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국산 1호차 시발차의 등장
국산 자동차 1호는 '시발 자동차'였습니다.
시발(始發)은 처음으로 국산을 만든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시발 자동차는 1955년에 처음 생산되었는데, 미군에서 불하받은 지프 엔진과 변속기, 차축 등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국산화율은 50% 수준이었습니다.
1대 제작 기간이 4개월이나 걸렸다고 하는데 철이 귀했던 시절이었던지라, 드럼통을 펴서 만들었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전해오고 있습니다.
우리손으로 만든 첫 자동차인 시발은 2도어 4기통 1.323cc 엔진에 전진3단, 후진1단 트랜스미션을 얹었습니다.
시발자동차를 만든 사람은 정비기술자 출신의 최무성 씨였습니다.
1955년 광복 10주년기념 산업박람회에 시발을 출품해 대통령상을 받으며 갑자기 고객이 밀려드는 바람에 계약금만 1억환을 받아 공장도 사고 양산체제도 갖출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지 못해 시발 자동차는 품귀현상을 빚으며 당초 8만환에서 30만환까지 가격이 급등했다고 합니다.
당시 부유층들은 이 차를 사기 위해 '시발계'를 부을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발차의 전성기는 1962년로 끝났습니다.
(2) 정부의 자동차 공업 육성과 새나라자동차
5.16으로 집권한 군부정권의 강력한 경제정책에 힘입어 1962년 4월 자동차 공업 5개년 계획이 발표되고 자동차 공업 보호법이 제정되기에 이릅니다.
그 일환으로 일본 닛산과 기술 제휴한 새나라 자동차가 설립돼 연산 6천대 규모의 자동차 조립공장을 갖추고 닛산의 블루버드 승용차 부품을 SKD 방식으로 수입해 조립,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1965년 새나라 자동차를 인수한 신진공업사는 이듬해 신진자동차로 상호를 바꾸고 도요타와 기술제휴를 통해 국산화율 20% 수준의 '코로나'를 생산하게 됩니다.
신진자동차는 국산 시내버스 최초 모델인 'FB100LK'를 1967년 출시했습니다.
이 버스는 차 높이가 185센티미터에 불과한데다 차폭도 비좁아 항상 '콩나물 시루'가 되곤 했지만 1970년대를 풍미한 추억의 시내버스로 각광받았습니다.
(3) 자동차 4원화 체제
제2차 경제개발계획과 함께 외국 선진업체들과 기술 제휴를 맺은 여러 회사들이 속속 자동차 생산에 뛰어들게 됩니다.
1967년 12월 설립된 현대자동차는 1968년 포드와의 기술 제휴로 '코티나', 이듬해에는 '포드20M'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1965년 설립된 아시아자동차는 피아트와의 기술제휴로 1970년 초부터 '피아트 124'를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아산업은 1962년 3륜 트럭 'K-360'과 'T-1500'을 시작으로 1969년에는 4륜 트럭인 '타이탄'을 생산하기에 이릅니다.
국내 자동차 산업은 이로써 신진자동차와 현대자동차, 아시아자동차, 기아산업 등 4개사가 경합을 벌이는 4원화 체제로 틀을 갖추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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