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어제부터 서해 NLL 인근에 해안포 사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정례적인 동계훈련이라면서 '그 누구도 논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우리로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일단 포탄의 탄착 지점이 NLL 이북의 북측 해역에 한정되고 있어 우리 정부는 긴장은 유지하되 이른바 '로 키(low key)'로 대응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북측 지역인 황해도 옹진반도 일대에서의 군사훈련은 늘상 있는 일입니다. 백령도나 연평도의 우리 군 기지에도 북측 지역에서 들리는 포 사격소리를 관측하는 것은 굉장히 흔한 일입니다. 지난해 국방부 출입기자 시절에 백령도와 연평도 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요, 정보장교가 북측 지역의 산 뒷쪽에는 이쪽에서는 잘 보이지 않도록 포병 기지와 훈련장이 있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사격 연습을 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더군요.
이번 포 사격이 이렇게 관심을 받는 이유는 그동안은 우리쪽에는 등을 돌리고 '자기들끼리' 하던 포 훈련을, 이번에는 '우리가 보란 듯이' 우리쪽으로 실시했기 때문입니다. '이것 좀 봐라'며 대놓고 포를 쏜 이유는 여러가지로 분석되고 있지만, 국지적으로는 실질적인 경계선인 NLL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표시로 보입니다.
서해 북방한계선 NLL은 사실상 남북 군사적 대립의 이른바 '구멍'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1953년 정전협정 당시 땅에는 육상 군사분계선을 그었지만 해상에는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는데요, 그래도 해상 경계선이 필요했기 때문에 남북의 실효적 지배력이 미치는 가상의 선을 상정해서 유엔군사령부가 설정한 것이 NLL입니다. 북한은 70년대까지는 NLL을 사실상 인정해 왔지만, 그 이후에는 여러 차례 NLL을 인정하지 않겠다며 분쟁을 일으켜 왔는습니다. 모두 기억하시는 1,2차 연평해전과 지난해의 대청해전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북한은 앞서 설명한 NLL의 불안정함을 종종 남측과의, 혹은 정전협정 당사자인 미국과의 협상에 유용한 '카드'로 이용하고 있는데요, 이번 포 사격 역시 남측에게는 지난 15일 국방위원회 대변인 성명에서 언급한 이른바 '보복 성전'이 빈말이 아니다, 다시 말해 남측이 체제를 흔드는 행보를 계속한다면 결코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것을 실제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또 미국을 향해서는 서해상의 안보상황이 이렇게 불안한 것은 불완전한 정전체제 때문이기 때문에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협상이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시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외부로부터의 경제적 지원이 절실한 마당에 아무리 목적이 중요하더라도 행동이 지나쳐서 진행중인 대화의 기조까지 흔들게 되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한 상황이 될 테니까 차마 거기까지는 가지 못하는 대신, 위협 수준을 상승시키면서도 원치 않는 여파는 차단하자는 의도에서 철저히 계산된 발사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습니다.
내부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북한은 지난 11월 말 대대적인 화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강제적인 화폐개혁 이후 물가가 폭등하면서 북한 주민들의 살림살이는 점점 피폐해지고 있다는 것이 대북지원단체와 탈북자단체들의 공통적인 전언입니다. 북한은 그동안 조금 숨통을 틔워줬던 '시장 요소'를 다시 꽉 틀어쥠으로써 계획 경제를 강화하는 목적은 달성하고 있을 지 모르지만, 전에는 그래도 적은 양이지만 돈을 좀 모아 갖고 있다가 시장(장마당)에 나가서 공산품도 사고 식량도 구할 수 있었던 주민들은 화폐개혁 이후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바람에 새 돈이든 헌 돈이든 휴지조각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당연히 불만이 스물스물 들끓어 오르는 상황이겠죠. 이럴 때 '너희들이 그런 불만이나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우리는 남측-이른바 괴뢰도당-이라는 당면한 적이 있지 않느냐'고 들이밀 수 있는 카드가 이번과 같은 행동입니다. 지엽적으로는 지난해 대청해전에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군부를 다독이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북한은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실무 접촉을 먼저 제의하는 등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다가도, 얼마전 일부 언론 보도로 알려진 정부의 '북한 급변사태 대비계획' 등 스스로의 체제유지에 위협이 되는 사안이 불거지면 강하게 반발하는 엇갈린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남측으로부터든 미국으로부터든 최대한 많이 받아내고자 하는 것이 북한의 목적일테니까, 이번 해안포 사격이 남북관계의 전면적 경색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게 대체적인 관측입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이런 복잡한 목표가 얽혀 있더라고 하더라도 결국 북한은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루겠다'고 억지를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의 이번 행위가 단기적, 제한적으로는 '그래, 대체 원하는 게 뭐냐'는 주변국들의 반응을 이끌어 낼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북한은 원래 그런 집단'이라는 시각을 공고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한도, 미국도 긴장을 조성하는 '판'을 깨지는 못하는 북한의 한계를 짐작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식의 국지적인 돌출행위가 북한의 '살림살이'에 결과적으로는 도움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포 좀 쏜다고 '살림살이' 나아질까요?
北, 해안포 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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