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서 부자 도둑이 잡혔습니다.
돈이 많아 부자가 아니라 父-子.
그렇죠. 아버지와 아들 도둑입니다.
범행 장소는 유흥주점.
도둑질에 입문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은 해 본다는 빠루와 드라이버 등을 사용해 문을 젖히고 들어가는 수법으로 양주와 노래방 기기를 훔쳐댔습니다.
주로 유흥주점이 문을 닫는 새벽 시간과, 직장인들이 출근을 위해 술을 그래도 덜 마시는 일요일 밤에 문을 뜯고 들어간 거죠.
처음에는 수법이 하도 고전적이어서 '흔한 범죄려니..' 했는데, 물어보면 물어볼 수록 전문가 수준입니다.
범행 장소마다 문의 종류가 다를게 분명하기 때문에 범행에 쓴 연장들도 골프가방 하나를 채울 정도로 세분화 돼 있고, 도둑이면 누구나 훔치는 현금도 건드리지 않고 한 집에서 양주만 4~50병씩 훔쳤습니다.
양주가 흔적없이 되팔기가 용이하다는 점을 노린 거죠.
훔친 횟수는 21차례인데 금액으로 따지면 7천만원에 가깝습니다.
발렌타인 xx년 같은 고급 양주를 주로 훔쳤기 때문입니다.
또, 그렇게 여러번 훔치면서도 CCTV에 한 번 잡히지 않았으니 사전 탐색이 얼마나 꼼꼼했는지를 알게 합니다.
하.지.만.
아마 위에 열거한 정도 뿐이라면 저는 취재파일을 쓰지 않았을 겁니다.
하일라이트는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서 도둑질을 하게 된 뒷배경에 있었습니다.
매우 허접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을 조금 그려 봤습니다;;
아버지 김씨는 원래 친형과 함께 한 조를 이뤄 도둑질을 해 왔습니다.
(이것도 사실 정상적인 건 아니죠)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듯이 친형이 지난해 철창 신세를 지게 됐습니다.
갑자기 형이 사라진 아버지 김씨는 난감해졌습니다.
위에도 잠시 언급했었는데 한 번 유흥주점에 털러 들어가면 보통 양주 4-50병에 노래방 기기를 훔쳐 나오기 때문에 훔친 물건을 걸어서 집을 비롯한 보관 장소에 가져간다는 건 매우 힘들고 어렵습니다.
당연히 차로 옮겨야 하는데.. 아버지 김씨는 운전면허가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형의 빈자리를 아들로 채운 거죠.
말 그대로 '대대손손' 도둑질인 셈이 됩니다.
피의자들과의 대화를 몇 마디 적어보겠습니다.
기자: "아들을 끌어들이신 이유가 대체 뭡니까? "
아버지 김씨: "운전을 못해서 옮길 사람이 없어서요."
기자: "왜 양주만 훔쳤어요?"
아버지 김씨: "가져다 팔기 쉬워서.."
기자: "되팔아서 번 돈 어디다 썼어요?
아버지 김씨: "생활비로 썼습니다.."
도자기나 나전칠기, 또는 전통두부 만드는 법처럼 꼭 후대에 가르쳐서 이어가야할 소중한 어떤 것도 아니고.
생계 수단으로 도둑질을 가르치다니.
맹모삼천지교까지는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게 상식적인 선에서의 부모 역할인지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아. 혹시나 '순진한 아들이 아버지에 부탁에 못이겨 일을 도운 건 아니었을까' 하시는 분이 있을까봐 한마디만 덧붙이겠습니다.
아버지도 아들도, 절도 전과가 수차례 있었다는 것을..
(아버지로부터 보고 배운 것이 도둑질이니 어쩌면 당연한 거 같기도 합니다만.)
그래서 보통은 가족(예를 들면 엄마와 아빠, 아빠와 딸)이 잡힐 경우 남은 가족들을 위해 한 명만 구속하고 남은 한 명은 불구속 입건하는데 이번 경우는 부-자 모두 구속을 면치 못한 것입니다.
기자들이 혀를 쯧쯧차며 구속된 부자를 바라보자 경찰 형님은 "자기 딸 성매매에 내보내는 아버지도 있는데 뭐." 하고 나름 위로의 말을 던졌지만 검은 잠바를 뒤집어쓰고, 수갑을 차고 엎드린 부자의 뒷 모습이 영~개운하지는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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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07년에 입사한 SBS 사회2부의 새내기 최고운 기자는 늘 밝은 웃음으로 사건팀에서 '비타민'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험한 사건사고 현장을 누비면서도 인간적인 매력을 잃지 않는 기자가 되고 싶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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