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앙코르 공연을 마친 연극 '고곤의 선물'의 구태환 연출은 여주인공 헬렌 담슨 역을 맡은 배우 서이숙(41)에 대해 "편법이 아닌 정확한 해석과 전달력을 가진, 서 있는 것만으로도 무대를 장악하는 대기만성할 배우"라고 평가한다.
배우 서이숙은 요즘 대학로에서 가장 바쁜 배우다. 오랜 무명 생활 끝에 2003년 극단 미추의 '허삼관 매혈기'로 히서연극상과 동아연극상의 연기상을 받으며 진가를 인정받은 그는 올해 들어 '리어왕', '피카소의 여인들', '템페스트', '고곤의 선물' 등에 출연하며 전성기를 맞고 있다. 내달에는 극단 골목길의 '갈매기'로 무대에 선다.
최근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올해는 정말 쉴새 없이 무대에 서는 행복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한 작품을 마치면 덜어내는 시간이 필요한데, 캐릭터가 다르니까 괜찮다는 말에 넘어가 연이어 공연하고 있다"고 웃었다.
"굉장히 행복하지만 금방 바닥이 나면 어쩌나! 겁도 나고 관객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책임감도 커졌죠. 하지만, 그 부담감을 즐기고 있어요. 사전에 많은 공부로 공을 많이 들여 인물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해요."
연극만을 바라보고 사느라 아직 미혼이지만 20년간 무대를 지켜온 끝에 연기인생을 꽃피우는 그는 "긴 시간을 견뎌내는 게 고통스럽지만 둔하고 조급증이 없어서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20년 연극을 해서 이제 조금 관심을 받게 됐으니 대기만성은 대기만성이죠. 하지만, 마냥 세월만 보낸 게 아니라 인내하고 대처하는 방법이 생겼어요. 연극이 내 길인가 보다는 생각으로 오다 보니 결혼을 못했는데 작품 외에 다른 것에 신경 쓸 시간도 없고 신경을 쓰고 싶지도 않았어요. 요즘은 바빠져서 연애를 못하겠고요. 다른 쪽에 관심을 쏟으면 작품에 미안하잖아요."
내달 1일부터 게릴라극장에서 공연되는 '갈매기'는 유명 여배우 아르까지나와 그의 아들 꼬스챠, 아르까지나의 연인 뜨리고닌, 뜨리고닌과 사랑에 빠지는 니나 등 등장인물 사이에 얽힌 관계와 내면을 그린 작품이다.
서이숙은 아르까지나 역을 맡아 장영남, 김주완, 김영필, 박원상, 이대연, 박정순 등의 배우들과 호흡을 맞춘다. '갈매기' 출연도 처음이고 골목길과의 작업도 처음이어서 그에게도 기다려지는 무대다.
그는 "박근형 선배의 연출작이어서 함께 하게 됐는데 새로운 배우를 만나서 서로 자극을 주면서 연기하는 즐거움도 있다"며 기대감을 표했다.
"체호프 작품 속 인물들은 백조처럼 물 위에서는 우아하지만, 물밑에선 치부를 감추려고 어두운 부분이 있죠. 아르까지나를 통해 배우 이전에 사람이 느끼는 고독감과 배우로서 점점 위축되면서 생기는 두려움을 전하려 합니다. 그저 욕심쟁이나 히스테리컬한 여배우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동정을 얻어내고 관객과 함께 아파하고 싶어요."
그의 '대기만성'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유명한 배우들을 보면서 그들이 그냥 유명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는 그는 "천재성만으로는 오래가지 못한다. 열심히 공부해서 고마운 관객들에게 고리타분하지 않은 연기를 보여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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