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토양이나 기후가 와인 만드는 포도 재배에 적합치 않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역시 그렇게 알고 있었고요. 그렇지만 취재 마지막날, 경기도 이천에서 토종 와인연구가 (고려대 생명과학대학 명예교수)인 박원목 박사를 만난 뒤에 꼭 그런 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박 교수는 15년째 국산 와인의 품질 개선을 위해 연구를 거듭하고 있습니다.인터뷰를 마치고, 박 교수는, "좀 보여주겠다"며 자택 주변을 구경시켜 주었는데, 그저 놀라웠습니다.박 교수는 집 뒤뜰에 높다란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그 안에서 5가지 유럽 품종의 포도를 재배하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4계절이 뚜렷하고, 겨울엔 너무 춥고, 여름엔 비가 많이 와서 재배가 까다로운 유럽 포도를 키우기 어렵다고 알려져 있지만 비닐하우스, 내지는 간단한 비가림 시설만 해 줘도 쉽게 재배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포도가 아주 잘 자라고 있더군요.
박 교수는 여기서 포도를 재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친 김에 직접 이걸로 와인을만들어보자고, 결심하고 시설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개인 소유의 와이너리, 와인 연구소라고 해도 모자라지 않을 듯한 시설입니다. 한 번 구경해 보시죠.
사과, 키위, 딸기, 포도....
이용한 과일도 다양하지만 제조 방식을 달리 해서 만들어 일일이 기록을 해 두었습니다. (1차 발효 날짜, 2차 발효 날짜, 첨가한 당분의 종류, 첨가 비율 등이 적힌 라벨이 병목에 매달려 있습니다) 그야말로 오랜 연구결과인 셈이죠. 저런 커다란 술통들이 창고마다 그득했습니다.
박 교수는 양조 허가를 받지 않아 판매를 할 수도 없다면서 "이 많은 술을 마셔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웃음을 지었습니다.
같은 유럽 품종의 포도라고 해도 유럽에서 자라느냐, 한국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기본적인 성질은 비슷하지만 독특한 풍미를 지니게 됩니다.(흔히들 '떼루아'가 반영된다고 하죠. 토양이나 일조량, 배수 등 지역적 조건이 포괄된 개념입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와인을 잘 모를 때는 캠벨 포도(여름에 흔히 먹는)로 만든 와인도 잘먹었지만 시장이 개방된 지금은 사람들이 잘 안 사먹는다, 따라서 세계적으로 선호받는 품종을 이용한 와인을 만들어야 한국적인 특성이 배어있는 명품 와인을 만들 수 있다,는 게 박 교수의 주장입니다.
사실 토양이나 기후가 안 좋다고 평가받는 캐나다나 독일에서도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특유의 맛을 내는 '아이스 와인' 생산에 성공한 바 있습니다. 달콤한 맛과 풍미로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비싼 값에 팔리고 있죠.
박 교수가 재배한 '한국 땅의 샤도네이' 와인을 한번 시음해 봤습니다. 제조 방법이 아무래도 전문 와인 양조가에 비해서는 떨어지겠지만 마실 만 했습니다. 이정도면 수입 와인에 그닥 뒤처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포도품종 고유의 향이 살아있으면서도 독특한 맛이 있더군요.
박 교수는 재배하고자 하는 농민이 있다면 자신이 오래도록 연구한 결과와 함께 수입 포도 품종 묘목도 무료로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리도 명품 와인을 충분히 생산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박 교수가 해 준 얘기를 정리해 실어드립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 와인이 언제쯤 태어날 지 기대해 봅니다.
이하는 박원목 교수 인터뷰 입니다.
[박원목 교수 인터뷰]
박원목 교수) 소비자들이 안 먹는지에 대한 이유를 따져야 돼요. 그냥 마치 소비자들의 책임으로 생각하는데.
문) 외제를 좋아한다고요?
박원목 교수) 네, 그런데 그건 억지고, 정말은 제조업자들이 잘 못 만들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안 먹는 거지, 한국 사람들이 국산 와인이 좋으면 왜 안 먹겠어요?
(중략)
박원목 교수)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람, 우리나라 포도의 주종이 캠벨이기 때문에 캠벨로 포도주를 담그게 돼 있지만 사실 포도주를 제대로 하려고 하면 그 품종을 바꾸는 게 나는 참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가까운 일본에서도 그래요.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캠벨로 포도주를 잘 만들었는데 지금은 유럽 품종으로 거의 다 바꿨거든요.
문) 우리나라에서 유럽 포도들이 잘 안 자란다고 얘기하던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원목 교수) 우리나라보다 위도가 더 높은 캐나다라든지 독일이든지 이런 데서도 역시 좋은 포도주가 나오거든요. 어떻게 하면 자기네 나라에 적당한지, 혹은 재배환경을 잘 조성해서 자기 나라에서 잘 자라게끔 그렇게 기초부터 닦아서 포도주를 하기 때문에 그렇죠. 우리나라 기후가 나는 절대 나쁘다고 생각치 않고...
문) 그럼 우리나라 업체들이 앞으로 어떤 부분에 신경을 써야한다고 생각하세요? 아무래도 역사를 따라잡기는 힘들잖아요.
박원목 교수) 우리나라 포도주 업자들이요? 내가 이렇게 말하면 기분 나쁠지 모르겠지만, 연구를 참안 해요. 그래서 어제 한 게 오늘 같고, 하여튼 발효만 되고 술만 되면 그걸로 다 됐다고 하는데.... (중략) 우선 양조 기술이 떨어지는게 제일 문제고, 그 다음에 품종을 우선 바꿔야 하는데 지금 포도주 공장이 포도 농장을 안 갖고 있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포도 품종을 바꿀 수가 없어요.
문) 그럼 외국 포도는 우리나라에선 안 된다는 생각은 틀렸다고 보세요?
박원목 교수) 포도주는 일종의 유행이에요. 지금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가 있는 게 백포도주는 샤도네이, 혹은 적포도주는 까베르네 쇼비뇽. 이 두 가지 인기가 제일 좋아요. 그래서 외국에선 그런걸 위주로 만들어요. 외부에서 잘 팔리는 품종을 자기네가 수입해서 그 다음에 재배해서 포도주를 만들죠.
외국사람들한테 구미에 맞지 않는다고 하면 그걸(포도주를)만들어도 큰 의미가 없단 말이에요. (중략) 내가 여기서 샤도네이, 까베르네 쇼비뇽, 메를로를 재배해보면 다 잘 되거든요.
우리나라에서도 수입 재배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고 보는데, 단 장마철을 어떻게 피하느냐가 문젠데 가장 쉬운 방법이 비닐하우스를 만들면 여름 장마도 피할 수 있고 겨울 혹한, 한파도 피할 수 있어요.
문) 지금 우리나라 와인 회사들은 앞으로 비전은...지금대로라면 별로 없는 건가요?
박원목 교수) 만약 캠벨로 계속 한다고 하면 저는 비전이 없다고 생각해요. 만약에 과거같이 외국 포도주를 전부 끊어버리고 우리나라에서 포도주를 만들어서 마시라고 하면 사람들이 마실 수 있겠지만 지금같이 무역 자유화 해서 칠레든지 미국, 혹은 불란서에서 얼마나 싼값에 포도주가 들어와요?
그 포도주하고 지금 우리 캠벨로 만든걸 놓고 하라고 하면 나는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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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남정민 기자는 일요일 아침의 <선데이뉴스 플러스>에서 '남정민 기자의 소비자 리포트'로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백화점과 할인점을 누비며 만나는 알짜 생활정보들과 소비자들이 꼭 조심해야할 할점을 여기자 특유의 꼼꼼한 시각으로 전해줍니다. 2002년 SBS 공채로 입사한 남기자는 해맑은 감성과 외모로 개인 블로그도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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