가로수 하나하나가 휠체어에 의지해 이동하는 장애인에게는 장벽이었다.
인도와 차도를 오가는 위험한 '곡예운전' 끝에 간신히 정류장에 도착했고, 다행히 5분 만에 저상버스 한 대가 왔지만, 박씨를 20여m 지나 멈춰섰다.
그러나 버스는 박씨의 황급한 손짓을 무시하고 그냥 '부웅' 엔진 소리를 내고는 가버렸고, 박씨와 옆의 기자는 멀뚱멀뚱하니 버스의 뒷 모습만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10여 분을 더 기다려 5∼6대가량의 일반 버스를 보내자 다행히 다른 저상버스가 제위치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무사히 경사판이 내려왔고, 5분여의 조심스러운 노력 끝에 탈 수 있었다.
박씨는 "낮에는 그나마 태워주는데 출ㆍ퇴근 시간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버스가 그냥 간다"며 "설령 버스가 제대로 서서 타려고 해도 사람들이 아예 안 비켜준다. 말그대로 지옥이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정작 박씨를 힘겹게 한 것은 버스가 아닌 사람이었다.
박씨가 버스를 타는 데 5분여간 걸리자 뒤에서 출발하지 못하던 다른 버스가 수 없이 경적을 울려 박씨를 불안하게 했고, 탑승객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못해 적대적 이었다.
버스 안 모자를 쓴 2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은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버스로 갈아탈 걸 그랬나"라며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투덜거렸고, 빈자리를 찾던 50대 아주머니는 "왜 나와서 불편하게 하냐"는 불평을 툭 던지며 지나쳤다.
박씨는 "버스 안에서 사람들이 수군대는 건 하도 많이 겪어서 무덤덤하지만, 직설적으로 '사람들 불편하게 왜 나왔냐'고 말할 때는 솔직히 기분이 안 좋다"고 털어놨다.
이 버스의 운전기사는 "장애인이 지켜보는 사람이 많으니까 당황해서 경사판을 급히 오르다가 사고가 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가까스로 자리를 잡았지만, 고통은 이어졌다.
의자를 접고 생기는 빈 공간에 휠 체어를 고정해야 하는데, 눈을 감고 조는 사람들이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 이다.
우물쭈물하던 박씨는 주변을 살펴보고는 "어차피 버스 양쪽의 휠체어 고정 장치가 수동 휠체어용이어서 저처럼 자동 휠체어는 아예 고정할 수 없네요"라며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2시께 버스는 혜화로터리에 도착했다.
겨우 20여분간의 탑승이었지만 박 씨는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박씨는 "경사판이 생각보다 잔고장이 잦아 설치만큼 관리도 중요하다"라며 "아직은 저상버스가 충분히 보급되지 않아서인지 배차 간격도 긴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시민의식이 제일 중요하다.
G20 정상회의도 하고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 다고는 하는데 장애인을 바라보고 대하는 시선도 바뀌어야 할 것 같다"라고 호소했다.
성신여대 이승기 복지학과 교수는 "이동권은 사람의 행동, 인식, 사회생활을 좌우하는 것으로 장애인에게 핵심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권리 중 하나다. 아직 부족한 인프라나 인식은 우리 모두 극복해야 할 과제다"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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