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의 정기공연 '신데렐라'를 봤다. 몬테 카를로 발레단을 이끄는 프랑스 태생의 천재 안무가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가 안무한 작품이다. 지난 2005년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내한공연, 지난해 국립발레단의 정기 공연으로 이미 접했던 작품이지만, 세 번째 봐도 여전히 재미있는 작품이다. 더구나 이번에는 은우와 함께 봤기 때문에 더욱 새로웠다.
은우는 사실 요즘 나와 함께 공연 보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이제 확실한 자기 취향을 갖게 돼서 엄마가 좋아하는 공연은 마다할 때가 많다. 게다가 엄마 따라다니며 만나는 어른들로부터 '어머, 네가 은우구나' '정말 많이 컸구나' 이런 얘기들을 듣는 게 지루한 나이가 된 것 같다. '어린애 취급'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은우는 '신데렐라'를 발레로 본다는 말에 약간의 호기심이 동한 듯 나를 따라 나서긴 했지만 공연장인 예술의 전당에 도착하고 나서는, '괜히 왔어. 내일이 개학인데 그냥 집에서 쉴 걸' 하고 투덜거렸다. 뭐가 마음에 안 들었을까. 개학 스트레스 때문에 그럴까. 나는 은우에게 '이 공연은 보통 '신데렐라'하고는 달라. 죽은 신데렐라 엄마가 요정이 돼서 나와. 재미있겠지?' 했으나, 별 반응이 없었다. 은우가 어떻게 반응할지, 약간 걱정스러운 가운데 공연이 시작됐다. 다음부터는 은우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구성해본 '감상기'다.
"엄마, 이게 뭐야? 이게 발레야? 무용이야?"
은우는 막이 오르고, 신데렐라가 죽은 엄마를 그리워하며 행복했던 지난날을 회상하는 장면에서는 가만히 보고 있더니, 계모와 두 딸이 등장해 '우아한 고전발레'와는 거리가 먼 춤과 우스꽝스러운 연기를 선보이자 이렇게 속삭였다. 그러고 보니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같은 발레 작품들만 본 은우에게 마이요의 '신데렐라'는 많이 파격적인 작품이었을 터이다. '발레 맞아.' 했더니, 은우는 고개를 갸우뚱 한다.
"엄마, 쟤 누구야?"
처음 요정이 등장할 때 은우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궁금해 했다. 이 작품에선 신데렐라 친엄마가 요정이 돼서 나온다고 미리 얘기해 줬지만, 그래도 몸의 선을 그대로 드러내는 반짝이 쫄쫄이 의상을 입고 나온, 섹시한 요정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나 보다. 이 요정은 드레스와 구두, 마차만 마련해 주고 마는 대모 요정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극의 진행에 개입한다. 좀 과장한다면 요정의 손짓에 따라 모든 일이 진행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신데렐라는 맨발이네?"
토슈즈를 신고 있는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신데렐라는 맨발이다. 동화 속 유리 구두 대신 요정이 입혀준 금가루가 영롱하게 빛나는 이 맨발은 순수함을 상징한다. 신데렐라의 맨발은 꾸밈없는 순수함에 대한 찬양이요, 그 동안 토슈즈 안에 갇혀 혹사당했던 발레리나의 발에 대한 헌사이기도 하다. 왕자는 신데렐라의 반짝이는 맨발에 반해 버린다. 왕자의 지위를 상징하는 황금빛 자켓을 벗어 던지고 신데렐라와 대화를 나누는 왕자. 일국의 왕자가 부엌데기 신세 신데렐라의 '맨발'에 반한다는 설정은 흥미롭다.
"남자들이 왜 이렇게 바보 같아?"
신데렐라 아빠는 사랑하는 친딸이 계모와 그 딸에 치여 부엌데기가 돼버리는 걸 '방치'한다. 요염한 계모한테 넋이 나갔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저럴 수가. 이 무심한 아빠는 신데렐라를 남겨둔 채, 계모와 그 딸들과 함께 무도회장에 간다. 계모의 잔소리를 듣기 싫었을까. 수동적인 식물성 아빠다. 왕자도 별로 똑똑해 뵈진 않는다. 요정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신데렐라를 못 찾았을 것이다. 이에 비하면 여자들이 훨씬 더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다. 요정은 모든 사건을 '총지휘'하는 사령관이다. 신데렐라도 풀 죽은 부엌데기만은 아니다. 왕자와 다시 만났을 때 신데렐라가 먼저 적극적으로 키스하는 장면을 보라. 계모와 두 딸도, 악역이긴 하지만 남자들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다. 은우는 '계모는 왜 남자마다 다 꼬시는 거야?' 하고 웃었다.
"히히!, 엄마, 성형 수술 했대."
왕자는 자신이 반했던 '맨발'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들고 신데렐라를 찾아 세상을 헤맨다. 왕자는 결국 성형수술로 검게 멍든 신데렐라 새 언니의 발과 대조적으로, 순수하게 빛나는 신데렐라의 맨발을 찾아낸다. 은우는 이 장면이 시작될 때 스크린에 '성형수술로 멍든 발들 사이에서'라는 자막이 떠오르는 걸 보고는 킬킬 웃어댔다. 이 발레의 유머를 좀 터득한 모양이다. 마이요의 작품에는 곳곳에 이런 유머가 숨어 있다. 계모와 그 딸들, 집사들이 등장하는 장면에는 더더욱.
"엄마, 아까랑 똑같아."
맨 처음 신데렐라의 회상 장면에서 신데렐라의 엄마는 흰 드레스를 입고 아빠와 함께 춤춘다. 엄마의 죽음 이후, 신데렐라는 엄마가 입던 흰 드레스를 부여잡고 눈물 흘린다. 신데렐라가 무도회에 입고 가는 의상도 단순한 디자인의 흰 드레스다. 자연스럽고 순수한 느낌이다. (무도회 참석을 위해 패션쇼를 벌이는 계모와 두 딸은 의상도, 머리 모양도, 과장되고 일그러진 느낌이다. 무도회에 참석한 다른 아가씨들도 각기 과장된 헤어 스타일을 자랑한다.)
요염한 계모한테 잡혀 살던 신데렐라의 아빠는 신데렐라를 왕자와 이어주는 요정을 보고는 죽은 아내를 다시 떠올리며 그리워한다. 계모의 유혹을 거부하고, 엄마의 흰 드레스를 부여잡고 눈물 흘리는 아빠. 맨 처음 신데렐라가 하던 동작 그대로다. 은우는 '엄마, 아까랑 똑같아' 하고 반색을 했다. 요정은 흰 드레스를 입은 엄마의 모습으로 다시 아빠 앞에 나타나고, 두 사람은 사랑의 춤을 춘다. 수미상관!
'이건 신데렐라 엄마의 한풀이야'(이건 내 생각)
흰 드레스를 입은 엄마의 모습으로 다시 아빠 앞에 나타난 요정은 아빠와 함께 사랑스런 2인무를 추다가 아빠의 품에서 '다시' 숨을 거둔다. 무대 오른편, 왕자와 결혼하는 신데렐라 머리 위로 황금비가 쏟아진다. 그러고 보니, 이 발레는 신데렐라 엄마의 '한풀이'였던 것이다. 병으로 일찍 죽은 신데렐라 엄마는 풀지 못한 한이 너무 커서 요정으로 다시 나타난 것이다.
신데렐라 엄마는 요염한 계모에게 정신 빠져 하나밖에 없는 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남편을 남겨놓고는 도저히 편한 마음으로 하늘나라로 올라갈 수 없었을 것이다. '정신 빠진 남자 같으니. 어디서 여자를 골라도 저런 여자를 골라! 저래 가지고 딸 시집이나 제대로 보낼 수 있겠어' 이런 심정 아니었을까.
요정으로 변신한 엄마는 사랑하는 딸 신데렐라를 왕자와 짝지어주는 데 성공한다. 또 관능적이고 신비로운 자태로 남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요염한 계모에 빠졌던 남편의 마음을 돌려놓아 남편과 못 다한 사랑을 나눈다. 이렇게 보면 이 작품은 신데렐라가 아니라 신데렐라 엄마가 주인공인 셈. 이렇게 해석하는 건 나 역시 엄마이기 때문일까.
몬테 카를로 발레단에서 신데렐라 엄마/요정 역을 맡았던 발레리나는 마이요 작품의 '여신'인 베르니스 코피에테스. 키가 180센티미터에 이르는 베르니스는 관능적이면서도 성숙한 어머니의 이미지를 독특하게 소화해 냈다. 마이요는 가냘프고 체구 작은 발레리나보다, 키 크고 당당한 체격의 발레리나를 선호한다. 그의 작품 속 여성상에 어울리기 때문이다. 국립 발레단에는 사실 베르니스 같은 이미지의 발레리나는 없다. 하지만 아쉬운 대로 국립발레단의 '베테랑'인 김지영 씨가 엄마 역을, 그리고 떠오르는 신예인 박슬기 씨가 신데렐라 역을 한 것은 적절한 캐스팅이었다.
"엄마, 되게 현대적이다. 그지?"
발레가 끝날 무렵, 내가 얘기해 주지 않았는데도, 은우는 자기의 판단에 따라 이 작품을 '현대적인 발레'로 결론 내렸다. 그렇다. 마이요의 '신데렐라'는 현대적이다. 마이요는 고전을 비틀어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새롭게 창조했다. 무용수들의 춤 동작이나 얼굴 연기는 변화 무쌍, 고전 발레의 틀을 벗어났다. 하체 동작은 고전 발레의 테크닉에서 비교적 많이 벗어나지 않는 느낌인데, 상체 동작은 아주 다양하게 변주된다.
무대나 의상, 조명도 무척 현대적인 느낌이다. 흰 색 패널 몇 장에 빛을 입혀 표현하는 무대는 단순하면서도 큰 인상을 남긴다. 이 패널들은 배치와 조명에 따라, 펼쳐진 동화책장도 됐다가, 흰 돛단배도 됐다가, 무도회장도 됐다가, 다채로운 변화를 보여준다.
'신데렐라'는 '로미오와 줄리엣'(1996년 초연. 국내 초연은 2000년) 이후 다시 '마이요 사단'이 뭉친 작품이다. '자유로운 상상력의 의상 디자이너 제롬 카플랑, 가장 심플하면서도 아름다운 무대를 연출하는 에른스트 피뇽-에른스트, 빛으로 사랑을 그리는 도미니크 드리요가 안무가 마이요와 뭉쳐 만들어낸 또 하나의 걸작'이라는 홍보 문구가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오케스트라가 없네?"
이번 공연은 녹음 반주로 진행됐다. 오케스트라 라이브 연주의 현장감이 없는 것은 많이 아쉬웠으나, 귀를 괴롭게 하는 '삑사리'가 없다는 건 좋았다. 솔직히 과거 프로코피에프의 음악이 쓰이는 발레 공연에서 오케스트라가 만족스럽게 연주하는 걸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오죽하면 녹음 반주가 좋은 점도 있다는 얘기가 나올까.
"웃겼어. 그래도 재미있었어."
은우의 결론. 다행이다. 은우의 '현대 발레 입문'은 성공적이었던 셈이다. 다음에는 어떤 공연을 같이 볼 수 있을까. 은우와 함께 하는 공연 감상기를 앞으로도 가끔은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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