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D라고 해서 모든 강연이 다 감탄할 정도로 훌륭한 건 아니다. 강연들마다 편차가 있다. 지나치게 미국-서구 중심적이거나, 별로 흥미가 느껴지지 않는 강연들도 있다. TED에 대한 기대가 엄청나게 컸던 나로서는, 직접 가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는 별로라는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실제로 본격적인 세션이 시작됐던 2월 10일, 몇몇 세션을 듣고 난 소감은 'TED, 뭐 그렇게 대단하지만은 않네' 였다. 현재 내가 소속된 미래부에서 기획하는 서울디지털포럼도 강연 내용이나 연사들의 면면에 있어서 크게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2월 10일 마지막 세션 'Action'에서 내 판단이 너무 성급했다는 생각을 했다. 올해의 TED Prize 수상자인 제이미 올리버가 등장한 세션이었다. 제이미 올리버는 영국의 스타 요리사이자 사회 운동가이다. 그의 강연은 현재 미국 어린이들이 먹고 있는 음식이 얼마나 건강에 안 좋은 것인지를 일깨우고, 어린이들에게 제대로 된 음식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자는 내용이었다.
올리버는 각종 수치와 예를 들어가며 건강한 식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TEDtalk가 이뤄지는 18분 동안에만 미국인 4명이 음식과 관련된 질병으로 사망하며, 미국 성인의 3분의 2가 과체중이거나 비만이며, 식습관 관련 질환이 미국인 사망 원인 가운데 1위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런 수치보다 더욱 강력한 건 '직접 보여주기'였다. 한 비만 가족이 1주일 동안 먹는 엄청난 양의 패스트푸드, '내가 이런 음식들로 아이들을 죽이고 있었다'며 눈물 짓는 어머니,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져 신선한 채소의 이름을 모르는 어린이들이 영상으로 소개됐다. (토마토를 감자라고, 가지를 배라고 대답하는, 음식에 무지한 영국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우리 아이들은 음식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새삼 궁금해졌다.)
압권은 올리버가 우유에 얼마만큼의 설탕이 들어가는지 보여주겠다며 설탕을 수레에 한 가득 싣고 나와 '하루면 여덟 스푼, 1주일이면 이만큼, 한 달이면 이만큼…..' 하는 장면이었다. 그는 마지막 한 수레 분량 설탕을 모두 바닥에 쏟아 부으며 '어린이 한 명이 초등학교 다니는 동안 우유에서만 이만큼의 설탕을 먹고 있다'고 소리 높였다. 그는 이런 상황은 누구라도 '아동학대'로 판단할 것이라고 역설했고, 객석에서는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는 제대로 성분 표시를 하지 않는 식품업계를 질타하고, 건강에 좋든 안 좋든 그저 판매에만 여념이 없는 대기업들을 질타했다. 그는 학교와 지역 사회에서부터 음식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모든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건강한 음식 요리법 10가지를 필수적인 생존기술로 익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인인 제이미 올리버가 왜 미국에 와서 이런 얘기를 할까? 그는 자신 역시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이며, 미국을 사랑하며, 미국에서 변화가 일어나면 다른 나라들에도 이 변화가 확산되기 쉬울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자신이 TED에 서게 된 게 이런 변화를 촉발시킬 수 있는 큰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청중들을 쥐락펴락하던 그가 마지막으로 밝힌 'TED Prize Wish'는 이런 것이었다. "모든 어린이들에게 음식에 대해 가르치고, 각 가정에서 다시 요리를 시작하고, 전세계인들이 비만과 싸울 수 있도록, 여러분의 도움으로 강력하고 지속적인 운동을 펼치는 것."
이어서 테드 큐레이터인 크리스 앤더슨이 나와 '이 소원을 이루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해 봤습니다' 하더니, 사무실 공간과 집기, 이동식 조리차량, 창의적인 교육 자료, 미디어의 관심, 웹사이트, 정직한 성분표시제를 실시하는 기업의 후원 등등 구체적인 예를 들었다.
"자, 여러분은 어떻게 도와주시겠습니까?"
청중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버스와 트럭을 제공하겠다는 사람, 뉴욕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데 캠페인에 참여하겠다는 사람, 만 달러를 기증하겠다는 사람, 의회에서 영향력 있는 정치인 친구를 소개시켜 주겠다는 사람, 웹사이트를 만들어주겠다는 사람, 어린이 잡지에 관련 내용을 싣겠다는 사람, 마케팅 연구소에서 일하는데 무료로 시장 조사를 해주겠다는 사람……. 여기저기서 다양한 제안들이 쏟아졌다. 모두 자기 위치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아. 이 때가 진정 올해 TED의 하이라이트였다. 객석 뒤편에 앉아서 이 광경을 지켜보다가 나는 어느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 순간, TED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려는 열정으로 넘쳤고, 이 열정은 객석에 앉아있던 청중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미국 아이들의 비만에는 별 관심 없던 나까지도, 주체할 수 없는 감동에 빠뜨렸던 것이다. 모니터를 통해 이 광경을 봤던 이정애 기자도 눈물이 났다고 했다. 왜 TED Prize wish를 '세상을 바꾸는 소원'이라고 하는지 실감했다.
(강연이 끝난 후 우리는 제이미 올리버를 인터뷰했다. 이 얘긴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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