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에 있을 때는 늘 보면서 무심하게 넘기던 장면인데 막상 이렇게 사진으로 다시 보니까 기분이 달라집니다. 아이티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위 사진속 차를 아이티 사람들은 '땁땁'이라고 부릅니다. 분명히 트럭을 개조한 것인데, 아이티 사람들에게 이 차는 일종의 시내버스입니다.
위 사진속 땁땁은 2층 버스가 되는 셈이죠. 그나마 상태가 훌륭한 버스입니다.
대개는 이런 소형 땁땁이 많이 다니더군요. 내릴 때는 운전기사쪽에 앉은 사람을 통해 기사에게 신호를 보내 차를 정차시키고, 탈 때는 모퉁이나 사람 많은 곳에서 차의 속도가 느려지면 그냥 껑충 뛰어오릅니다. 지진으로 폐허가 된 거리를 무심히 걷는 사람들, 땁땁에 앉아 시선 둘 데가 마땅치 않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시 떠오릅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아이티에 머물며 가장 많이 본 장면입니다. 곳곳에 무너진 건물들, 그 앞을 오가는 아이티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들... 도대체 지진의 강도가 얼마나 컸길래 저런 집들이 버텨내지를 못했을까요? 혹자는 아이티의 경제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집을 지을 때 철근을 제대로 넣지 못해 그랬다는 분석을 내놓던데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대통령궁만큼은 제대로 짓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나던데, 대통령궁마저 무너진 것을 보면 ... 반면에 미국 대사관이나 캐나다 대사관은 끄덕없이 건재하더군요.
** 아이티에 일주일 있는 동안 저도 5차례 지진을 경험했습니다. 한 번은 6.1의 강한 지진이었고요(이 때는 의자에서 자고 있었는데요, 깜짝 놀라 일어나다가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나머지도 대부분 5도를 전후한 중량급이었습니다. 특히 마지막으로 지진을 경험했을 때가 기억이 나는데요, 호텔 빌라 크레올에서 방 하나를 노숙하던 이들에게 샤워용으로 개방을 해줬습니다. 한 사람씩 들어가서 샤워를 하고 나오면 그 다음 사람이 열쇠를 받고 들어가는 식이었습니다. 샤워를 하기 위해 옷을 벗다가 팬티를 막 벗으려던 찰나에 문이 흔들리고 창문이 깨질 듯한 소리가 나 그냥 뛰쳐 나갔습니다. 팬티 차림으로.. 문밖의 사람들도 비명과 함께 무작정 뛰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몇 초후 흔들림이 멈추고 사람들도 평상을 되찾았을 때, 다시 방으로 돌아가는 거리가 좀 길어서 뻘쭘했었습니다. 그 뒤로는 저 역시 아이티 사람들처럼 건물 안에 들어가는 것을 피하게 됐습니다. 지진, 막상 경험해 보니까 무섭고 공포스러운 대상임에는 틀림 없었습니다.
119 구조대원들의 상황실을 빌려 쓰던 기자들의 모습입니다. 이 사진이 있는 걸 깜박했습니다. 제가 떠나기 이틀 전쯤 현지에 합류한 LA 김도식 특파원(녹색 티)과 영상담당 제이슨(가운데 덩치 큰)의 모습이 사진 중간에 잡혔습니다.
무선 인터넷을 통해 화면과 사진들을 전송했는데, 한꺼번에 몰리다 보니 인터넷이 자꾸 끊긴다거나 전송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져 모두들 애를 태우곤 했습니다.
SBS 워싱턴지국과 LA 지국의 영상을 책임지는 두 사람이 저를 보고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모두들 고생이 많았습니다.
미군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두 명의 한국 사람입니다. 와이셔츠를 입은 사람은 외교부 정참사관이고, 여군은 현재 아이티에 유일하게 파병된 대한민국 평화유지군 이선화 소령입니다.
이소령은 119 구조대의 활동장소를 직접 정해주는 등 현지에서 한국 지원팀의 대표자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제가 가장 먼저 인터뷰를 하면서 취재를 시도했는데, 몇마디 한 뒤에는 한사코 얼굴을 가리며 안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저녁에 다른 방송사 뉴스에는 모두 등장했다는 소식을 나중에 듣기도 했습니다. 하여튼 저도 인터뷰는 했습니다.
도미니카와의 국경지역에 위치한 조그만 시장의 모습입니다. 지진이 나도, 17만명이 목숨을 잃어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법이죠. 시끌벅적한 모습이 우리나라 시골 장터를 방불케 했습니다.
도미니카에서 아이티로 접어들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아이티의 모습이 바로 이 호수입니다. 불행히도 저를 안내했던 아이티 친구가 이 호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이름은 알 수 없습니다만 아주 큰 호수였습니다. 바다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죠. 물빛도 청명했고요. 하늘을 그대로 담은 호수의 평온함이 생지옥 같았을 지진현장과 대조적이었습니다. 6개월이 됐든 , 1년이 됐든 아이티 지진 현장을 다시 찾았을 때 사람들의 모습도, 포르토프랭스의 모습도 저 호수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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