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도쿄 시나가와구에 있는 이토 히로부미 묘에 다녀왔습니다. 한국 언론이 이토 히로부미의 묘를 제대로 취재한 것은 SBS가 처음이라고 합니다.
다소 한적한 주택가 외곽에 자리잡고 있는 이토의 묘는 일반적인 일본인의 묘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일본인들의 묘는 대개 화장을 해서 납골묘를 만들기 때문에 묘역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압니다만 이토 히로부미는 1천 평이 넘는 넓은 묘역을 부인 우메코 여사와 단 둘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석물과 樹齡 1백 년이 넘는 은행나무들로 장식된 이토의 묘는 깔끔하고 웅장한 느낌을 줬습니다. 관리인이 상주하며 관리하고 있는데다 제가 취재갔던 날은 마침 이토의 사망 100주년 행사에 대비해 시나가와구청에서 파견된 직원들이 구내 청소를 해둔 상태라 더욱 말끔하게 보였습니다.
이토의 묘는 돌로 쌓은 기단위에 2미터 높이의 봉분 형태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봉분이 흙이 아니라 시멘트 같은 질감의 석재로 만들어진 것이라서 다소 낯설었습니다만 봉분의 재질만 아니라면 전체적인 느낌은 조선시대 왕릉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2차대전 패전 이후에도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등 거물 정치인들이 정기적으로 찾았지만 요즘에는 거물 정치인이 이 곳을 찾는 것이 다소 뜸해졌다는 것이 관리인의 설명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고 일 년에 한 번 이토 히로부미의 사망 기념일인 10월 26일에 일반인에게 공개가 된다고 하는데 참배객들이 1백여 명 정도라고 합니다.
이토 히로부미라는 인물이 일본인의 기억에서 점점 잊혀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만 어쨌든 이토의 묘는 그 규모나 관리 상태로 보면 일본의 성지 같은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야스나리君.
오늘은 (10월 26일) 한국의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저격한 지 100년이 되는 날입니다.
君은 안중근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요?
안중근 의사 의거 백주년을 맞아 저는 일본 역사 교과서에 이 사건이 어떻게 기술되어 있는지를 조사해봤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 사용되는 역사 교과서 12종을 살펴봤는데 두 곳의 출판사를 제외하고는 안중근 의사가 일제 침략에 대한 저항 차원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는 취지로 기술돼 있었습니다.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 또는 폭도 정도로 기술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이토 묘역에 있는 안내판에도 안중근 의사를 '조선의 독립운동가'라고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묘지 관리인 말에 따르면 예전에는 '조선의 폭도'라고 기술돼 있었는데 90년대 들어 '폭도'라는 표현 대신 '독립운동가'라고 수정했다고 합니다. 일본 역사 교과서와 이토 묘지의 안내서를 보면서 일본 내에서 한국의 근현대사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서술하려는 노력이 일정하게 성과를 거두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야스나리君.
일본 사람에게는 '근대화의 영웅'이지만 한국인에게는 '침략의 원흉'인 이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면 한일 두나라의 서로에 대한 인식의 간극을 확인할 수 있고 또 그 차이에 대한 인정에서부터 서로에 대한 이해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몇 번인가 이 지면을 빌어서 이토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기도 했는데 끝내 글을 마무리할 수가 없었습니다. 쓰다보면 이토 히로부미라는 인물이 참 대단한 인물이구나 하는 감탄을 숨길 수가 없는데 이토에 대한 경탄과 조선의 침략 원흉이라는 이미지를 논리적으로 양립시키기가 어려웠습니다.
이 편지를 받는 일본 청년 야스나리군은 물론이고,이 글을 함께 읽을 한국의 독자들 어느 쪽도 납득시킬 자신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사실은 마찬가집니다.
이토의 묘에 가면서 저는 그 잠시 고민했습니다. 묘에 가게 되면 그 앞에서 그의 명복을 비는 묵념이라도 해야 되나 어쩌나 하고 말이지요. 고민 끝에 저는 취재에 앞서 이토의 묘 앞에서 잠시 고개를 숙이고 그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그이의 명복을 빌면서 안중근 의사와 그가 다른 세상에서는 죽고 죽이는 악연에서 해방되기를 빌었습니다.
이번 취재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묘지 관리인 모토다 씨였습니다. 63살로 세 명의 손주를 두고 있는 할머니였는데, 대단한 한류팬이었습니다. 욘사마와 가수 유진 씨를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취재를 마치면서 그 분과 저는 이런 말을 주고 받았습니다.
기자 : 이토公의 묘가 이렇게 훌륭한지 몰랐습니다. 정말 놀랐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안중근 의사는 아직 유해도 못 찾고 있습니다.
모토다 관리인 : 그 게 정말입니까?어디에 묻었는지 기록은 남아있지 않을까요?
기자 : 어디인지 추정은 하는데 당시 일본측의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록을 하지 않은 것인지,아니면 기록이 훼손되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모토다 관리인 : 한국으로 보면 안중근 씨는 영웅 아닙니까.그런데 묘조차 확인되지 않았다니 안타까운 일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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