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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되면 막가자는 거죠"

'말 한마디로 천냥빚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사람사는 사회에서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요즘 바로 이 '말'의 파괴력을 실감케 하는 일이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른 바 '강도론'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9일 충청북도를 방문해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우리는 사실 세계와 경쟁하고 있다. 더 심하게 이야기하면 이  위기 속에서 서로 살아남으려는 전쟁을 하고 있는 것과 같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끼리 싸울 시간도 없고 여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세계와의 전쟁이기 때문에 모두가 이기려면 힘을 모아야 한다"며 "가장 잘되는 집안은 강도가 오면 싸우다가도 멈추고 강도를 물리치고 다시 싸운다"며 대선 경선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표 진영에 대해 내부분열을 자제하자는 취지로 언급했던 이른바 '강도대처론'을 다시 언급했다.

또 "세계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런 시기에 멈칫 멈칫할 시간이 없다"면서 "먼저 출발하는 곳이 지원을 받을 것이다. 연구를 하지 않는데 지역안배 차원의 나눠갖기식 지원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자신은 일 잘하는 사람을 밀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말 한마디에 정치권이 다시 한번 요동쳤다. 다음날인 10일 박근혜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강도대처론에 대해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백번 천번 맞는 말이지만 집안에 있던 한 사람이 강도로 돌변하면 어떻하느냐"고 반문했다. 경제위기와 지역갈등 같은 내우외환을 극복하기 위해 여권이 힘을 합쳐야할 상황에서 오히려 계파간 분열을 조장한 것은 세종시 수정안을 들고 나온 청와대측에 있다고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박 전 대표는 또 '일 잘하는 사람을 밀고 싶다'는 이 대통령의 말이 결국 차기 대권구도를 염두에 둔 것 아니겠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일 잘하는 사람에 대한 판단은 국민이 하는 것"이라며 불쾌감을 나타냈다.

청와대는 부랴부랴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며 진화에 나섰다. 청와대 김은혜 대변인은 일 잘하는 사람을 밀겠다는 것은 여야를 떠나 지역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지자체장에게 어떤 지원도 아끼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또 '강도대처론'에 대해서도 세계 경제위기가 끝나지 않았고 유럽발 금융위기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내부 갈등이나 정쟁을 일으켜선 안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조심스런 대응은 채 하루가 가지 않았다. 청와대측이 박근혜 전 대표에게 해명과 사과를 공식 요구한 것이다. 대선 경선과 총선 공천, 쇠고기 사태 등 국면마다 갈등을 빚어왔지만 청와대가 이렇게 공식 사과를 요구하기는 처음이었다.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은 박근혜 전 대표를 박 의원이라고 지칭하면서 10일 발언에 대해서는 적절한 해명과 공식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못박았다. 또 "박 의원측이 앞뒤 선후관계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국정을 위해 일하는 대통령을 폄하하는 발언을 했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박 전 대표측이 '원론적 발언'이었다고 해명하는 것은 온당하지도, 적절치도 못하고, 황당하다"면서 "최소한 대통령에 대해 기본적인 예의를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날과는 확인히 달라진 청와대의 대응을 놓고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박 전 대표 발언이 너무 나갔다"는 이 대통령의 뜻이 반영된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박근혜 전 대표는 대변인격인 이정현 의원을 통해 "그 말이 문제가 있으면 문제가 있는대로 처리하면 될 것 아니냐"고 말했다. 사실상 청와대의 사과요구를 거부한 것이다. 말을 전한 이정현 의원도 "박 전 대표가 사과할 일을 한 게 뭐냐"고 되물다. 이 의원은 청와대도 그제 대통령 발언이 박 전 대표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했고 박 전 대표 또한 누구를 겨냥해서 한 게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비서실장격인 유정복 의원도 박 전 대표가 말한 취지는 그 동안 세종시를 원안대로 추진한다는 걸 모두 당연하게 생각해오다 어느날 갑자기 총리가 세종시 수정을 주장하고 당 지도부까지 가세하게 되니, 이렇게 입장이 돌변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뜻을 국민들에게 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의도 주변에서는 친이-친박 간 갈등이 이제 갈 때까지 간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오가는 발언의 수위도 당내 의견대립의 수위를 넘어섰다는 평이다. 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대로 "이쯤되면 막가자"는 것 같다. 하지만 한나라당 내 계파간 갈등은 6월 지방선거와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제부터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신념을 앞세운 정치적 대결도 좋지만 정권을 맡겨둔 국민은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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