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1년 앞둔 2009년에는 여느 때보다 독립운동에 대한 활발한 조명이 이뤄졌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맞아 안 의사의 사상과 업적을 평가하는 학술대회가 집중적으로 열리고 안 의사에 대한 저작도 잇따라 나왔다.
3.1운동과 임시정부 90주년, 백범 김구 60주기 등을 기념하는 학술대회도 열렸고 한일 강제병합의 불법성에 초점을 맞춘 학술대회도 개최됐다.
조선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가 무더기로 공개돼 '정조독살설'에 대한 관심을 다시금 불러일으키며 큰 화제를 모았다.
◇안중근 의거 100주년 기념 연구성과 쏟아져
안중근(1879~1910) 의사가 중국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지 100주년인 올해 안 의사의 사상과 하얼빈 의거의 의미 등을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활발하게 열렸다.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안중근의사숭모회, 동북아역사재단, 국사편찬위원회,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등 다양한 단체가 의거일인 10월26일을 전후해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특히 안 의사가 옥중에서 남긴 미완의 저작인 '동양평화론'에 담긴 사상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이 이뤄졌다. 동양평화를 위해 한중일 3국이 정치, 경제, 안보 협력을 제도화하고 지역공동체를 건설하자고 제창한 그의 사상은 많은 학자로부터 높게 평가받았다.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는 연구논문집 2권을 발간했으며 안중근연구소 신운용 책임연구원이 쓴 '안중근과 한국근대사', 구태훈 성균관대 교수가 쓴 '구태훈 교수의 안중근 인터뷰',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의 '안중근 평전' 등 학자들의 저작이 집중적으로 출간됐다.
◇3.1운동·임시정부 90주년·김구 60주기
안중근 의거 외에도 한국현대사에서 기념할 굵직한 일이 많았던 해다.
3.1운동의 경우 발생한 지 90년이 흐르면서 연구동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학계에서 제기됐다. 특히 개괄적인 큰 그림은 그려졌지만 3.1운동이 얼마나 지속했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가했는지 등 세부적인 사항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미진하다는 지적이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지난 9월 중국, 영국, 소련 등 연합국이 임시정부를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조명하는 학술대회를 열었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는 지난 10월 백범 60주기 추모 학술회의에서 백범을 쑨원, 간디, 호찌민 등 독립운동과 건국을 이끈 아시아의 지도자들과 비교ㆍ평가했다.
한일강제합방 100주년을 한해 앞두고 동북아역사재단은 지난 6월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해 1910년 강제병합조약의 불법성과 역사적 교훈, 동아시아 근대사에서 한일병합의 의미 등을 살폈다.
◇간도 영유권 100년 시효설 논란
지난 9월 4일은 청나라와 일본이 간도를 청나라 영토로 인정하는 내용의 간도협약을 맺은 지 100년이 되는 날이었다.
간도협약 100주년을 맞아 '한 국가가 영토를 점유한 지 100년이 지나면 영유권이 인정된다'는 이른바 '영유권 주장 100년 시효설'이 제기돼 많은 누리꾼이 관심을 보이는 등 인터넷상에서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학계는 이에 대해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며 일축했다. 국제법에는 그런 규정이 없고 국제사법재판소 판례도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100년 시효설'이 나온 것에 대해 학계는 2차대전 이전에 다른 나라에 땅을 빌려주는 조차지는 관례로 99년을 최대 기한으로 정했는데 조차지의 사례에서 잘못 추론해 100년 시효설이 나왔으리라 고 풀이했다.
민간 차원에서는 간도되찾기운동본부가 국제사법재판소에 간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주장하는 탄원서를 발송했고 국회의원 50명은 '간도협약의 원천적 무효 확인에 관한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학계는 간도영유권 문제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정조 어찰 299통 공개
조선 제22대 왕인 정조가 재위 말년에 편지를 통해 막후정치를 펼쳤음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편지 299통이 지난 2월 무더기로 공개됐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이 공개한 정조의 어찰첩에는 정조가 예조판서와 우의정 등을 역임한 노론 벽파의 거두 심환지(1730~1802)에게 보낸 편지가 실렸다.
심환지가 정조와 날카롭게 대립했으며 심지어 그가 정조를 독살했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어찰에 나오는 정조의 병세를 볼 때 정조는 병사했을 가능성이 커 '정조독살설'은 힘을 잃게 됐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정조는 편지에서 건강에 심각한 이상이 있음을 여러 차례 토로했다. 1800년 6월28일 타계하기 13일 전인 6월15일에 보낸 편지에서 "뱃속의 화기(火氣)가 올라가기만 하고 내려가지는 않는다. 여름 들어서는 더욱 심해져 그동안 차가운 약제를 몇 첩이나 먹었는지 모르겠다.(중략) 항상 얼음물을 마시거나 차가운 온돌의 장판에 등을 붙인 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일이 모두 고생스럽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정조는 각종 현안이 있을 때마다 비밀 편지를 보내 심환지와 미리 상의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편지를 통해 온화하고 사려 깊은 성군(聖君)의 면모보다 격정을 참지 못하는 다혈질의 막후정치가에 가까운 모습이 드러났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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