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앞두고 길이 많이 막히던 9월 28일 오후, 서울 양재동의 한 연습실에서 나윤선씨를 만났습니다. 나윤선씨는 저와의 인터뷰 앞에 있던 일정이 다소 늦게 끝난데다 교통체증까지 겹쳐 약속시간보다 20분 여분 늦게 도착했습니다.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커다란 비닐 가방을 들고 숨을 헐떡이며 뛰어들어오는 동시에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연신 "죄송합니다."를 연발하길래 저는 나윤선씨 매니저인줄 알았는데 고개를 들었을 때 얼굴을 본 순간 나윤선씨 본인이더군요. 첫 대면부터 막연히 상상했던 이미지가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명망이 있는 문화예술인들 가운데 까탈스러운 성격을 보여주는 분들을 많이 봐 왔기 때문에 기다리느라 생긴 약간의 짜증은 당황스러움에 금세 묻혀버렸습니다.
나씨는 최근 프랑스 정부가 주는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Chevalier)장을 받았습니다. 한국인으로 최초는 아니지만, 돈과 권력의 이중주 혹은 독주를 통해 받을 수 있는 어떤 어떤 대학의 명예박사학위처럼 아무에게나 주는 훈장은 아닌지라 무척 영예로운 훈장입니다. 나윤선씨 부친은 국립합창단을 지휘하신 나영수씨이고, 어머니는 한국 뮤지컬 1세대인 김미정씨로 음악가 집안 출신입니다. 하지만 대학 때 전공은 불문학을 했고 의류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평범한 젊은이였습니다.)
▶ 어릴 때부터 음악에 소질이 있었나요?
나윤선: 네. 사실 저는 부모님이 두 분 다 음악을 하셨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가까이 접하고 살았었는데. 두 분 하시는 거 보니까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제가 직업으로 택하거나 공부 해봐야겠다라는 생각을 사실은 못했어요. 심심풀이로 친구들이랑 노래 부르고 이런건 했었지만 어쩌다 보니까 하게 됐네요.
▶ 어린 시절에 부모님이 음악을 권유하시지 않았나요?
나윤선: 전혀 없으셨어요. 왜냐하면 당신들께서 얼마나 어려운지 아시니까 아마 권하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한테 늘 하고싶은거 해라 하셨죠.
(물론 노래는 취미로 계속 가까이해 대학시절에는 프랑스 문화원이 주최하는 샹송 경연대회에서 1위를 하기도 했고, 1994년에는 이제는 전설이 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 연변 처녀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습니다.(1기 멤버로 설경구, 방은희 씨와 같이 공연했습니다. 지금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재즈가수지만 1995년 프랑스로 유학을 가기전까지는 재즈란 음악은 들어본 적도 없었답니다. 프랑스를 택한 것은 샹송을 제대로 배워보겠다는 이유로 택했는데 마침 당시 파리에 유럽에서는 최초로 재즈학교가 세워져 그곳에 입학하게 됐다고 하니 참 인연이란 것이 절묘합니다.)
▶ 유학을 결정하실 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나윤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요. 어떤 특별한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뭐가 돼야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었어요. 그 당시에는 그냥 노래 공부를 해보고 싶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하게 된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 제가 재즈에 대해서 좀 알았으면 미리, 재즈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았으면 아마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요. 거기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나 지식이 없이 시작했기 때문에 용감하게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프랑스를 선택하신 이유는요?
나윤선: 제가 프랑스 샹송에 좀 관심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늘 샹송을 가까이 했었고요. 그리고 제가 노래 공부를 하러 떠난다고, 떠나겠다고 결심을 하고 나서 알아봤더니 파리에 유럽 최초의 재즈학교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두 가지를 다 해보려고, 샹송이랑 재즈를 다 해보려고 프랑스를 선택했죠.
▶ 음색이 일반 재즈가수들과 달라서 힘들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또 훌륭하게 극복하셨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나윤선: 학교 처음 입학해서 '재즈 스탠다드'라는 것부터 공부를 하게 됐거든요. 그러면서 제가 보컬 전공이니까, 재주 가수 분들의 음반을 들려주시더라고요. 주로 미국의 재즈보컬리스트들의 음반을 많이 들려주시는데 그걸 들으면 굉장히 허스키하고…, 두꺼운 목소리가 대부분이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아 내가 잘못 선택했구나. 그만 둬야겠다.'라는 생각을 바로 했어요. 선생님을 찾아가서 '선생님 제 목소리는 약간 소프라노인데 재즈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 드렸더니 막 웃으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거 한번 들어보라고 몇 개의 음반을 주시는데, 그 당시만해도 저는 정말 생소했던 유럽의 재즈보컬리스트들의 음반이었어요. 그걸 들었을 때 참 놀랐던 것이 저와 비슷한 목소리를 가진 분들이 많이 계시고 정말 다양한 색깔의 목소리를 가지고 자기들 만의 재즈를 만들어내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서 용기를 얻어서 내 목소리 갖고 해봐야 겠다. 그래서 노래하기 시작했고 선생님들도 굉장히 많이 격려를 해주셨고요.
▶ 프랑스에서 공부하면서 그곳 특유의 문화도 많이 느끼셨나요?
나윤선: 사실 처음에 제가 학교에 입학해서 바로 공연을 하러 다녔거든요. 그 때 사실 저는 학생의 신분으로 아직 재즈가 뭔지도 잘 모르고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 되는 그런 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무대에 섰을 때 관객들은 저를 하나의 아티스트로 봐주시더라고요. 제가 어디서 왔는지, 뭘 하고 있으며 제가 뭘 했는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고요.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저를 아티스트로서 받아들여주는 그 모습이 저는 너무 좋았고 인상적이었어요. 그렇게 또 받아들여주시니까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 본인 목소리의 특징에 대해 어떤 평가를 받으시나요?
나윤선: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좀 난감합니다. 제가 제목소리를 사실은 잘 모르겠어요. 노래하는 제가 듣는 제 목소리와 관객석에서 듣는 제 목소리가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글쎄요. 거기서는 그렇게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제가 좀 운이 좋아요. 동양인이 흔하지 않은 서양의 재즈신에서 그렇기 때문에 그분들이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호기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들어주셨거든요. 그분들 말씀은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했던 전형적인 재즈에서 벗어나서 자기 나름의, 한국인으로서의 정서를 갖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특별히 어떤 흉내를 내거나, 꾸민다거나 그런 게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듯 해서 좋다고 평을 해주시더라고요.
☞ 계속 [인터뷰] 재즈가수 나윤선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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