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6시30분께(현지시간)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 북쪽 시내.
한낮 기온이 30도를 넘길 정도의 강렬한 열기를 내뿜던 태양이 지자 시내 전체는 순식간에 칠흑 같은 암흑의 도시로 변했다.
11일 전 대지진으로 도심에 설치된 전기시설 대부분이 고장 나 거의 모든 집에서 불을 밝히지 않았고, 일부 지역만 희미한 가로등만이 거리를 비췄다.
캄캄한 하늘에 뜬 반달이 폐허속 담벼락과 가옥의 윤곽만을 어렴풋이 드러낼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이티 주민들은 가족 단위로 먼지 날리는 길거리에서 요리하고 식사를 했다.
대규모의 텐트가 마련된 난민촌 외곽에서는 촛불을 켜고 멍하니 앉아 있거나 어둠 속에서 혼자 밥을 먹는 모습이 쉽게 목격됐다.
연세대의료원에서 파견한 '의료 봉사단' 5명이 'E-power' 발전소 부지 건너편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나서 첫 진료소인 에스뽀아(희망) 병원으로 가는 거리의 모습이다.
지프형 자동차를 탔지만 30여 분에 걸쳐 언덕배기에 있는 병원으로 이동하기는 순탄치 않았다.
양 길옆 담벼락이 무너진 곳도 많은 데다 도로마저 군데군데 심하게 파여 시속 10km 안팎의 속도로 달릴 수밖에 없었다.
몸이 공중으로 붕 떴다가 착지하기를 수시로 반복하면서 엉덩이 근육도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지 주민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포르토프랭스에 자녀 두 명을 두고 있다는 멜리지에르 쟝조니(22.남)는 "지진이 나기 전과 난 후 거리의 풍경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면서 "주민 대부분은 어두운 밤거리에 익숙해져 크게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렵사리 도착한 에스뽀아 병원 내 상황은 대지진의 참상을 그대로 보여줬다.
애초 이 병원은 소아과 전문병원이지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골절과 열상 환자, 어린이 장염 환자들로 가득 찼다.
병실이 최대 20명 정도를 받을 수 있는 규모이지만 40여 명 넘게 수용하면서 복도와 의료실 옆 공간에는 매트리스가 어김없이 깔렸고 그 위에 환자들이 빼곡히 누워 있었다.
환자 가운데 비교적 고령인 채리테 안테(62.여)씨는 지진 때 당한 뇌졸중으로 왼쪽 상체가 마비된 상태였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안테씨는 오른 발목도 크게 다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진료를 한 채윤태 연세대의료원 감염내과 전임의는 "심장에 특별한 이상이 없지만 심하게 다쳐 몸의 절반 이상이 운동 신경을 잃었다. 감각이 아예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도 안테씨는 병실 내 침대에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어 그나마 다행인 편이다.
나머지 대다수는 병원 앞마당에 텐트를 치고 진료 순서를 기다렸다. 조명도 없는 어둠 속에서 지내는 일은 물론이고 식사나 마실 물을 마련하는 것 역시 이들에게는 간단치 않은 문제였다.
앞마당엔 전기가 공급되지 않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환자와 가족들의 흰색 눈동자만이 빛나고 있었다.
(포르토프랭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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