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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컴의 면도날

"침해했지만, 유효하다" ?

"국회의원의 심의, 표결 권한은 침해했지만 법안 가결 선포는 유효하다"

숱한 패러디를 남기며 새로운 유행어로 자리잡은 이번 미디어법 권한쟁의 심판의 결론을 듣고 어리둥절해하는 기자들에게 헌법재판소의 한 관계자는 '솔로몬의 판결'이 아니었냐며 되물었습니다.

신문법 표결과정에서 권한침해가 있었다고 판단한 재판관이 뒤이은 방송법 표결과정에서는 권한침해가 없었다고 판단하는 식으로 쟁점별로, 재판관별로 의견이 엇갈려 내용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았는데요. 만약 정치적인 고려가 있었다면, 이렇게 엇갈린 판단을 했겠냐는 것이 헌재의 반문이었습니다.

그래도 '침해했지만 유효하다'며 한 쪽에 명분을, 다른 한 쪽에 실리를 주는 논리는 어떻게 나온 건지 아직도 의아하기만 한데요. 그 의문은 헌재가 권한 침해가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권한침해의 원인이 된 처분 자체를 취소하거나 무효라고 할 수 있는지'(헌법재판소법 66조 2항)에 대해 재판관들이 어떻게 판단했는지를 두고 따져야 할 겁니다. 판결문을 한 번 볼까요. (이것도 신문법, 방송법에 따라 의견이 다릅니다)

신문법 가결 선포행위가 유효하다고 본 경우엔,

(1) 애초에 권한 침해가 아니었기 때문에 유효하다 (민형기, 목영준 재판관)

(2) 침해는 맞지만, 국회 입법과정의 유, 무효를 판단하는 것은 국회의장에게 맡기고 헌재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판단해야 하는데, 이번 사안은 아니다 (이강국, 이공현 재판관)

(3) 침해는 맞지만, 국회 법률제정과정은 권한 침해만 판단하면 된다 (김종대 재판관)

(4) 침해는 맞지만, 신문법 표결과정이 국회 의사원칙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 (이동흡 재판관)

국회부의장이 재투표 선언을 한 것이 일사부재의 원칙에 어긋났다고 재판관 다수가 판단했던 방송법에서는,

(1) 애초에 권한 침해가 아니었기 때문에 유효하다 (이강국, 이공현, 김희옥 재판관)

(2) 침해는 맞지만, 가결 선포 행위를 무효로 할 정도의 하자는 아니다 (민형기, 이동흡, 목영준 재판관)

(3) 침해는 맞지만, 국회 법률제정과정은 권한 침해만 판단하면 된다 (김종대 재판관)

이해가 되시는지요. 헌재는 지난 7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일어났던 그 소동은 민주주의 원칙을 크게 해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겁니다. 이 짧은 결론이, 저 수많은 말들 속에 감춰져 있는 것이지요.

14세기 무렵 영국의 수도사 윌리엄 오컴(William of Ockham)은 자신의 책에서 '보다 적은 수의 논리로 설명이 가능하다면, 많은 논리를 세우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이 참인지는 끝까지 알 수 없다지만, 설명은 간단할 수록 좋다는 뜻이지요. 암호처럼 복잡했던 판결문 속에 제 눈길을 잡아끌었던 문구는 신문법의 효력을 판단했던 조대현, 송두환, 김희옥 재판관의 의견이었습니다.

"이처럼 법률안에 대한 국회의 의결이 국회의원들의 심의, 표결권한을 침해한 경우, 그러한 권한침해행위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권한침해행위들이 집약된 결과로 이루어진 가결선포행위의 무효를 확인하거나 취소하여야 한다.

가결선포행위의 심의, 표결권한 침해를 확인하면서, 그 위헌성, 위법성을 시정하는 문제는 국회의 자율에 맡기는 것은, 모든 국가작용이 헌법질서에 맞추어 행사되도록 통제하여야 하는 헌법재판소의 사명을 포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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