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근친 성폭력, 감춰진 진실'…여성 억압이 낳은 잔인한 현실

미국 하버드 의대 정신의학과 교수 주디스 루이스 허먼은 1975년부터 4년간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성학대를 당한 여성 40명을 만나 면담한 결과, 근친 성폭력의 실상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허먼 교수가 이 면담을 바탕으로 1981년 내놓은 책 '근친 성폭력, 감춰진 진실'(삼인 펴냄)은 근친 성폭력의 실태를 파고든 연구서로, 20년간 이 분야에서는 교과서처럼 여겨져 왔다.

근친 성폭력의 원인과 현상, 결과를 하나씩 파헤쳐 나가는 저자는 근친 성폭력의 바탕에 가부장적인 남성우월주의와 여성 억압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아버지의 억압적 지배가 강하고 어머니가 무력한 가정에서 딸들이 성적으로 희생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면담 여성들의 반은 중산층, 나머지 반은 노동자 가정 출신으로, 대부분 아버지를 '완벽한 가장'으로 묘사했다. 이 아버지들은 밖에서는 멀쩡한 사람으로 평가받았고, 경제적으로 가족을 잘 부양했다.

그러나 이들 가정에는 남성우월주의가 팽배했다. 아버지는 아내와 딸의 생활 전반을 통제했고 부모라면 어린 자녀에게 조건 없이 제공해야 마땅한 양육과 보호를 빌미로 딸의 심신을 옭아맸다

어머니의 자리는 좁았다. 많은 어머니가 경제적, 심리적으로 의존적이었고 연속된 출산을 강요당해 지쳐 있었으며 딸을 보호하지 못했다. 남편의 성폭행 사실을 애써 외면하거나 묵인하는 사례도 있었다.

딸들은 무슨 일인지도 깨닫지 못한 나이에 처음 피해를 봤으며 그로부터 벗어날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자라났다. 미처 성인이 되기 전에 가출, 결혼, 출산 등을 시도했고 성인이 돼서도 우울증과 낮은 자존감, 기억장애 등 정신적 외상에 시달렸다.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기에는 바깥 사회도 가부장적인 곳이라는 점도 문제였다. 피해 아동이 어렵게 신고했는데 당국은 아버지의 관심을 받으려는 철없는 행동으로 넘겨버린 사례도 있었고, 여러 여성이 냉랭하거나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법기관에서 움츠러들었다. 가해자인 아버지들은 외부에 사실이 발각됐을 때 대부분 잘못한 게 없다고 발뺌했다.

저자는 근친 성폭력의 근본 원인을 여성 억압에 두는 만큼 근절 대책도 근본적인 여성 해방에서 찾는다. 근친 성폭력 자체를 외면하려는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 것, 남성 지배와 여성 복종의 심리를 만들어내는 가정 환경을 변화하는 것 등이다.

박은미, 김은영 옮김. 452쪽. 2만2천원.

(서울=연합뉴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