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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피플파워' 주역 고 아키노 전 대통령

암 투병 끝에 1일 타계한 필리핀의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은 필리핀 민주화의 주역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사탕수수 농장을 소유한 유복한 가정의 딸로 태어나 미국 유학까지 마치고 정치인 남편을 맞았지만 남편의 급작스런 피살로 반정부 지도자로 변신한 그는 민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대통령직까지 오른 입지 전적인 여성이었다.

1933년 필리핀의 명문 정치가문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란 아키노는 미국  뉴욕의 마운트 세인트 빈센트 대학에서 수학과 프랑스어를 전공했다.

이후 로스쿨에 진학하려던 계획을 접고 귀국, 전도유망한 정치인이었던  베니그노 '니노이' 아키노와 결혼해 딸 넷과 아들 하나를 뒀다.

평범한 주부였던 그는 1983년 야당 지도자였던 남편이 미국에서 귀국하다 필리핀 국제공항에서 암살당하자 이후 정치에 뛰어들어 1986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독재정부를 무너뜨린 이른바 '피플 파워' 무혈 봉기를 이끌며 군부의 도움을 받아 집권에 성공했다.

'코리'라는 애칭으로 불린 아키노는 당시 남편의 암살이 마르코스 독재정부의 명령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하며 100만명에 가까운 군중을 모아 독재정부를  무너뜨렸고, 당황한 마르코스와 그의 아내 이멜다는 하와이로 도피해야 했다.

필리핀의 민주화 경험은 한국과 남미 등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치며 아키노는 비폭력 시위의 세계적인 선구자가 돼 '현대의 잔 다르크'로 추앙받기도 했다.

집권한 아키노는 그러나 대통령 재임 당시에는 수차례 군부의 쿠데타 기도에 시달리면서 그다지 성공한 대통령이라는 평가는 받지 못했다.

1987년에는 대통령궁이 반대파의 박격포 공격을 받기도 하는 등 시련이 있었지만 피델 라모스 장군의 도움으로 군부의 쿠데타 기도를 막아냈다.

아키노는 대통령의 임기를 6년 단임제로 제한시키는 등 헌법을 개정,  민주주의의 토대를 다졌지만, 정치경험이 부족해 필리핀 가톨릭 교회를 포함한 정치.경제적 기득권 세력에 휘둘렸다는 비판도 받는다.

1992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복지재단을 설립해 대외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2001년에는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의 하야를 이끈 시위에 참여했다.

이후 한때 정치적 동지였던 글로리야 아로요 현 대통령이 부정선거와 부패 혐의를 받자 그의 사임을 요구하는 집회에도 적극 참여했다.

한국과의 인연도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0년대 초반 미국 하버드대에 체류하던 당시 아키노의 남편인 베니그노 아키노 상원의원과 의원과 교분을 나눴다.

이때의 인연으로 아키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취임식때도 참석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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