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투 좋아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88연승에 빛나는 멕시코의 영웅이죠. 90년대 권투계를 풍미했던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 최근에는 4체급 석권을 노리고 있는 필리핀의 신성 파퀴아오가 오스카 델 라 호야를 누르면서 권투계에 핫 이슈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모두 저돌적인 인파이터입니다. 상대를 코너로 모는 압박 권투죠. TV로 시청하시는 분들은 잘 느끼기 어렵겠지만 한발짝 뒤로 물러설때마다 두걸음씩 다가오는 이들의 위압갑은 실로 공포스럽기 까지 합니다.
그럼 잘나가는 권투선수들 중에서는 인파이터만 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60년대 기억하시는지요? 당시 최고의 핵주먹이었던 조지 포먼과 무하마드 알리의 대결. 도박사들은 한물간 알리보다는 젊은 포먼의 파워에 더 높은 점수를 매겼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알리의 KO승. 상대의 주먹을 나비처럼 피해다니다가 포먼이 지칠대로 지친 8회 세방의 스트레이트와 훅으로 게임을 결정지었습니다. 이른바 아웃복서입니다.
5체급을 석권한 아웃복싱의 전설 슈거레이 레너드도 유명한 아웃복서죠. 이들의 명성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웰터급을 풍미했던 휘태커도 상대를 조롱하는 듯한 노 가드 플레이에 폭풍펀치까지(팔을 빙글빙글 돌리다 날리는 스트레이트 보셨나요). 공격적인 인파이터보다는 화려한 스템의 아웃복서가 시청자들에겐 더 호소력이 있긴 합니다.
화제를 돌려보겠습니다. 2009년 WBC의 영웅 봉중근 투수, 그리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Five Tool Player라며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추신수 선수...
투수와 타자로 서로의 갈길은 다릅니다. 그런데 두 선수의 공통점은 모두 고등학교 시절 팀의 투타 에이스 였다는 겁니다. 원래 아마추어 시절 공을 잘 던지는 선수가 타격도 잘 합니다. 구질을 잘 알고 선구안이 좋아 투수 출신 타자가 대성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2000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주목받던 좌완투수 릭 엔키엘이 알 수 없는 이유로 폭투를 연발하며 대중들로부터 잊혀져 갈때쯤 명장 토니 라루사 감독은 그를 타자로 전향했습니다. 타자로서의 재능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엔키엘의 변신이 만족스럽다고 보시는 팬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서두가 길었습니다. 갑자기 법조기자가 뜬금없이 왠 권투와 야구 얘기냐 이렇게 물어보실 수도 있습니다.
어제 김준규 검찰총장의 기자간담회 내용을 듣다 문득 든 생각입니다.
며칠전 검찰 차장,부장 평검사 인사가 있었죠. 이른바 특수수사의 요직이라고 불리는 서울지검 3차장과,대검 수사기획관 자리에 특수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 대신 관리 업무 경험이 많은 검사들이 발령났습니다.
이런 인사를 낸 배경을 김 총장은 대수롭지 않게 설명했습니다.
검찰 조직 특성 때문에, 한 번 기획 업무를 맡았던 검사가, 계속 같은 일을 경우가 많아서 그렇지, 다들 이전에 수사를 열심히 한 검사여서 특별 수사를 맡아도 문제없다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인사를 할 때, 전에 어느 부서를 거쳤는지 중요한 게 보지 않겠다는 건데요. 김 총장은 그러면서 기획 경험이 많은 검사를 소위 기획통이라고 부르는데, 무슨무슨 통으로 부르는 게 검찰이나 검사 개인에게 좋은 게 아니라며 그런 관행을 없애달라고 기자들에게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검사가 아마추어가 아닌 다음에야 전공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게 제 짧은 생각입니다.
봉중근 투수를 다시 타석에 세우고 추신수 선수를 마운드에 올리면 고등학교 때의 실력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골을 넣어본 사람이 골을 넣는 것이고 특종을 하던 기자들이 특종 해 본다고 하지 않습니까?
파격적인 인사에 관심이 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거악 척결,부정 부패와 싸워야 하는 검찰이 준비된 선수들을 엔트리에서 제외하고 과연 어떤 결과물을 낼 수 있을 지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입니다. 또 한 일선 특수통 검사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평생 특수만 하던 사람 지방으로 보내고 기획하던 사람 기획관이나 3차장 자리에 앉히면 특수 수사 검사들 일 하겠냐고... 조직의 사기와도 관련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검사는 수사하는 사람입니다. 수사하는 사람이 열심히 할 수 있도록 사기를 북돋아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권에 기대 사수가 곁들어진 칼을 마구 휘둘러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만약 이번 인사가 잘못된 특수수사에 대한 징계성 인사라고 한다면 할 말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 인사를 두고 검찰 내부 관계자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장관의 입김이 많이 작용한 인사다. 신임 총장이기 때문에 장관의 목소리가 강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 말이 맞다는 전제로 얘기해 봅시다.
사회 정의를 구현하고 거악 척결 최일선에서 싸워왔던 검사들은 뒤로하고 장관에게 충성하고 눈맞추는 빈도에 따라 인사를 낸다면 그렇지 않아도 많은 법무부 지원 검사들은 더더욱 많아질 겁니다. 누가 수사하겠습니까?
옳고 그름을 떠나 이인규 중수부장이 박연차 게이트 수사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습니다. 특수수사는 그만큼 어려운 자리고 정치권과 여론에 잘못 휘말리게 되면 옷을 벗어야 하는 위험한 곳이기도 합니다. 수사의 일선에서 몸 바쳐 싸우는 수사검사들 어깨에 힘 좀 실리게 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투수에게 4번 타자 하라는 것이나 타자에서 투수하라는 것... 아마추어가 아닌 이상 어느 감독도 이런 결정 내리긴 어렵습니다.
투수와 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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