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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스페셜] ③ 안중근, 단지로 의거를 맹세하다

1908년 6월말과 7월초 안중근이 속해있던 동의회의 부대와 이범윤의 창의회 부대는 국내로 진격, 두만강 하류에 있는 일본 소규모 부대를 궤멸한다.

그런데 7월 19일, 회령 영산에서 일본군에게 대패하고 만다. 이는 의병 1만 명이 강을 넘는다는 소문에 대비하여 일본군이 병력을 보강하여 곳곳의 길목을 지키고 의병을 몰아가는 전술을 폈기 때문이었다. 안중근은 우영장으로서 국내의 홍범도부대에 무기를 전달하기 위해 국내 진공작전을 전개했으나 일본군에게 발각되어 밀림 속에서 초근목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와중에 일본군 네 명을 생포하게 된다. 생포한 군인들을 처형시키자는 의병들의 목소리와는 달리 안중근은 그들을 풀어준다. 만국 공법(국제법)으로 그들을 대우해야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러시아의 부호 최재형은 의병전쟁 실패 이후 독립자금을 풀지 않고, 안중근은 독립운동에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 병합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대륙의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1909년 2월 7일 밤. 연추 카리의 여관방에 안중근을 포함한 열두명의 동지가 모인다. 단지 동맹. 안중근은 동의정천동맹이라 이름붙였다. 하늘의 뜻, 동양평화를 실현한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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