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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 돋는 '바바리맨' 살인자

억울하게 죽은 두 여인이 있습니다.

먼저 우리 나라에 IMF기 오기도 전인 1995년. 서울 광진구의 한 약수터에서 돌에 머리가 으깨지고, 옷이 벗겨진 채 발견된 주부 김 모 씨.

또, 지난 2001년 역시 옷이 모두 벗겨진 채  불탄 자신의 집에서 발견된  34살 정 모 씨. 두 사건 모두 당시 수사를 맡았던 광진경찰서에서 수사본부까지 구성해 수사 기록만 한 짐이 될 정도로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미제로 남았던 것들입니다.

이 두 여인을 죽인 범인이 잡혔습니다.

검거 소식을 듣고 경찰서에 갈 때만 해도 저는 그냥 혜진이, 예슬이 사건의 범인 정성현이나, 경기 서남부 부녀자 연쇄 살인 사건의 강호순보다 잔악성이 한 수 아래라고 가벼이 여겼죠.

하지만 각종 증거 자료와 압수품들을 찬찬히 살펴보던 저는 기자가 된 이후 처음으로 몸에 소름이 돋았다는 걸 알았습니다.

1. 무시하면 죽여버릴거야.

붙잡힌 사람은 37살 이 모 씨입니다. 이 씨는 재혼한 부모와 지독했던 가난 속에 자라 반사회적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약수터에서 김 모 여인을 죽였던 것도 김 여인이 "약수터는 공동 사용 공간이니 세수를 하지 말라"며 무심고 뱉은 한 마디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형님들은 이것 저것 묻는 제게 범인 이 씨가 무서운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수감생활을 마치고 나와서도 자신을 무시하면 다 죽여버리겠다"는 말이 결코 빈 말처럼 들리지 않았다고도 했습니다.

2. 사이코패스 + 성 도착증

이 씨는 공연음란 전과, 쉽게 풀어 말하면 사람들 많이 지나다니는 곳에서 자신의 성기 등을 노출해 불쾌함을 준 행동으로 경찰에 입건된 적이 있습니다. 그렇죠. 저의 여고 시절에도 종종 출현했던 '바바리 맨' 이었던 겁니다.

이 씨는 경찰이 실시한 정신장애진단(DSM-4 라고 부릅니다)결과에서도 사이코패스에 성 도착증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씨의 자동차 뒷좌석과 트렁크에서는 속옷을 포함해 여자 옷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모양이 특이합니다.

성기가 있는 부분에 구멍을 뻥! 뚫어놓았다거나 과장되어 보이도록 천을 덧댄겁니다. 자신의 성기 사진도 수없이 찍었습니다. 또 이 씨의 컴퓨터에서는 CD로 967장, 2테라바이트 분량의 포르노 필름도 발견됐습니다.

'남자니까 그럴 수 있겠지' 하시는 분들도 계실 수 있겠지만 그게 절대 아닙니다. 이 씨가 20년간 공들여 모은 것은 '스너프 필름' 즉,  살인이나 강간 같은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뤄지는 상황을 담아낸 포르노 필름들이었던 겁니다.

이 씨는 살해한 두 명의 여인의 시체도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성기를 나뭇가지나 샴푸병 등으로 훼손했죠. 그런데도 두 여인을 성폭행하지는 않았습니다.

위에 적은 스너프 필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씨는 정상적인 성행위로는 흥분을 느낄 수가 없었다고 하는데요, 어릴 적 김 모 여인을 죽인 그 약수터 근처에서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경험 때문이었을까요? 정말 뭔가 이상하죠?

3. 용의선상에도 오르지 않았던 인물

이 씨는 지난 두 사건의 수사가 진행될 당시 용의선상에도 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체의 속옷을 벗기고 나뭇가지 등으로 능욕하는 등 처참히 살해하지만, 성폭행을 하지 않았고 불까지 질러 유력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 씨가 어떻게 잡혔을까요?

이 씨는 점퍼 차림으로 지난달 26일 서울 광진구의 한 주택가를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순찰을 돌던 지구대 경찰은 이 씨가 손에 든 휴대폰을 매만지며 경찰차를 힐끔 힐끔 보자, 불심 검문을 시도합니다. (저는 그렇게 새벽에 들어오고 나가도 불심검문 같은 건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지구대 경찰관들 순찰 돌다가 차 세워놓고 맨날 잔다고 욕했는데..반성했어요 ㅜㅜ)

이 씨는 자신의 이름을 아무렇게나 둘러댔고, 자신이 들고 있는 휴대폰의 전화번호도 맞추지 못했습니다. (훔친 물건이니까요)

결국 경찰은 이 씨를 임의 동행해 경찰서로 데려갔고, 이 씨의 차에서 발견된 23명의 신분증 사진들 가운데 2001년에 죽은 정 모 여인이 있어 결국 덜미를 잡히고 말았습니다.

그 지구대 경찰관이 주의 깊게 보지 않았더라면 또 누군가가 죽임을 당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죠.

4. 죽임 당한 사람은 여인 두 명 뿐?

강력 사건을 취재하면서 뼈저리게 깨닫는 것 중에 하나는 성범죄자, 살인자 등의 부류는 교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 입니다. 한 번 사람을 죽여본 사람들이 또 죽이고, 성폭행 한 사람들이 또 성폭행하는 식이죠.(그래서 전 사형제에 찬성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만..)

기자들이 주목했던 것도 이 씨에 의해 죽임을 당한 억울한 사람들이 또 있는지 여부입니다. 경찰들은 98년도와 99년도에 역시 광진구에서 발생했던 살인 사건이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었는데요. 이제 이 씨의 신병은 검찰 손에 넘겨졌습니다.

동생을 죽인 범인을 9년만에 잡았다는 소식에 죽은 정 모 여인의 오빠는 무거웠던 마음의 짐을 내려 놓았다는 말과 함께 경찰에 고마움을 전했는데요. 칭찬보다는 지적과 비난에 익숙한 기자지만, 이번 사건만큼은 광진경찰서 지구대 형님과, 강력팀 형님들의 노고를 엄지 손가락 크게 펴서 치켜세워주고 싶습니다.

또,  세상에 더 있을 지 모르는 살인 피해자들의 유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진실의 퍼즐이 빨리 맞춰졌으면 합니다.

정.말.

집에 일찍 일찍 다니고, 문단속 잘 하라는 엄마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나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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