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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혹독한 시련 끝 '인동초의 삶'

<앵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은 혹독한 시련 끝에 큰 성취를 이뤘다는 점에서 모진 추위를 이겨내고 꽃을 피우는 인동초에 비유되고 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인생 역정을 박병일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1924년, 목포 앞바다 외딴 섬, 하의도에서 태어났습니다.

소년 김대중은 초등학교 4학년 때 학업을 위해 목포로 이주해 목포상고를 졸업합니다.

학업을 마친 뒤 해운업 등으로 사업수완을 발휘하다 29살 때인 1954년 3대 총선 때 처음으로 정치에 도전했지만 정치역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3, 4, 5대 총선에서 잇따라 고배를 들었고, 이 과정에서 첫 부인과 사별하는 아픔도 겪어야 했습니다.

5대 보궐선거에 당선됐지만 5.16이 나는 바람에 의원선서조차 하지 못하는 불운까지 겪은 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63년 11월, 6대 총선 때 목포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됩니다.

정치인 김대중이 전국적인 인물로 부상한 것은 1970년.

40대 기수론을 제창하며 제 1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면서 부터였습니다.

71년 7대 대선에서 90만 표 차이로 낙선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 때부터 그야말로 고난의 정치 역정을 겪게됩니다.

71년 5월에는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해 그 후유증으로 평생 지팡이를 짚게 됩니다.

일본 체류중 유신 선포 소식을 들은 김 전 대통령은 귀국 대신 해외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는 길을 택했고 이 때문에 죽음 일보직전의 순간까지 경험했습니다

[바다로 끌고 가서 저를 묶어가지고 전신을 결박해서 바다에 던지려던 순간에 미국 정보기관이 탐지하고 비행기가 와서 못 죽이게 막아서 살았어요.]

이후 불법으로 가택에 연금된 채 긴급조치 시대를 맞게 됩니다.

[나가는 건 안되지만 들어오는 건 된다고 말이 된 거란 말이요.]

가택 연금과 투옥, 끝날 것 같지 않던 긴급조치 시대가 궁정동의 총성으로 막을 내리자 이른바 '서울의 봄'이 찾아옵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봄도 잠깐, 정치인 김대중은 신군부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고 또 한 번의 죽을 고비를 맞습니다.

감형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5년 2.12 총선 바람과 함께 재야의 실세로 복귀합니다.

이어 1987년 6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뤄진 뒤, 김대중은 평민당 후보로 두 번째 대권에 도전했으나 또 실패했습니다.

[젊은 분들이 저를 보고  TV로 보는 것보다 훨씬 젊고 잘 생겼다 이런 이야기 들으니 굉장히 기분이 좋았는데 여러분 제 얼굴 보고  TV 보다 젊고 잘 생겨 보입니까?]

92년도에 치뤄진 대선 역시 3당 통합으로 탄생한 민자당 김영삼 후보에게 무릎을 꿇고 정계 은퇴선언과 함께 영국으로 떠납니다.

[40년의 파란 많았던 정치생활이 사실상 종말을 고한다고 생각하니…] 

김 전 대통령이 다시 돌아온 건 3년 뒤인 95년 9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새 정치 국민회의를 창당한 뒤 1997년 15대 대선 때 생애 마지막 승부에 나섭니다. 

IMF 위기 상황 속에 '준비된 대통령'을 슬로건으로 내세워 마침내 국민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우리의 현대사가 키워 낸 인동초.

김대중 전 태통령은 우리 현대사에 지워지지 않을 큰 자취를 남기고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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