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당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정치부 기자들도 팀원 전체가 짐을 싸들고 전당대회장으로 이동하는 게 보통이다. 하루종일 중계차 연결하고 저녁 뉴스 만들고 하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지경이다. 특히 전당대회장의 쩌렁 쩌렁 울리는 음악소리와 구호 소리에 묻혀있다 보면 정신까지 멍해진다.
지난 17일 자유선진당이 첫 전당대회를 열었다. 잠실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 도착하자 벌써 사람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평소 같으면 북적 거렸을 취재진은 상대적으로 덜해보였다. 각 사별로 1명 정도가 전부였다. 당 지도부 선출을 놓고 치열한 취재전도 없었다.
왜 그랬을까?
당 대표 1명 선출에 후보 1명, 최고위원 5명 선출에 5명 출마... 한마디로 불꽃튀는 당권경쟁이나 진검승부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행사였다. 결과가 예상되다보니 기자들도 그저 기다리면 될 뿐이었다.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아무래도 맥이 빠지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당원들만은 한껏 흥이 오른 모습이었다. 축제다웠다. 식순에 따라 최고위원 후보들이 하나 둘 단상에 오르고 열띤 정견 발표가 이어졌다. "18대 총선에서 18석 했다고 19대 총선에서 19석 얻겠습니까, 190석 해냅시다!!!" 힘 실린 목소리에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정견 발표가 끝나고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투표가 시작됐다.
많게는 수천명이 투표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야 하다보니 어느 전당대회나 이 대목에서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보니 어느 당이나 당원과 대의원들을 위해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는 게 보통이다.
아니나 다를까 힘찬 북 공연과 함께 사회자의 입담이 이어졌다. 평소 같으면 투표 결과 취재를 위해 개표장 주변을 기웃 거렸을 취재진들도 당원, 대의원들과 함께 공연과 입담을 즐겼다. 전당대회 취재하면서 흔치 않을 경험이었다.
최고위원 선출이 끝나자 곧바로 대표 선출이 이어졌다. 마지막 총재의 환송식... 이회창 총재가 단독 후보로 출마하자 대의원들의 만장일치 박수로 '대표'로 선출됐다. 사실상 추대라고 봐야 하지 않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가부결정을 물은 만큼 '선출'이라는 게 당 대변인실의 설명이었다.
선출을 알림과 동시에 축포가 터지고 당원과 대의원들의 환호성이 울렸다. 흔히 말하는 전당대회의 '클라이맥스'(climax)다. 곧바로 취임인사 (당에 따라서는 대표직 '수락연설'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가 이어졌다. 지방선거를 앞둔 만큼 전국정당화와 세종시 문제 해결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이회창 '대표'의 선출은 기자들에게도, 또 여의도 정가에도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이번 선진당의 전당대회로 한국 정치사에 파란 만장한 기록을 남겼던 '총재'가 사라졌다. 한 때 제왕적이자 독단적 이미지의 상징이었던 '총재'라는 직함도 '마지막'이라는 말에 묘한 여운이 남았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향수라고 해야할까...
전당대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악수를 나누는 이회창 '대표'의 얼굴에도 총재직을 떠나보내는 시원 섭섭한 표정이 언뜻 스쳤다.
전당대회가 끝나고 나자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불이 꺼지고 단상에서는 어느 새 해체 작업이 한창이었다. 불꺼진 공연장에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그런 분위기다. 활기 넘친 뒤의 텅빈 모습이란 으레 조금 쓸쓸하기 마련이다. 그걸 끝까지 지켜보는 사람은 누굴까?
단상정리를 해야 하는 작업자들과 뒷정리를 해야하는 당직자, 그리고 망치 소리를 들으며 기사를 마무리해야하는 기자들이다. 나름 화려한 무대 뒤를 볼 수 있는 선택받은 직종이라고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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