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요트 경기가 열린 카타르의 도하 세일링클럽.
한국이 이 대회 요트 종목에서 유일하게 따낸 금메달의 주인공인 남자 470급의 김대영(34)-정성안(38.이상 여수시청)이 환하게 포즈를 취했다.
같은 해 8월 중국 칭다오에서 열린 올림픽 테스트 이벤트에서 2위를 차지한 둘은 2년 뒤 열릴 올림픽에서 한국 요트에 사상 첫 메달을 안길 선수들로 주위의 기대를 잔뜩 샀다.
그러나 둘은 이때 이미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는 함께 하지 않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크루를 맡고 있는 정성안이 교육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이 대회를 끝으로 사실상 은퇴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대한요트협회에서는 뒤늦게 이 같은 사실을 알고 만류에 나섰지만 선생님이 되겠다는 정성안의 목표가 워낙 확고했다.
정성안은 순천대 교육대학원에 다니고 있던 2003년에 논문 학기만 남기고 있어 교원자격증을 받을 꿈에 부풀었지만 '학부 전공이 달라 대학원을 마쳐도 교원자격증 이 발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돼 땅을 쳤다.
곧바로 2004년 부산외대 레저스포츠학과에 입학해 10살 이상 어린 후배들과 함께 공부를 할 정도로 선생님의 꿈이 컸던 정성안은 2008년 올림픽 메달 가능성을 선뜻 포기한 셈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대영과 정성안의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았다.
김대영은 새 파트너와 함께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하고 정성안은 2008년에 다시 순천대 교육대학원에 재입학해 남은 논문 학기를 끝내고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김대영은 이동우와 짝을 이뤄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 나갔으나 탈락했고 정성안은 '재입학을 해도 논문학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첫 학기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고 망연자실했다.
정성안은 "운동만 하다 보니 사실 학사 규정 등을 잘 몰랐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정성안은 "2008년 5월에 (김)대영이도 올림픽 출전이 좌절되면서 '다시 해보자' 는 분위기가 생겼다.
그때 나는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대표팀 코치에 지원하려고 했는데 마침 대영이가 파트너도 없고 해서 다시 짝을 이루기로 했다"고 말했다 .
1995년에 처음 짝을 이뤄 470급을 탄 둘은 1998년 방콕, 2002년 부산, 2006년 도하에서 아시안게임 3회 연속 금메달을 따낸 '황금 콤비'다.
2010년 광저우에서도 금메달을 따낸다면 다른 종목에서 찾기 어려운 개인 종목 아시안게임 4회 연속 우승의 금자탑을 쌓게 된다.
일단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의 1차 관문은 통과했다.
1998년과 2002년 금메 달 6개씩 따냈던 요트가 2006년에는 금메달 1개에 그치자 협회에서 아시안게임 국가 대표를 조기에 확정해 대회를 일찍 준비하겠다는 취지로 11일 세부종목별 대표를 결 정했기 때문이다.
김대영-정성안은 11일 끝난 최종 선발전에서는 2위에 머물렀지만 1,2,3차 선발전을 석권해 아시안게임에 네 번째 도전하게 됐다.
개막에 앞서 17일부터 충남 보령 요트경기장에서 열리는 전국체전 요트 종목에도 함께 출전하는 김대영-정성안은 체전에서는 금메달 8개를 합작해내기도 했다.
정성안은 "2006년 체전 금메달 이후 2007년과 2008년에는 2위에 그쳤다. 올해 체전에서 정상을 탈환하고 내년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에 도전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그러면 2012년 런던 올림픽은 어떻게 될까.
정성안은 "내가 나이가 너무 많아져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에 다시 순천대 교육대학원 과정을 시작한 정성안 은 2011년 2월에 졸업하면서 꿈에도 그리던 교원자격증을 받을 예정이다.
그러나 사람 일은 또 모르는 일이다.
정성안은 "일단 내년 아시안게임까지 최선 을 다하고 그 이후는 그때 다시 얘기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