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일을 시작한 지는 벌써 한 70년 됐습니다. 아들놈도 제 밑에서 일을 배우고 있으니 글쎄…100년도 갈지 모르겠네요. 그때는 3대가 100년째 대장장이 노릇 한다고 크게 한번 써주세요."
수필가 윤오영이 동대문 길가에 앉아 '방망이 깎던 노인'을 추억한 지도 32년이 지났지만,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는 현대판 '방망이 깎는 노인'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천호동 로데오거리 인근에서 동명대장간을 운영하는 강영기(59) 씨는 열 네살이던 1964년부터 선친 강태봉(2002년 작고) 씨를 도와 대장일을 시작했다.
선친이 대장간 문을 연 게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말이었다고 하니 70년째 부자가 대를 이어 망치를 잡고 있는 셈이다.
5년 전부터는 아들 단호(30) 씨가 아버지 밑에서 대장일을 배우고 있어 말 그대로 강 씨 집안은 대장일로 일가(一家)를 이뤘다.
동명대장간은 서울에서 가장 번화하고 변화에 민감한 강남·서초·송파·강동구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재래식 대장간이기도 하다.
쇠를 화덕에 넣어 달구고, 두드리고, 늘이고, 담금질하는 강 씨의 생활은 45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지만, 대장간 밖 세상은 매섭게 변했다. 그 많던 대장간들이 어느 순간 사라진 것이다.
"예전에는 동네마다 대장간이 하나씩은 꼭 있었습니다. 요즘 편의점처럼 생활에 꼭 필요한 곳이었으니까요. 이 일대만 해도 대장간 세 곳이 더 있었는데 어느 순간 다 문을 닫았습니다."
대장간들은 물밀듯이 밀려온 저가의 중국산 제품을 이겨내지 못했다고 한다. 강씨도 예전에는 농기구나 건설공구만 만들어 팔았지만 지금은 수요가 크게 줄어 공구점도 같이 운영하고 있다.
그래도 강 씨의 솜씨를 아는 손님들은 꾸준히 이곳을 찾는다. 얼마 전 한 단골손님은 미국으로 이민 가면서 각종 농기구를 여러 자루 주문하기도 했다.
"제가 만든 물건을 써본 손님들이 기계로 찍은 물건은 영 못쓰겠다고 하더라"는게 강 씨의 귀띔이다. 아마도 그의 단골들은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던 윤오영의 아내와 비슷한 심정이었던 모양이다.
아들 단호 씨가 가업을 잇겠다고 했을 때 말려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 것은 강 씨도 마찬가지였다. 일이 고될 뿐만 아니라 '상놈이나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전해주고 자신이 평생 익힌 기술이 사라지지 않고 아들을 통해 이어지리라 생각하니 절로 가슴이 뿌듯해졌다고 한다.
강 씨는 14일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이 힘든 일을 하려고 하나요. 제 기력이 닿는 데까지만 이 일을 할 생각이었는데 아들이 뒤를 잇겠다고 하니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서울=연합뉴스)
망치잡은지 70년…서울 강남의 대장장이 3대
천호동 동명대장간…"미국 이민가면서도 주문"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