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부는 늦었지만 납치사건의 진상을 확실히 밝히고, 책임질 사람은 책임져야 합니다."
지난 2007년 10월 30일 일본 교토(京都)부에 있는 한 호텔서 이제는 고인이 된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1973년 발생한 '김대중 납치사건'의 진상조사와 책임자 규명에 일본 정부가 나설 것을 강하게 촉구했다.
교토 리쓰메이칸(立命館)대학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일본을 방문한 자리에서였다.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출마해 박정희(朴正熙) 당시 대통령에게 아깝게 패한 이후 김 전 대통령은 권력의 집중 감시를 받아야 했다.
한때 교통사고를 가장한 암살 시도로 목숨의 위협을 받아야 했던 김 전 대통령은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 암울한 한국의 상황을 인내하며 망명생활을 하던 그는 1972년에는 도쿄에서 유신 반대 성명을 발표하는 등 민주화 행보를 이어갔다. 그런 과정에서 그는 이듬해 8월 8일 도쿄의 한 호텔에서 당시 한국 중앙정보부 요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납치됐다.
이후 선박으로 옮겨져 수장될 위기에 처했다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김 전 대통령은 납치 5일 뒤인 같은 달 13일 서울의 자택 앞에서 발견됐다.
한국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2007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묵시적 승인이 있었다"고 밝힌 바 있으나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김 전 대통령도 대통령 재직 시는 물론 그 이후에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한일 간의 외교적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현실적인 상황을 배려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 측근들의 설명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퇴임 5년 반이 지나 일본을 방문한 자리에서 일본 정부에 대해 진상규명과 이에 따른 책임 추궁을 강한 톤으로 요구해 일본 정부를 바짝 긴장시켰다.
아울러 김 전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 정부 모두에 "납치 사건과 뒷 수습에서 내 인권을 무시한데 대해 항의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일본 정부가 수사를 진전시켜 진상을 밝히기 위해 증언이 필요하다면,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증언을 할 용의가 있다"며 "수사를 할 준비가 돼 있느냐가 선결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의 이런 의지 표명에도 일본 정부는 납치 경위와 배후 등을 규명하기 위한 가시적인 조치를 하지 않은 채 언론을 통해 경찰을 통한 추가 조사 검토설만 흘리는 등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도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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