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으로부터의) 귀환 전문기자'라도 된 것일까요.
2주 전 현대아산 근로자 유성진씨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귀환 현장을 지켰던 인연(?)이 이번에는 800연안호 선원들의 귀환 현장까지 이어졌습니다.
취재팀과 함께 이른 아침에 회사를 출발해서 연안호가 들어오는 속초해양경찰서 함정전용부두에서 연안호를 오후 내내 기다렸습니다. 연안호를 우리 해경이 북측으로부터 인계받는 시간은 오후 5시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인계장소가 속초에서 북동쪽으로 25마일 떨어진 북방 군사분계선(NLL) 해역인데다, 연안호의 엔진상태가 좋지 않아서 도착 시간은 밤 8시 앞뒤를 왔다갔다 하고 있었습니다.
저희 메인뉴스는 8시에 시작하기 때문에 뉴스시간인 8시에 뭔가 일어난다는 것은 아주 달갑지 않은 상황입니다. 미리 뭔가가 일어나서 경쟁사보다 먼저 뉴스에 담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테고, 차라리 밤 늦게 일어나서 경쟁사도 뉴스에 담지 못하면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인 것이 인지상정(?)인지라 가장 애매모호한 시간대가 밤 8시에서 9시 사이입니다.
그런데, 메인뉴스의 머릿기사로 잡혀있는 상황이 8시에도 가변적이라면 해당 기사를 담당하는 기자는 일초, 일분이 정말 피가 마르고 땀이 솟는 상태일 수 밖에 없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연안호는 8시뉴스 시작과 함께 내항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부두에 접안은 하지 않은 상태가 한동안 계속됐습니다. '왔지만 아직 오지 않은' 상황. 차라리 현장 상황을 (절제되지 않았더라도) 실시간으로 전할 수 있는 중계차 앞에 앉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습니다.
'잠시 뒤 귀환'이라는 뉴스제목이었지만 사실 돌아온 것이나 마찬가지. 태연한 척 하며 앵커의 질문에 답하고 있지만 바르르 떨리는 손은 마우스를 움켜쥐고 있습니다.
상황에 맞게 2중 3중으로 준비한 기사를 메모장에서 작성한 뒤 노트북 컴퓨터의 모니터에 띄워 놓고 읽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상황에 맞지 않는 기사를 '당연한 듯이' 읽어버리면 그야말로 대형 방송사고가 나는 살떨리는 현장입니다. 지난 두 번의 '귀환 취재'가 도움이 됐던지, 다행히 8시 뉴스 생방송은 무사히 마쳤습니다. 연안호는 방송을 마칠 때 까지도 접안을 하지 않고, 약식 검역을 받고 있었습니다. 일단 급한 뉴스를 끝냈으니 조금은 홀가분한 기분으로 취재진 틈에 들어가 선원들의 귀환 장면을 지켜봤습니다.
박광선 선장을 선두로 연안호 선원들이 드디어 하선하고 있습니다. 이미 화면 양쪽으로는 수많은 카메라들이 스트로보를 터트리고 있습니다. 해경의 포토라인이 그나마 조금 넓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습니다.
'손 좀 흔들어 주세요!' '좀 웃어주세요!' 등 다양한 사진기자들의 요구에 응한 뒤 무선 마이크를 몇 개씩 손에 모아 든 방송기자들이 귀환 인터뷰를 위해 선원들 옆에 바짝 붙었습니다. 선원들 옆으로는 정부측 요원인 듯한 분이 손목시계를 보고 있습니다.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에서 만난 유성진씨의 경우에도 그랬지만 선원들의 복귀 일성(一聲)은 누군가가 써서 암기시킨 것이 거의 확실한 문구였습니다. '걱정해 주신 정부와 국민들께 감사드립니다.'
솔직하게 마음에 있는 말을 꺼내놓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일까요. '여보! 나 왔어….' 나, '무섭기도 하고, 앞날이 걱정도 되고,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이런 거 말입니다.
오히려 속 시원하게 솔직한 것은 역시 한 달동안 기다린 가족들이었겠죠. 신문 사진기자, 방송 카메라기자, 신문 취재기자, 방송 취재기자, 방송 카메라기자 보조, 인터넷 신문기자, 정부 관계자, 경찰, 군인…건장한 남자들로 북적대는 포토라인 가장 안쪽에 한 할머니가 서 있었습니다. 제가 비집고 들어간 자리 바로 앞이었는데, 키가 워낙 작아서 처음에는 계신 줄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께서, 선원 가운데 한 명에게 크지도 않은 소리로 말씀하시는 게 제 귀에 들어왔습니다. '아가! 고생 많았다.' 그 말을 마친 할머니는 분명히 울기 시작하셨습니다.
위의 사진을 보시죠. 당연히 선원들을 찍고 있어야 할 YTN 카메라가 할머니의 얼굴을 화면 가득담기 위해 제 왼쪽을 향하고 있죠. 이 카메라 기자도 저와 함께 할머니의 말소리를 들었던 겁니다.
바다에 고기 잡으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오라는 집에는 오지 않고 엉뚱하게 북으로 흘러간 아들. 계기 고장이라고는 해도 아들이 집에 돌아오지 못한 한 달 동안 그 어머니의 마음 속은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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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만나 취재하고 기사쓰기도 바쁜데 무슨 호사냐고 하실 분도 계실 지 모르지만, 저는 요즘 4,50년대 역사를 다룬 책을 틈틈이 읽고 있습니다. 그동안 띄엄띄엄 대충대충 알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에 대해 조금 더 확실히 알아가는 과정도 즐겁지만,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20세기 중반을 살았던 우리 어르신들의 삶이 얼마나 신산스러웠을까 하는 일종의 '연민'입니다.
기자들 사이를 뚫고 포토라인 제일 앞으로 나가 '아가!'를 외쳤던 할머니는 아들이 북한 장전항에서 '겪었을 지도 모르는 과정'에 틀림없이 당신의 젊은 시절, 죄없는 사람이 치도곤을 당하고, 군인들이 한 번 왔다 가면 쥐도새도 모르게 사람들이 세상을 뜨는, 그런 시절의 기억들을 겹치지 않을 수가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연안호 선원들의 귀환으로 남북 대화의 걸림돌이었던 '억류자 문제'는 완전히 일단락됐다,고 뉴스는 보도했습니다. 이제 다시 (사람으로는) 서로 줄 것도 받을 것도 없는 평평한 관계로 돌아간 데다, 다음달 말에는 정말 오랜만에 남북의 이산가족이 금강산에서 만납니다. 물론 바람직한 일일 겁니다.
그러나 어제 포토라인에서 본 할머니처럼 아들이 北에 다녀왔다고 걱정부터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은 과연 언제나 우리 곁에 올까요. 할머니께서 60년 전이나 어제나 하나도 변한 것 없이 눈물 흘린 기억만 갖고 세상을 떠나기 전에, 꼭 그런 세상을 보여드려야 할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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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정치부에서 국방부를 출입하고 있는 유성재 기자는 2001년 SBS에 입사해 정보통신부 출입기자와 인터넷뉴스팀 기자를 거쳐 사회2부 경찰기자팀의 부팀장격인 '바이스캡'으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IT분야에도 전문성을 가진 유기자는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현장의 모습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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