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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투사' 황영기 추락하나?

돌아온 검투사' 황영기 KB금융 회장이 금융업계에 화려하게 복귀한 지 1년 만에 혈투장인 '콜로세움'에 서게 됐다.

장시간 소명에도 불구하고 징계심의위원회가 직무정지에 상당하는 중징계를 결정한 데다 금융당국이 현직 사퇴까지 압박하고 있어 당국과 맞서든지 갑옷을 벗든지 택일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최고경영자(CEO)는 지면 죽는 검투사"라며 승부사의 모습을 보여 온 황 회장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에 금융업계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 복귀 1년 만에 금융위기에 발목

이번 징계는 황영기 회장의 금융인생에 큰 상처를 낼 것으로 보인다. 승부 근성과 강한 추진력 때문에 '금융계 검투사'로 불리는 황 회장은 민간 금융계가 키워낸 자생적 금융 엘리트였다. 탁월한 국제 감각을 갖춘 황 회장은 우리금융 회장 재임 시절부터 화제를 몰고 다녔다.

그는 우리금융 회장 시절 공격적인 영업을 통해 시가총액을 2.7배 늘리고 총자산 순위에서 금융업계 3위였던 우리금융을 3년 만에 국내 최대 금융그룹으로 끌어올리는 성과를 올렸다.

부정적인 견해도 있지만 덩치를 키워야 한다는 황 회장의 직관이 옳았는지는 단기적인 관점이 아니라 급변하는 국제 금융환경 속에서 시간을 두고 평가해야 한다는 금융 전문가들도 많다.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관료들은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훗 날 황 회장의 결단이 놀라운 선견지명으로 박수갈채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 황 회장에 우호적인 사람들의 주장이다.

황 회장은 우리금융을 이끌면서 주식매입선택권(스톡옵션), 우리금융 직원들에 대한 상여금 지급 문제, 경영정상화 이행약정(MOU) 존폐 문제 등으로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와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웠고, 결국 연임에 실패한 채 자리에서 물러났다.

황 회장은 그러나 15개월간의 공백기를 거친 뒤 지난해 9월 국내 굴지의 KB금융지주 회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는 우리금융 회장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한나라당 대선 선대위 경제살리기 특위 부위원장을 맡아 대선 승리에 기여한 뒤 초대 금융위원장과 산업은행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됐다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이른바 '떡값' 검사 명단 발표 때 실명이 거론되면서 막판 탈락하는 등 많은 화제를 뿌렸다.

KB금융 회장 취임 일성으로 국내 대형 금융기관과 대등합병을 통해 앞으로 5년 내 자산 600조 원의 아시아 10위, 세계 50위의 금융그룹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취임과 동시에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황 회장은 꿈을 채 펼쳐볼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숨죽이며 때를 기다리던 황 회장은 올해 들어 금융위기가 잦아들 기미가 보이자 1조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는가 하면 증권사와 생명보험사 인수합병(M&A)을 추진하는 등 검투사 기질을 서서히 발휘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는 복병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수년전 우리금융 시절 투자했던 파생상품이 이번 금융위기로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그를 위협하는 장애물이 된 것이다.

◇ 당국과 한판 승부 주목

중징계를 받은 황 회장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많지 않다.

KB금융이 '금융위원회의 최종 결정을 지켜봐야 한다'며 입장 표명을 자제하는 등 금융위의 결정에서 징계 수위가 낮아질 가능성에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지만 결정이 번복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금융위가 제재심의위원회의 결정을 수용해 직무정지에 상당하는 징계를 확정하면 황 회장은 재심 청구를 검토할 수 있다.

황 회장 측 관계자가 '금융위 결정 후 한 달 안에 언제든 재심을 신청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어 재심 청구 가능성이 엿보이고 있다.

금융위가 결정을 번복할 가능성이 낮은 점을 고려해 재심 청구보다는 행정 소송과 같은 법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도 주목된다. 우리은행장 시절 대주주인 예보와 맞섰던 검투사의 기질을 드러낼 수 있다는 관측이지만 당국과의 전투를 시작한다면 황 회장 본인은 물론 KB금융에도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황 회장이 당국과 일전 불퇴를 선언할 경우 징계 시점을 놓고서도 법적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징계 통보를 받은 날로부터 4년간 금융회사 임원 선임이 제한되기 때문에 황 회장이 2011년 9월에 3년 임기가 끝나면 연임이나 다른 금융회사 취임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황 회장 측은 과거 우리은행장 퇴임 일을 징계 시효의 시점으로 삼아야 하고 이에 따라 연임은 가능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황 회장 스스로 갑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싸움터를 떠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연임이 어렵게 되면 인수.합병(M&A) 등 KB금융의 확장 전략 추진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 조직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황 회장이 명예로운 사퇴를 결정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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