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워킹맘(Working Mom.일하는 엄마)들은 할 말이 많았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태어나 자녀 한 두 명 키우면서 직장생활을 하려면 희생해야 할 것도, 참아야 할 것도, 신경 써야 할 것도 한둘이 아니다.
이들은 '저출산이 문제'라고 말로만 떠들게 아니라 나라가, 회사가, 남편이 모두 발벗고 나서야 한다고 만한다.
저출산은 원인이 복합적인 만큼 다양한 처방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워킹맘이 행복해야 아이들이 많아진다는 점이다.
차은경(42·워킹맘 카페운영자) 정수아(39·영훈중 교직원) 허정미(33·㈜에프씨아이 과장) 허효임(33·㈜베네세코리아 과장)씨 등 4명의 워킹맘이 8일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아이 한 명 키우기도 버겁다
▲ 허정미 = 11개월짜리 아이가 있다. 신랑은 둘째를 원하지만 엄두도 못 내겠다. 시어머니가 매주 아이 봐주시러 미아동에서 분당에 있는 우리집까지 오신다. 일요일 저녁에 오셔서 금요일 저녁에 돌아가신다. 직장에 다니는 아가씨가 주중에 혼자 계셔야 하는 시아버지의 끼니를 챙기고 있다. 아이 한 명 키우기 위해 온 가족이 희생하고 있는 것이다.
▲ 정수아 = 우리도 첫째는 10개월까지 시어머니가 봐주시다가 관절염이 생겨 그만두셨고 둘째는 친정엄마가 14개월까지 봐주시다가 힘드셔서 포기하셨다. 걱정이 많이 됐지만 어쩔 수 없이 근처 어린이집에 맡겼다. 일하는 엄마로서는 갓난아이부터 3세까지의 영아를 누가 맡아주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다.
▲ 허효임 = 11개월, 24개월 연년생 남매를 두고 있지만 친정엄마는 안 계시고 시댁은 멀어서 가족 중에 부탁할 사람이 없다. 아이 때문에 회사를 그만둔다는 생각은 안 해봤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맡겨야 했다. 아파트에 도우미를 구한다는 공고를 여기저기 붙이고 매우 많은 사람들을 면접한 끝에 간신히 구할 수 있었다.
▲ 차은경 = 초등학교 4학년과 중학생 2학년과 3학년 등 3명의 자녀를 키우고 있다. 초등학생 엄마는 방과후 시간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 지가 가장 문제다. 나 같은 경우는 학교 방과 후 수업이나 학원으로 계속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사교육비가 한 달에 200만 원 이상 들어간다.
◇ 늘 '당당'한 남편, 늘 '미안'한 엄마
▲ 허정미 = 남편은 스스로를 '잘 돕는 최고의 남편'이라고 생각한다. 알아서 육아에 참여하기보다 도와달라고 꼭 집어 이야기해야만 움직이면서도 말이다. 아직도 남편은 아이가 울면 "엄마, 아기 봐요"라며 건네준다. 신랑도 큰 애기다. 아이 둘을 키우는 것 같다.
▲ 차은경 = 남편들은 늘 자기만 잘한다고 생각한다. '나처럼 하는 남편 어디 있느냐'며 착각한다. 주말이면 주중에 많이 도와줬으니 좀 쉬러 나가겠다고 말하는 남편을 볼 때면 서운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 정수아 = 일이 끝나고 집에 오면 또 다른 '내 일'이 시작된다. 아이들 밥 차려주고, 치우고, 빨래하고, 청소하면 10시나 돼야 거실에 누울 수 있다. 그때서야 들어오는 남편이 하는 말이 겨우 "또 누워 있다"다.
▲ 허정미 = 살림과 육아만 하는 친구네 집에 놀러 갔는데 책도 읽어주고, 알뜰살뜰하게 아이를 챙겨주는 모습에 나만 내 아이를 너무 방목하고 있는 게 아닌가 겁이 나고 미안했다.
▲ 정수아 = 집에 엄마가 있는 아이들은 어쩐지 맘도 곱고 예의도 바른 것 같고 다르게만 보인다. 나도 아이만을 위해, 남편만을 위해 살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가끔 든다.
▲ 차은경 = 작년 3월에 내 딸 또래의 아이들이 유괴를 당하는 사건이 연속적으로 발생했었다. 딸아이가 1시면 학교에서 돌아오는 데 너무 걱정이 되고 같이 있어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해 3개월을 매일 울면서 출근했던 것 같다.
◇ 바뀌지 않는 직장문화…눈치보기 서러워
▲ 허정미 = 직장을 잡으려는데 면접에서 2세 계획을 묻더라. 향후 2년간 계획이 없다고 말하고 취직에 성공했는데 입사 후 두달 만에 아이가 생겨 난처했다. 상황이 이런데 육아휴직은 정말 '먼나라 딴나라' 이야기다. '1년 육아휴직 쓰면 당연히 내 자리는 없어지겠구나'란 각오는 당연히 해야 한다.
▲ 허효임 = 아기 엄마들이 많은 회사인데도 남자 상사들이나 이제 아이를 다 키운 여자 상사들에게 눈치가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기 때문에 정시에 퇴근하는 편이다. 하지만 일은 집에 가져가서 마무리한다. 그럼에도, 뒤에서 "일이 없나봐"라고 무심하게 말하는 것을 들으면 그렇게 속이 상할 수 없다.
▲ 정수아 = 학교가 직장이어서 상대적으로 근무여건이 좋기는 하지만 아이 때문에 자리를 비우는 것은 눈치가 보인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는 출산휴가 3개월도 다 못채우고 출근해야 했다.
▲ 허정미 = 아빠들도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데 활용할 엄두도 못낸다. 출산 후 이틀 쉬는 것도 '네가 아이 낳았느냐'는 시선이 느껴진다고 하더라.
▲ 차은경 = 워킹맘 카페를 운영하는데도 9-10시까지 야근하는 경우가 잦다. 알림장에 준비물이라도 적혀오는 날에는 동네 편의점을 밤새 돌아다니며 준비물을 구해야 한다. 학교에서 일하는 엄마들을 위해서라도 일주일치 준비물을 주말에 한꺼번에 알려주면 너무 좋을 것 같다.
◇ 국가가 질 좋은 공보육시설을 마련해야
▲ 허정미 = 취학연령을 만 5세로 낮춘다는 기사를 보고 너무 황당했다. 어린이집에서는 저녁 7-8시까지 봐주기라도 하지, 학교는 12시면 끝나는 데 그 뒤는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셋째 낳으면 남편의 정년을 1년을 연장해준다는 것도 그렇다. 한 명이나 제대로 키울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
▲ 허효임 = 국가가 질 높은 보육기관을 충분히 마련해야 한다. 직장내 보육시설 확충도 꼭 정답은 아니다. 아는 회사에서 무료 보육시설을 설치했는데 도심 한복판이라 아이들이 건물 안에만 갇혀 있어 생각보다 인기가 없었다. 좋은 어린이집을 좋은 곳에 많이 만들어야 한다.
▲ 허정미 = 우리 회사는 직원 120명에 아이 엄마가 5-6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육시설을 설치해달라는 것은 기업 측에서도 부담될 것이다. 나라에서 공(公) 보육시설을 거점식으로 운영해줬으면 한다.
▲ 허효임 = 파트타임제의 활성화도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파트타임이 질 낮은 일자리가 아니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자리 형태로 자리잡아야 한다. 주변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월급을 더 적게 받더라도 더 많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내고 싶어한다.
▲ 차은경 = 방과 후 시간이나 방학은 워킹맘들에게 공포의 시간이다. 방학 때면 늘 아침·점심·저녁 반찬을 다 다르게 차려놓고 집을 나선다. 이런 고민들이 워킹맘들만의 고민이 아니라, 국가의 고민이 돼야 한다.
▲ 정수아 = "여자 직장으로는 학교가 최고다"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듣고 살았다.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었던 꿈도 있었는데 스스로 '나는 여기까지'라는 한계를 그었던 것 같다. 이게 다 여성에게서 육아라는 굴레를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 딸들은 '엄마'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사회에서 살길 바란다.
(서울=연합뉴스)
"저출산? 문제는…" 대한민국 워킹맘들의 수다
[저출산 시간이 없다 ⑩]육아는 모두 엄마 몫…직장도 남편도 무심, "믿고 맡길 수 있는 공보육시설이 필요해"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