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구분 명확히 하겠다"
골자는, 일반인들의 예금을 받고 대출을 해 주는 것을 주 업으로 하는 상업은행과, 각종 투자행위로 고수익 고위험을 추구하는 투자은행을 명확히 구분하겠다는 겁니다.상업은행이 자기 자본으로 High Risk High return 투자에 나서는 행위 (PI, Proprietary Investing, '프랍 인베스팅' 등으로 부릅니다.)을 막겠다고 했습니다.
고객이 맡긴 돈이 아닌 자기자본으로 투자를 하는 걸 왜 규제한다는 걸까요? 문제는, 그런 자기자본 투자가 은행 입장에선 "큰 돈을 벌 수 있는 장사"이기 때문에 지나친 고위험 고수익 투자로 확대대고, 결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같은 금융 붕괴사태로 이어져 전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겁니다.
오바마는 게다가, 은행들의 외형경쟁까지 규제할 뜻을 비쳤습니다. "further consolidation of our financial system"을 막겠다는 것이 정확한 워딩입니다. 미국 언론들은 은행의 "size"에 대한 규제라고 풀어 썼습니다.
무분별한 고위험-고수익 추구 불가능한 구조 만들겠다는 뜻
이를 종합해보면, 금융기관 규제의 패러다임을 1999년 이전으로 되돌리겠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1999년까지는, 1933년에 만든 '글래스 스티걸 법'이 살아있었습니다. 이는 투자은행과 상업은행간 영역을 명확하게 구분해 놓는 법이었습니다. 무규칙 이종격투기 같은 금융기관의 무한경쟁속에 20년대 대 공황이 터지자 이를 수습하기 위해 생겨난 법이었습니다.
이 법이 신자유주의 규제완화 물결속에 "금융경쟁력 강화" "수요자의 편의 증진"이라는 명목으로 1999년 폐지됐고, 이후 전세계적인 금융규제완화 바람이 불었습니다. 증권, 보험, 은행 등의 구분이 없는 경쟁이 벌어지고 첨단 금융공학으로 무장한 천재들이 누가 뭘 파는 건지도 정확히 알 수 없는 파생상품들을 고안해 낸 것은 글래스 스티걸 법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때문에, 2008년말 금융위기 이후 민주당 계열의 금융정책가들은 '글래스 스티걸 법의 부활'을 끊임없이 요구해 왔습니다. 그 요구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은 미온적인 자세를 보여왔습니다. 2009년 상반기, 금융위기 수습이 한창 현안일 때 충분히 오늘과 같은 카드를 꺼내들 기회가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폴 볼커 고문이 2009년 여름에도 이와 같은 조치들을 요구했지만 듣지 않았다고 미국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의 현실론자들이 '그건 너무 급진적' '금융시스템에 오히려 충격을 줄 것'이라고 반발하는 소리를 들어주었던 것이죠. 그런데 왜 이제와서 '규제의 칼'을 뽑아서 흔든 것일까요?
상원 보궐선거 패배국면 뒤집을 승부수?
분석가들은 전날의 매사추세츠 주에서의 상원의원 보궐선거 패배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매사추세츠는 케네디가의 텃밭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JFK의 동생인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사망한 뒤 생긴 공석은 원래 민주당의 따놓은 당상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런데, 오바마의 의료보험 개혁에 대한 반발과, 지난번 대선을 휩쓴 진보세력에 대한 백인 보수주의의 반발로, 약세였던 공화당 후보(스캇 브라운)가 역전승을 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오바마의 의료보험 개혁이 좌초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은 이미 국내 신문에도 많이 실렸죠.
오바마는 뭔가 선거 패배 국면을 전환할 카드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경제위기는 여전히 극복되지 않고 있는데 월스트리트의 탐욕스런 살찐 고양이들(Fat cats of Wall Street)은 보너스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기존의 정치 공세를 더욱 강화하고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가진 자 때리기"는 경제의 작동원리나 논리에 앞서 대중의 정서를 뒤흔드는 위력을 갖고 있다는 건 전세계 공통의 정치공학이지요. 오바마 연설에는 "월스트리트가 로비스트를 동원해 저항에 나서더라도 (국민의 편에서) 끝까지 싸우겠다"는 말도 나옵니다. 상당히 강한 표현들입니다.
경제채널 CNBC의 분석가 래리 커들로우는 "populism"이라고 맹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은행을 쪼개고 외형을 규제하는 것은 금융산업의 활력을 떨어뜨려 경제를 오히려 후퇴시킬 것이다"는 반론도 나옵니다.
오바마의 승부수는 과연 실제로 법제화되어 집행될 수 있을까요?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우선, 보선 승리로 상원에서 민주당에 제동을 걸 힘을 얻게 된 공화당이 순순히 응해줄 리 없습니다. 미국사람들은 '정부가 민간산업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 우리 상식보다 훨씬 더 민감하게 반발합니다. 그 선봉에 공화당이 있구요.
좌초위기에 처했다는 오바마의 의료보험 개혁이란 게 사실 서민들한테 아주 좋은 겁니다. 돈 있는 사람만 비싼 의료보험에 들어서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직장 잃은 사람은 의료보험 들 방법이 없어 길거리에 나앉고 있으니 국가가 지원하는 공공의료보험(이른바 'public option')을 만들어 서민도 혜택을 볼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죠. 그런데, '정부가 민간영역에 나서면 결국 비효율이 높아져 결국 모두에게 해가 된다', '그런건 사회주의'라는 주장들이 쉽게 먹히는 게 미국의 서민 대중입니다.
집권 세력 내부에서도 신중론 제기
다음으로, 오바마 정권 내부에서도 신중론이 제법 나온다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합니다. 정부에서 오바마의 금융정책을 집행하는 사람은 팀 가이트너 재무장관입니다. 그런데,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오바마의 오늘 방침을 집행하는 데에 반대하고 있다는 말들이 흘러나옵니다. 가이트너는 재무장관이 되기 전부터 월스트리트 경영진들과 밀접하게 실무를 챙겨왔기 때문에, 이런 규제안을 밀어붙이는 데 많은 무리가 따른다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일각에선, '오바마의 은행 때려잡기는 시카고 파를 중심으로 한 정권내 강경좌파 정치세력의 작품이며, 이들이 흔들어서 가이트너가 쫓겨날 수 있다'는 시나리오까지 제기하는 상황입니다.
또 하나, 하원의 분위기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원에서 오바마의 금융정상화 정책을 밀어붙여 온 사람은 민주당 바니 프랭크 의원(금융위원장)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오늘 CNBC에 나와서 "그런 조치를 시행하려면 3-5년의 시간(time frame)이 필요하다"고 신중론을 피력했습니다. 상원 장악력에 금이 간 오바마 입장에서, 하원 돌격대장이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앞길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오바마는 "선거 패배 / 의료보험 개혁 좌초"라는 언론의 기사제목을 바꾸는 데에는 성공했습니다. 과연 적절한 규제를 도입해 금융을 안정시키는 데에도 성공할 수 있을까요? 당분간 워싱턴과 뉴욕은 오늘 오바마 연설의 여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 - - 이런 내용을 8시 뉴스에 전하고 싶었는데, 그만 편집회의에서 빠지고 말았습니다. 국내 증시 소식에 녹여서 나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8시뉴스에 잡혔더라도, 이런 내용을 1분20초에 어떻게 얘기해야 했을지, 사실 견적이 안나옵니다. 방송 해외특파원이라는 역할이 참 어렵구나 싶어 어깨도, 마음도 무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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