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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는 대우차와 무엇이 달랐나?

쌍용차 사태가 남긴 것 ③

밤을 새워 쌍용차 사태를 취재하다 보면 이따금 약 9년 전 경험이 오버랩되는 걸 느끼곤 합니다. 그 때의 주인공은 쌍용차가 아니라 대우차였고, 밤을 새우는 곳은 쌍용차 평택공장 앞 공터에 세워 둔 차 안이 아니라 당시 종로에 있던 산업은행 본점, 삼일빌딩이었습니다.

세세히 기억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일입니다. 그래서 당시 썼던 취재수첩을 한 번 뒤적여봤습니다. 2000년 11월 8일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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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1시. 사뭇 비장한 표정으로 엄낙용 산업은행 총재가 기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회사 정상화를 위한 노조의 협조를 기대하면서 부도처리 시한도 연기했지만 끝내 노조는 협조를 거부했습니다... 안타깝지만 대우차를 최종 부도처리하기로 채권단은 의견을 모았습니다"
7일 새벽부터 이어진 이틀간의 마라톤 협상이 파국으로 끝났음을, 그리고 1년 2개월 동안 새로 쏟아 부은 2조1천7백72억원을 포함한 18조원의 부채덩어리 대우차의 사망을 알리는 선고였다.
대우차 노조는 즉각 "정부와 채권단이 진작부터 부도처리 방침을 정해놓고 그 책임을 노조의 비협조 때문만으로 몰고 있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비용의 극히 일부만 차지하는 인력문제를 이슈화한 정부와 채권단에 대한 강한 불만의 표시였다.
엄 총재는 지난 7일에도 오후 6시께 기자회견을 자청, 채권단이 최종 부도처리 시한을 8일 오전까지 연장하는 "아량"을 베풀기로 했음을 알렸다.
닛산-르노가 1년 동안 8천 8백명의 인원을 정리하고 재료비도 8% 줄였다는 설명이 곁들여진 다분히 "준비된" 회견이었다.
이어 집무실에서 밤을 새워 대우차 노사간 협상의 타결을 기다리는 "정성"도 보여줬다.
사실 대우차의 부도 책임이 노조에게 있다는 쪽으로 여론이 급격히 흘러간 것은 산은이 지난 5일 대우차 부도 가능성을 거론하면서부터였다.
이 때부터 포드의 대우차 인수 포기 이후 제기된 정부와 채권단 책임 문제는 소리 없이 묻히기 시작했다.
채권단의 설명처럼 5년간 고용보장과 파업불사를 외치는 노조가 있는 기업을 인수할 기업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우차가 워크아웃에 들어간 지는 사실상 1년 2개월이나 됐고 그동안 실질적인 경영권은 채권단에 있었다.
채권단을 사실상 관리 감독한 곳은 정부다.
대우차 부도의 한복판에는 강성 노조가 있었지만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것은 채권단과 정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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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쓴 취재 수첩을 다시 보면, 밤 새 썼던 연애편지를 아침에 다시 읽는 것처럼 낯이 뜨거워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면서도 이번 쌍용차 문제에 대해서도 그대로 옮겨 써도 될 만한 문장이 한 두 개가 아니라는 사실에 깜짝 놀라게 됩니다.

경기 사이클 하강 및 자동차 판매 급감 -> 정리해고 포함한 구조조정 방안 마련 -> 노조의 반발 -> 총파업 돌입 -> 사태 장기화로 안팎의 우려 점증 -> 공권력 투입 -> 조업 재개…당시 대우차도 쌍용차가 밟았던 길을 고스란히 밟았습니다.

그 때와 비교해 이번 쌍용차 사태에서 드러난 가장 큰 차이점은 아무래도 정부의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우차에 대해서는 정부가 사실상 구조조정과 매각 작업을 진두 지휘한 반면 쌍용차에 대해서는 최소한 외견상으로는 정부가 철처히 불개입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우선 100만 대 이상을 생산하던 당시 대우차와 올해 3만 대 정도 생산이 예상되는 쌍용차의 경제적 파급 효과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십 수 조원을 금융기관으로부터 차입했던 대우차와 달리 쌍용차의 담보채권은 2,400억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국가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기업"(당시 엄낙용 산은 총재), 다시 말해 '한국 경제를 볼모로 잡고 있던' 대우차가 쓰러지면 금융권 부실과 부품업체 연쇄 도산으로 경제 전반이 휘청거렸겠지만 쌍용차의 파산은 상대적으로 파급력이 작다는 판단을 정부가 하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쌍용차가 파산해도 시장점유율이 2~3%에 불과하다. 쌍용차가 주로 SUV와 고급 대형차를 생산하니 그 분야에서 경쟁 압력이 줄어드는 효과 정도는 있겠다"(임채민 지식경제부 1차관)는 농담 섞인 발언도 그런 정부의 인식을 드러낸 것입니다.

여기에 하반기 경제 상황이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에서, 미국 GM과의 밀고 당기기가 필요한 GM대우의 구조조정 등 다른 완성차 업체의 문제로 인해 정부가 쌍용차에 개입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은 더 줄어든 상태였습니다.

여기에 정부는 '노사 대립이 기업을 망하게 할 수도 있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보내면서 고용시장의 유연성을 도모하는 기회로 삼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노사 문제에 정부가 개입해서 좋은 결과를 가져 온 적이 없다"(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는 발언도 그런 맥락 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쌍용차는 대우차와 닮았지만 사실은 매우 상이한 처지에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대주주(상하이차)와 정부의 매각 원죄론을 부각시키면서 "버티면 공적자금이 투입될 것"이라는 주장에 매몰된 것은 그래서 현실 여건과 다소 괴리된 면이 있었고, 다른 대안을 모색할 시간을 축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깁니다. 대우차 때와 마찬가지로 모든 책임을 노조가 뒤집어 쓰는 것은 부당하지만 말이죠.

 

 

[편집자주] 치밀한 분석력이 돋보이는 박민하 기자는 현재 한국은행과 금융업계를 출입하고 있는 경제부의 핵심전력입니다.  2003년 SBS 보도국에 둥지를 튼 뒤 사회부와 경제부에서 활약해왔습니다. 생활에 직접 도움을 주는 알기쉬운 금융기사들과 경제전반을 이해할 수 있는 심도깊은 글들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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