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뉴스>
<앵커>
안중근 의사는 열혈 청년이자 시대를 앞선 선각자 이기도 했습니다. 안 의사의 의거는 이후, 독립운동의 길을 제시했고 그가 외친 동양 평화론은 100년이 지난 지금 새롭게 조명받고 있습니다.
정영태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1909년 하얼빈역에 울린 총성은 망국의 설움 속에서 갈길을 잃고 헤매던 민족의 가슴에 독립의 열망을 지핀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일제강점 36년 동안 안 의사를 본받은 제2, 제3의 안중근이 잇따라 배출되면서 일본 제국주의 간담을 서늘케 했고, 일제의 침략에 고통받던 다른 아시아 국가의 독립운동에도
귀감이 됐습니다.
[이태진/서울대 명예교수(안중근·하얼빈 학회 공동대표) : 우리에게는 안중근이 없느냐 이런 말을 할 정도로 중국인들의 항일 전선에서도 정신적인 기둥 역할을 했습니다. ]
법정진술과 옥중집필을 통해 밝힌 동양평화론은 안 의사가 민권운동가와 사상가로서도
높은 경지에 올라있었음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이 서로 도우며 문명국가를 건설하고, 동양평화를 이룩하자는 그의 외침은 100년이 지난 지금, 시대를 앞서간 혜안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조홍식/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동양평화론은 사실 유럽에서 통합이 시작 되었던 것보다 반세기정도 앞서서 굉장히 선각자적인 입장에서 주장을 펼쳤고요.]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자신의 민족만을 우선시하는 폐쇄적인 당시의 조류를 뛰어넘어 "아시아 민족들의 공영을 위한 열려 있는 민족주의였다"는 평가입니다.
사형 집행 직전에도 동양 평화에 이바지해달라는 유언을 남긴 안 의사의 숭고한 사상은 한 세기가 지난 지금 더욱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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