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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산책] 기대 만발, 두 남자의 만남

연광철&정명훈의 겨울나그네

오래 전부터 기대해 온 공연이 하나 있다.

다음주 월요일(21일)에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연광철-정명훈의 겨울나그네'.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를, 정명훈 씨의 반주로 베이스 연광철 씨가 부른다.  연광철 씨는 1996년 독일 바이로이트 축제에 데뷔한 이후 지금까지 최고의 '바그너 가수'로 이름을 떨치며 전세계 주요 오페라 극장 무대를 누비고 있다.

나는 연광철 씨가 지난 2005년 가을, 바로크합주단 창단 40주년 연주회에 출연했을 때 인터뷰한 적이 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깊은 인상을 남긴 인터뷰였다.

당시 연광철 씨는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내 질문에 ‘능력 있는 후배들을 교육해 해외에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었다.

그는 내년부터 서울대 음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다.

출중한 그의 음악 활동 경력을 본다면 서울대 교수 임용이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학벌-연고주의가 워낙 심하다 보니, 공고-지방대 음대를 졸업한 그가 서울대 교수가 됐다는 소식이 더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제 그가 바란 대로, '후학 양성'에서도 멋진 성과를 내길 기대한다.  이 계절에 딱 어울리는 곡, '겨울나그네'를 연광철 씨의 깊이 있는 목소리로, 그것도 정명훈 씨 반주로 듣게 된다니.

공연을 기다리며 예전 인터뷰 주요 내용을 복기해 본다. 

                 

 

<2005년 10월 20일, 베이스 연광철 인터뷰>

인터뷰에서 여러 번 받으셨던 질문일 것 같은데, 처음에 음악을 어떻게 하게 되셨는지 좀 말씀해 주시겠어요?

▷네, 제가 처음 음악을 하게 된 것은 그 당시에 음악적 소질이나 재능을 발견을 해서 시작한 것은 아니고, 그 당시 상황이 우리나라가 건설업이 활발해서 많은 일꾼들이 필요했고, 저희 집안이 그렇게 부유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가 산업현장에 뛰어들려고 공고를 진학을 했죠.  그런데 공고를 다니는 동안에 성과가 없었고, 제가 그쪽에 다니는 것에 인정을 받지 못했어요. 

그래서 제가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차에, 목소리가 좋다, 노래 잘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해서, 음악을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해서 시작하게 됐죠. 물론 중요한 계기는, 제가 다니던 학교가 음악 선생님도 없는 학교였는데, 선생님들이 의논을 해서 교내 음악 경연을 해보자고 하셨어요.  왜 그랬는지, 그 때 한 번으로 끝나고 말았는데, 어쨌든 제가 거기 나가서 노래하고 1등을 탔어요.  그 당시엔 큰 의미를 두지 않았죠.  그런데 나중에 제가 자격증 시험에서 떨어졌어요.  (공고 학생들이 졸업 전에 치르는 건축 기능사 시험) 그래서 뭘 할까 막막하던 차에, 음악을 해서 대학을 가면 어떻겠냐 이런 생각을 했죠.  (그는 석 달을 공부해 청주대 사대 음악교육과를 들어갔다고 한다.) 평소 음악적 소양이 보여서 또는 주위사람들이 추천해서 그렇게 시작한 것은 아니죠. 

사실은 그 이후에도 제가 음악을 계속 하면서 제가 이런 길을 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어요. 음대 성악과가 아니고 사범대학 교육과였기 때문에, 졸업을 하면 교사자격증이 나오고 교편을 잡을 것이다 생각을 해서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이지, 특별히 제가 음악적으로 성공을 해서 외국에서 활동하고... 그런 꿈을 가졌던 것은 아니죠.

그런데 어떻게 유학까지 가게 되셨어요?

▷ 제가 4년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 뭐 다른 집들도 그런 얘기들이 많지만, 저희 부모님도 그 당시, 경운기가 발전하지 않았던 시절에 저희 집 소를 팔았어요.그렇게 제가 대학에 갔는데 그랬을 정도로 대학 생활이란 게 저한테는 굉장히 값진 거였죠. 열심히 했고,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성악 쪽에 소질이 계속 보였고, 제가 모셨던 선생님께서 제 능력이 한국에서만 배운 것 가지고는 충분히 개발되지 않으니까 외국에 나가서 더 공부를 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 권유하셨죠.

 외국에 나가서도, 저로서는 얼른 공부를 하고 돌아오는 게 낫지 않나 생각했었죠. (불가리아를 거쳐 독일에서 공부. 플라시도 도밍고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 부모님 형편도 좋지 않은데 제가 외국에서 계속 공부하는 게 어렵고 하니까. 그런데 불과 2년 만에 오디션을 봐서 계약을 했어요.(베를린 슈타츠 오퍼에 입단, 10여 년간 전속 가수로 활동) 그렇게 해서 일을 시작하게 됐죠.

국내에서 학교 다니며 활동하실 때 얘기를 하자면, 우리나라에서는 왜 음악을 한다면 이른바 '코스'라는 것이 있잖아요. 예고 같은 예술 학교를 나오고, 음대를 나오고.. 이런 코스를 밟지 않은 것 때문에 어려움을 겪진 않으셨나요?

▷ 물론 우리나라 안에서는 말씀하신 대로 학연과 지연, 이런 데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려운 점은 물론 많았죠. 지금은 가볍게 '어려운 점'이라고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굉장히, 제가 학교를 명문 음대를 다니지 않은 데 대한 불이익이라든지.. 하지만 지나고 보면 또 그런 것이 제가 음악적으로 무한한, 여러 방면으로 볼 수 있는 그런 좋은 계기가 아니었나 생각해요.

외국에선 어떠셨어요? 외국인으로서 활동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 문화의 장르 중에서 오페라는 여러 장르, 오케스트라, 성악, 연기, 무용 그런 것들이 다 포함된 음악인데 외국 사람이 외국 무대에서 그런 것을 소화한다는 것이 굉장히 힘들거든요.굉장히 어려운 일인데 제 경우에 더 어려운 점은, 눈으로 보는 외관상으로도 이런 것이 굉장히 어려운 거죠.

요즘은 오페라 연출이 굉장히 모던하게 가고, 시각적인 면을 중시하는데, 저는 굉장히 키가 작고……(그의 키는 170센티미터 정도다.) 이런 걸 금방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작은 제스쳐 같은 것들도, 다른 키 큰 동료들과 금방 비교가 되죠.
그래서 예를 들어 키가 2미터 가까이 되는 동료들 옆에는 되도록 가까이 가지 않는다든가, 여자 가수들과 있을 때도 저보다 큰 경우에는 옆에 가서 서지 않는다든가, 이런 것까지 신경을 써야 하죠. 이런 어려움이 사실 많아요.

말씀하신 부분 외에, 음악적으로는 어떠셨어요?

▷ 음악적인 면을 더 많이 살려서 장점으로 하자, 이런 게 사실 제가 지금까지 해왔던 거예요. 결국은 제가 음악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예요. 우리가 그들에게는 외국 사람이고, 외국 사람이어서, 한국 사람들 중에도 거기서 태어나거나 오래 살며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 같이 한국에서 오래 교육받은 사람들은, 훨씬, 언어에서 오는 어려움이라든가, 뉘앙스 차이라든가, 그런 느낌을 알기 어려워요. 그 느낌을 전달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데, 작업을 독일 사람들과 하면서, 선생님하고도 대화하면서, 점점 배워나가는 거죠.

지금까지는 주로 유럽 무대에서 활동해 오셨는데, 지난해(2004년)에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도 서셨죠? 이제 베를린 슈타츠 오퍼 전속은 아니시고.. 물론 유럽에도 세계적인 오페라 극장들이 많은데, 메트는, 직접 서보니 어떠셨나요?

▷ 메트 오페라단은 전세계적으로 광고를 잘 하고 있고, 또 발전된 기부문화로 인해서 경제적인 서포트가 있기 때문에 좋은 가수들을 3, 4년 전에 미리 계약해서 데려오고, 또 계획이 일찍 서고, 레퍼토리도 좋은 게 많고 세계적인 무대죠. 제가 볼 때 미국의 문화라는 것이 200년 정도 됐는데, 물론 가장 밑바탕에 유럽 문화가 있지만, 전세계적인 추세가, 오페라 문화는 이해하기 어렵고 오페라 문화에 대한 교육이 충분하지 않다는 거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오페라 하면 약간 거부 반응도 있는 경우도 있고, 게다가 오페라보다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같은, 가볍게 접할 수 있는 공연이 많기 때문에, 메트는 어떨까, 생각했었어요. 실제로 관객이나 무대에서 이뤄지는 작업들은, 제가 볼 때는 '직업 정신'에 투철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관객도 박수 잠깐 치고 한 사람씩 나와서 커튼 콜 하고 그러면 바로 조용해지고, 지휘자가 나와서 오케스트라 인사를 시켜도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금방 가 버린다든가. 그런 것들은 굉장히 '건조'해 있죠. 음악적으로는 여기서 이뤄지는 작업들이 굉장히 수준 높은데, 전체적인 환경이, 가령 메트에서 센트럴 파크가 멀진 않지만, 극장 앞에 큰 광장이 있고, 사람들이 많이 즐길 수 있는 그런 무대가 아니라, 뭔가 건조하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럼 한국에서 공연할 때는 어떠세요?

▷ 한국에서 공연할 때는,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서울에 연고 있는 것도 아니고, 동문들이 많은 것도 아니고., 세계 어느 곳에서 노래해도 다 똑같은 곳으로 생각하죠. 물론 서울에 저를 아는 사람들도 많이 있죠. 사실은 세계 어느 곳이나 다 똑같다는 면도 있지만, 실제로 한국에서 공연할 때는 긴장이 많이 돼요. 한국 사람들은, 내가 한국 사람인데, 어떻게 생각할까. 사실 우리 나라에서는 제가 명문 음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주요 콩쿠르에서 1등 한 것도 아니고, 다른 곳보다 긴장이 되긴 해요. 한국에서.

물론 자신은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음악가로서 성공하셨는데, '성공의 비결'은 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실 건가요?

▷ 성공의 비결이요? 제 경우에는 성공이라는 것이, 굉장히 큰 것을 목표로 두면 큰 것을 이루긴 굉장히 어렵잖아요. 작은 성공들이 이뤄졌을 때, 작은 음악회들이, 콘서트들이 주목 받으면서 성공적으로 끝났을 때, 물론 그 주목이라는 것이 큰 매스컴에서 얘기되는 것은 아니더라도, 이런 작은 성공들이 모아져서 큰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처음부터 원대한 목표를 세우는 것보다 작은 음악회에서 성공하고, 박수를 받고, 갈채를 받으면서 점점 더 자기에게 충실하게 해 나가면, 몫이 많아지고, 일이 많아질 것 같고, 그 음악에서 내가 얻는 것도 많아지고, 그러다 보면 좀 더 큰 성공을 향해 가까이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도 오래 노래를 해 오셨지만, 앞으로도 계속 하실 날들이 많이 남아있는데, 미래의 계획이랄까, 포부랄까, 이런 걸 말씀해 주세요.

▷ 사실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보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요. 그러다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고, 잘못될 레퍼토리를 해서 제 목이 상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앞으로 할 시간이 훨씬 길죠.

올해 마흔이고 60까지는 노래를 한다고 보면, 지금까지 10년간 제가 베를린에서 해왔던 경험들이 좋은 토대가 될 것이고, 앞으로 20년 동안 더 많은 레퍼토리와 좋은 공연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제가 외국에서 공부하고 활동하면서 겪은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알기 때문에, 재능 있고 능력 있는 후배들이 있다면, 제대로 교육하고 제대로 뒷받침해 주면서, 한국 성악가들을 세계에 소개하는 일은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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