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 수원보훈원 보훈복지타운 임대아파트 7개동에는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 450가구가 살고 있다.
그 가운데 독립유공자도 23가구가 거주하고 있지만 대부분이 유족이고 생존 애국지사는 5명 뿐이다.
1996년 수원에 국내 첫 보훈복지 거주시설로 건립될 때 독립유공자 15명이 입주했으나 13년 만에 10명이 세상을 떠나고 지금은 5명만 생존해 있다. 그나마 3명은 노환으로 외출이 불가능한 상태다.
이처럼 애국지사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면서 보훈복지타운에 거주하는 생존 애국지사들의 모임 '보름회'도 12년 만인 지난해 9월 자연스럽게 해체됐다.
보름회는 수원에 보훈복지타운이 건립되면서 각지에서 모인 애국지사들이 매달 15일 만나 항일투쟁을 회상하고 국가의 앞날을 걱정하며 친목을 나누던 모임이었다.
11일 이들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전화를 걸자 한결같이 "별로 할 말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고 우여곡절 끝에 만나서는 쉽게 속내를 털어놓지 않았다.
4년 전에도 이들은 독립운동에 대한 무관심과 자신들의 힘겨운 삶을 반추하면서 언론매체 앞에 나서는 데 주저했었다.
굴곡진 역사의 굴레에서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다 노년이 돼서야 국가가 제공한 소형 임대아파트에 이주한 이들에게 광복절에만 반짝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엿보였다.
그러나 정작 입을 연 이들에게는 섭섭함보다는 자부심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보름회 회원이었던 이영수(李英守.85.광복회수원시지회장) 옹은 "독립운동가에게 자동차에 운전기사까지 제공하는 프랑스같은 나라와 비교할 때 우리나라는 빈민수준"이라면서도 "그나마 손자 세대까지 학자금을 지급해 자부심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에 있던 광복군 제3지대에서 군자금 전달과 학도병 귀순공작을 담당했고 해방 후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1968년 육군 대위로 예편했다.
그는 "정부가 광복절 행사를 기념축제로 만들어 광복의 의미를 초등학생 때부터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체육관에서 조용히 행사를 치르고 점심 한 끼로 끝내는 것은 너무 형식적"이라고 했다.
3년전 남편을 떠나보낸 오희옥(吳姬玉.83.여) 여사는 "친일파 후손들이 선조 땅을 찾겠다고 소송까지 내는 것이 아직 우리의 현실"이라면서 "그런 와중에 후손들이 부족하나마 사회에서 혜택을 받고 좁은 임대아파트에라도 살 수 있는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 신흥무관학교 교관이자 서로군정서 별동대장 오광선(1896~1967) 장군의 차녀. 조부 오인수 선생 역시 구한말 의병장 출신이다.
그 역시 중국 류저우(柳州)와 충칭(重慶) 광복군선청년공작대에서 선전활동을 했다. 그의 부친은 해방 후 8년간 친일세력의 견제로 진급에서 누락돼 대령으로 예편했고 가족은 셋방을 전전했다.
보름회 회원이자 광복회 경기지부장으로 항일투쟁 역사를 알리는 데 왕성한 활동을 벌이던 황갑수(88) 옹은 올해 초부터 기억력이 급격히 떨어져 간병인의 도움없이 일상생활이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학도병에서 탈출해 광복군으로 활동했던 그는 좁은 임대아파트 벽면에 안중근 의사의 유묵 '국가안위 노심초사(國家安危 勞心焦思)'를 걸어놓고 나라를 걱정하던 분이었다.
이밖에 김병환 옹과 김은석 옹도 당뇨 합병증에 따른 다리 절단수술과 폐수술 후유증으로 외롭고 고통스런 노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광복회 경기지부 안홍순 사무국장은 "애국지사들의 공훈에 비해 그 예우를 보면 서운한 구석이 적지않다"며 "애국지사와 그 유족의 평균 연령이 74세이고 생존 지사도 이제 몇 분 남지않은 만큼 정부가 좀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수원=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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