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호가 발사된 다음날 오후,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전날 상황을 다른 신문들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기 위해 신문을 다 쌓아놓고 보고 있는 저에게 옆자리 후배가 묻습니다.
"선배, 이거 뭐에요? 실패한 거라고 봐야 하는건지, 절반의 성공이란 건 뭔지.출장 갔다왔는데 누가 물어보면 뭐라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그정도까지 간 것만해도 가능성을 보여준 거다. 결코 완전한 실패는 아니다, 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했으니 어쨌건 실패한 거지 절반의 성공이란게 어딨냐, 그리고 성공한 부분은 러시아의 몫이지 우리 몫은 실패한 거 아니냐….
이런 논란이 계속됩니다. 어떻게 봐야할까요?
+++++++++++++++++++++++++
3, 2, 1…발사.
지난번 카운트다운이 멈췄던 7분 56초가 지날 때만 해도 그다지 큰 긴장감이 없었습니다.
카운트다운할 때 전 미디어센터에 있으면서 장내 안내 방송을 받아쳐 회사로 넘기는 일을 했거든요.
그러나 카운트다운 숫자가 작아질수록 받아치는 손가락에 땀이 배기 시작합니다.
'발사'란 말이 떨어지자 땅이 흔들리는 듯하고 엄청난 소리가 들립니다.
미디어센터에 있던 기자들도 대부분 이 광경을 보러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같이 있던 선배는 아직 회사와 통화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전 바로 뛰어나갔습니다.
나로호가 하늘 위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되더라도 일단 내 눈이 보이는 곳에서 폭발하지만 말아라...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이내 우리 눈에서 사라지자 지켜보던 기자들도 박수를 치면서 환성을 터뜨렸습니다.
하지만 위성 발사에서 진정 어려운 건 정상 궤도 진입이니까...다시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장내 아나운서가 전하는 방송은 모든게 '정상'이란 겁니다.
그렇게 흥분된 시간이 흐르고 있는데 브리핑에 앞서 배포한 자료에는 '부분 성공'이라고 써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때부터 분위기는 급속히 가라앉았습니다.
항우연 원장은 완전 죄인이 된 분위기였습니다.
특히 페어링 분리 여부를 담은 사진을 기자들이 볼 수는 있지만 촬영은 절대 안 된다는 교과부-항우연의 발표에 기자들이 강하게 항의하는 과정에서 일부 기자가 교과부와 항우연 측에 '맨날 거짓말만 하고 뭐하는거냐'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한때 분위기가 험악해지기까지 했습니다.
거짓말 운운하며 소리지른 기자의 기분은 충분히 이해가 갔지만 그다지 좋아보이진 않았습니다.
+++++++++++++++++++++++++
분명 이번 나로호 발사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위성 발사의 모든 과정이 깔끔하게 마무리돼야 성공이니까요.
우리 정부야 '포괄적인 기술 지원' 등을 이야기하면서 어떻게든 러시아에도 책임이 있다고 하겠지만 러시아가 맡은 1단 로켓이 제 역할을 한 건 분명해 보이니까 러시아에 책임을 넘기기도 쉽진 않아 보입니다.
사실 위성이 제 궤도를 돌기 위해선 우주로 무작정 보낸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야구에서 외야수가 높이 날아오는 공을 잡기 위해선 여러 과정이 필요하죠.
우선은 공의 낙하지점을 예상해 비슷한 위치까지 체공 시간에 맞춰 뛰어와야 하고, 그 지점에 오더라도 공의 무브먼트를 잘 살피면서 최종 포구 지점을 선택하고 공의 상태에 가장 맞게 글러브를 들이밀어 안전하게 잡아야 아웃이 됩니다.
어느 한 부분도 중요하지 않다고 보기 어렵죠.
우주 방향으로 날아가려는 힘(결국 속도에서 나오죠.)과 지구의 인력이 정확히 균형을 이루도록 속도를 유지하지 못하면...대개의 경우 속도가 목표에 미치지 못하면 제 궤도를 돌지 못하게 되고 결국 대기 중으로 소멸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정부 발표대로 '페어링' 분리에 문제가 있었다면 목표 속도에 미치지 못하므로 이런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우주 개발은 말 그대로 천문학적인 돈이 드는 작업이기 때문에 이미 '과학과 공학'의 영역에만 있다고 볼 순 없습니다.
다른 어떤 거대 과학 프로젝트 이상으로 우주 개발은 정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인만큼 세금이 들어갈 수 밖에 없고, 이렇게 되면 과연 이 사업에 돈을 지원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니까요.
지금보다 기술이 덜 발전했던 냉전 시대가 미국 우주 개발의 최전성기였다는 걸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냉전이 끝난 이후 우주 개발 관련 예산은 예전만큼 지원받지 못했고, 이 때문에 NASA를 나온 엔지니어들이 수학적 백그라운드를 무기로 금융가로 흘러들어간 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합의가 이뤄졌다면, 성공에 조급증을 가져선 안 됩니다.
엄청난 돈이 들기에 철저하게 감시는 해야 하지만, 한 번 실패했다고 바로 역적으로 몰려선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항우연 원장이 마치 죄인처럼 위축돼 있는 모습, 그를 죄인처럼 다루는 모습이 저는 보기 싫었습니다.
혹자는 북한과 비교하면서 우리는 최고의 IT 기술을 갖고 있으니 우주 개발에서도 IT 기술을 바탕으로 금방 북한을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고도 하더군요.
하지만, IT 기술과 발사체 기술은 번지수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이런 생각은 성공 조급증을 불러올 뿐입니다.
이제 우리 발사체 기술은 막 혼자 일어설 수 있는 단계입니다.
막 일어서는 아기에게 빠른 걸음, 뜀박질을 바라는 건 무리겠죠.
막 일어서는 아기는 여러차례 넘어지고 넘어지고 하다 비로서 제대로 걸음마를 시작하고 뜀박질까지 합니다.
이 과정을 무시하고 속성으로 모든 걸 처리하려하면 필연적으로 사고가 납니다.
이번 발사를 통해 분명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초기에 폭발하지 않고 궤도 진입 단계까지 가면서 전 과정을 경험했다는 자체가 엄청난 수확입니다.
내년 봄에도 나로호 발사가 예정돼있습니다.
이런 대형 이벤트는 정치 논리에 좌우되기 쉽습니다.
여론도 급변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성공은 정직합니다.
우리가 지켜볼 것은 분명합니다.
정치 논리에 휘둘려 일정을 과도하게 서두른다거나
세금이 투입된 개발 자금,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뻘짓하지 않는가...
출장 사흘 동안 묵었던 나로도의 민박입니다.
이번에 가보고 나로도의 절경에 놀랐습니다.
가장 멋있는 곳은 페어링 분리 사진 확인하러 갔던 발사대 쪽인데...거긴 통제구역이니 못 갈 것이고...민박집만 해도 참 멋있더군요.
바로 앞에 바다가 펼쳐져있고, 산으로 둘러싸인게... 8월에 갑자기 북적거렸던 이 작은 섬마을은 다시 고요한 적막에 잠겨있을겁니다.
그 속에 처박혀있는 연구원들이 내년 봄엔 활짝 웃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편집자주] 보도국 문화부의 젊은 피, 유재규 기자는 종교계와 대중문화, 문화재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2005년 SBS에 공채로 입사한 뒤 국제부를 거쳐 사회2부 사건팀을 거쳤습니다. 따뜻한 시선과 섬세한 시선으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하는 유 기자는 최근엔 박영석 원정대의 에베레스트 남서벽 도전을 현지에서 동행취재했습니다. |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