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1일 "지금은 남북관계의 중대한 전환기이자 격동기"라고 규정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그러나 뒤이어 "일관성 있고 당당한 대북기조를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전환기이자 격동기인데도 종래의 정책기조를 지속한다는 말 속에서 우리는 대북 정책의 경직성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남북, 북미 문제 보도에서 언론 역시 정부에 못지않은 경직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난 6일 SBS 뉴스는 북한의 최근 유화적인 태도를 근본적인 변화로 볼 수 없다는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말을 전했습니다. 보즈워스의 한국 방문 결과를 정리한 뉴스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북미 양자 대화가 6자회담의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기존 대북정책의 기조를 재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이날 뉴스는 불과 며칠 뒤에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SBS 뉴스는 지난 12일 미 국무부가 북한이 원하는 북미 양자대화에 응할 준비를 마쳤다고 한 미국무부의 발표를 보도했습니다. 뉴스는 보즈워스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순방을 통해 양자대화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었다고 보도했습니다. 6일 뉴스는 보즈워스와 우리 쪽 관리가 표현하는 말을 사실로서 보도했지만, 그것이 진실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정책기조 유지를 강조했지만, 그때 이미 미국이 정책전환의 준비를 끝내놓은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지난 13일 SBS 뉴스는 '6자회담의 틀 안에서 이뤄지는 북미 양자회담'이라는 고정관념에 아직도 매달려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날 뉴스는 북한을 6자회담으로 끌어내기 위한 방법론으로 미국이 양자회담에 나서는 것이며, 실질적인 내용은 달라진 게 없다는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전했습니다. 뉴스는 한편으로 양자대화가 열린다고 해도 이것이 곧바로 6자회담 재개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고 전망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양자회담이 6자회담에 앞서 열린다는 사실이며, 이것은 청와대 쪽의 해석과는 달리 실질적인 내용이 달라진 것입니다. 뉴스는 또 6자회담을 걱정했는데, 초점은 이제 양자회담으로 옮겨졌습니다.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느끼는 경직성이 쓸데없는 걱정이었으면 합니다. 정부가 겉으로는 정책기조를 유지한다고 말하지만, 내면적으로는 신속한 전환을 준비하고 있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언론입니다. 정책전환, 특히 대북정책 전환은 파장이 큽니다. 경직성은 정부에 앞서 언론이 먼저 벗어나야 합니다. 정부가 과감한 정책전환을 드러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SBS는 여기저기서 작은 허점들을 드러낸 뉴스들을 많이 보도했습니다. 지난 11일 뉴스는 법무부 장관을 지낸 천정배 민주당 의원이 용산참사 재판에 항의해 검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중 김준규 검찰총장과 2분 동안 만났다고 보도했습니다. 출근하던 김 총장이 상사였던 천 의원을 보고 관용차에서 내렸다는 것입니다. 뉴스는 이날 천 의원이 민원인 신분으로 김 총장을 만났는데, 그의 길거리 민원은 소득 없이 끝났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이날 천 의원은 검찰총장을 만나러 온 민원인이 아니라 검찰에 대해 항의 시위 중이었습니다. 이날 뉴스는 또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의회 연설 도중에 "거짓말 하고 있네." 라는 고함을 질렀던 공화당 의원이 궁지에 몰렸다고 보도했습니다. 뉴스는 욕설은 고사하고 폭력도 서슴지 않는 우리 국회가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안의 강행처리냐, 저지냐를 두고 몸싸움을 벌이는 우리나라 국회와 대통령 연설도중 고함을 지른 미국 의회를 바로 비교할 일이 아닙니다. 글쎄, 우리나라 국회에서 대통령 연설도중 고함을 지를만한 간 큰 의원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국립국악원 잔디마당에서 상업적 행사인 고급 외제 승용차 발표회가 열린 것을 비판한 지난 15일 SBS 뉴스는 뚜렷한 문제의식을 가진 기사였습니다. 뉴스는 이런 행사가 국악 홍보행사라고 판단해 장소를 빌려줬다는 국악원측의 해명은 궁색한 주장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이날 행사는 국악을 홍보하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고급 외제차가 우리 고유의 국악과 결합함으로써 '중후함'을 추구하는 한국의 부자들에게 파고들기 위한 마케팅 전략에 국악원이 장단을 맞춰 준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뉴스가 인용한 국악원 직원의 설명에서는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더 큰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벤츠 탈 정도면 사회적으로 오피니언 리더들인데, 그분들에게 우리 전통 예술을 소개하자는 것"이라는 대목입니다. 이날 행사장에 초청된 인사 600명 중 570명이 벤츠 신차 구매예약자들이었습니다. 뉴스는 국악원측의 말을 빌려, 이들을 사회지도층이라고 불렀습니다. 고급 외제차를 타는 사람들은 구매력을 가진 계층이라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는 점에는 동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론은 이들을 오피니언 리더나 지도층이라고까지 추켜세우는 주장은 무시하고 인용하지 않거나, 인용을 하려면 비판이 따랐어야 합니다.
SBS 뉴스는 지난 15일 40대 여성으로부터 동물원의 코끼리가 코로 던진 돌에 맞아 머리를 다쳤다는 신고를 받은 경찰이 코끼리의 혐의를 확인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를 굳이 뉴스로 다루려면 초점을 바꿨어야 합니다. 관람객이 돌을 맞은 것이 사실이라면 코끼리가 돌을 던졌느냐, 아니냐는 부차적입니다. 초점은 관람객이 동물원에서 다쳤을 때 동물원측에 민형사상의 책임을 어디까지 물어야하는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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