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8일 국내 최대 소주업체인 진로가 참이슬 가격을 5.9% 올렸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C1 소주를 만드는 대선주조와 제주도의 한라산 소주가 30일 소주가격을 각각 5.9%, 3.3% 올렸고, 1월 15일 하이트를 끝으로 전국 11개 소주업체들이 가격을 인상했습니다.
지난해 국제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면서 소주업체들도 가격 인상 요인이 생겼습니다. 당초 7월부터 소주 가격을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업계에서 나왔지만, 서민물가 안정을 외치는 정부 분위기와 국세청의 만류로 인상 시기를 미뤄왔던 터였습니다.
그러다 12월쯤, 진로가 총대를 매고 국세청에 소주값 인상 여부를 타진했고, 국세청은 면밀한 검토를 거쳐 업계 요구의 절반 수준에서 인상을 승인하는 '행정지도'를 내렸습니다. 국세청이 소주값을 정할 수는 없지만 '행정지도'라는 제도로 사실상 가격 통제가 가능한 게 현실이거든요.
그런데 공정거래위원회가 얼마전부터 소주값 인상에 대해 조사한다는 기사가 솔솔 흘러나오더니, 2,300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며 각 업체에 심사보고서를 보낸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공정위는 아무리 국세청의 '행정지도'를 받았다고 해도 그게 가격을 결정해 주는 게 명백히 아니며, 업체들이 담합했다는 각종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혔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지난 연말 소주업체 대표들이 모여 회의를 했다는 건데요.
소주업계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당시 업계 모임은 친목 모임이었고, 그 자리에 참석했던 임원이나 실무자가 오간 얘기를 메모한 것을 두고 담합이라 하면 '업계 사람들은 연말 망년회 등 모이지도 말란 얘기냐' 라는 겁니다.
또 당시엔 법에 정해진 대로 공정거래를 하자는 의견을 나눴다는 주장입니다.
행사지원이나 경품지원 등을 두고 과당경쟁 하지 말자는 얘기도 했다고 합니다.
국세청의 '행정지도'를 거친 정당한 가격 인상이란 점도 들고 나왔습니다.
'행정지도'는 값을 올리기 위한 게 아니라 값을 억제하는 형태의 가격조정….어떻게 보면 이것도 값을 낮추는 일종의 '담합'행위죠.
정작 당시 소주값 인상을 '승인'해 준 국세청 역시 공정위 방침에 기분 나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
국세청 담당 공무원의 말입니다.
"원래 지난 7월 소주가격을 올리려 했는데, 금융위기 때문에 경제도 어렵고 서민들 부담도 크고 하니까 올리지 말라고 한 겁니다. 그리고 연말에 분위기 봐서 올리려 했던 거고, 반 정도만 올린 건데 공정위에서 이렇게 나오니 답답합니다.
공정위에서 국세청에 의견 물어와서 우리 입장도 밝혔습니다.
행정지도 거쳐서 협의하에 가격 인상할 거라고 말이죠.
그런데 공정위가 너무 과한 감이 듭니다. 과징금 부과하기 전에 행정지도를 하지 말라고 하던지...앞으론 행정지도도 못하게 생겼습니다."
물론 과징금 규모가 결정된 것은 아닙니다. 심사 보고서는 검찰 공소장 같은 겁니다. 결론은 이의신청을 다 받은 뒤 다음달 전원회의를 거쳐서 나게 됩니다.
최근 공정위가 LPG 업계에 1조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하려다 회의 자체가 연기된 적이 있습니다. 이번 소주 가격 건도 쉽지 않아 보이죠.
그런데 정호열 공정거래위원장의 입장은 단호한 것 같습니다.
LPG 업계나 소주업계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아니지만…. 오늘 대한상의에서 열린 행사에서 한 말입니다.
"정부부처가 행정지도를 했다는 이유로 담합 사실이 면책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뭔가 정부 부처간 엇박자 같은 분위기도 풍기고… 결론만 기다려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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