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공항에 내려서 마중나오기로 한 동생을 기다리는데 참 면구스런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운전기사로 보이는 남성과 여성이 공항 출입구 바로 앞에서 온갖 욕설을 하며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입에 올린 욕설을 만약 제가 그대로 일본말로 옮긴다면 야스니리군은 아마 기겁을 할 것입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뜯어 말리려고 했지만 두 사람은 10분이 넘게 큰소리를 내가며 싸우고 있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린 승객의 절반 정도는 일본인들이었기 때문에 저는 그 모습을 보고 일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 싶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저 광경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당황스러웠고 부끄러웠습니다.
보다 못한 사람들이 청원 경찰을 불렀지만 청원 경찰도 쉬 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공항을 떠날 때까지도 그 사람들은 그 요란스런 싸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광경을 보면서 도쿄에서 얼마 전에 만난 한 일본인 교수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30대 중반인 그 분은 서울에서 7년 정도 유학을 했고 서울에 있는 한 대학에서 한국 현대사와 관련해 박사학위를 받은 분입니다.
부인도 한국 사람이고 한국에 대한 애정과 관심도 대단한 분이지요.
개인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그분에게 한국에서 지내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냐고 물었습니다.
그 분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서울에서 생활하는 일본 사람들끼리 만나면 한국이 가끔 짜증스럽게 느껴진다는데 서로 공감한다고 합니다.
지하철 안에서 시끄럽게 통화하는 것, 어깨를 치고 가면서도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는 것, 식당의 불친절 등을 예로 들면서 말이지요.
특히 한국 생활이 얼마 되지 않은 일본 사람들은 그런 짜증스러움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더군요.
자기는 7년 넘게 지내다 보니 어느 정도 익숙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가끔은 짜증이 나곤 했다면서 한국이 일본에 비하면 '후진국'이기 때문에 그런 점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말도 했습니다.
'후진국'이라....저는 제 조국이 후진국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후진국'이라는 표현이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후진국이라면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빈곤국가나 가리키는 말로 생각했는데 그분이 보기에는 한국은 '후진국'이었습니다.
한국말이 유창한 분이지만 후진국이라는 단어의 뉘앙스를 제대로 알지 못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다른 적당한 표현을 찾지 못해 그 말을 사용하지 않았나 싶기는 한데 어쨌든 한국은 후진국이라고 그 분은 표현했습니다.
야스나리군의 아버님이신 이케다 선생은 한국에서 도로 한 가운데 차를 세우고 사람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표정으로 말이지요.
그 말을 하시면서 그런 일이 한국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흔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가끔은 벌어지는 모습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대답을 하면서 내심 부끄러웠습니다.
한 나라의 관문에서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하며 악다구니를 써가며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 일본 사람들은 어느 자리에선가 한국 사람을 만나면 이렇게 물어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그렇게 종종 싸우느냐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가 여자에게 주먹질이라도 할 듯이 달려들고 여자는 나 죽여라 하는 모습으로 대들고 그러느냐고..
혹시 당신도 그렇게 싸운 적이 있느냐고 물어볼지도 모르겠습니다.
야스나리君.
지난 봄에 서울에 다녀왔지요?
자매결연을 맺은 서울의 한 고등학교와 친선 농구 경기를 하기 위해 4박5일 일정으로 서울에 다녀온 뒤 야스나리군은 서울이 너무 좋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학생의 집에서 민박을 했는데 부모님들이 참 친절하셨고 그 집에서 대접받은 한국 음식이 맛있었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서울이 깨끗했고 사람들도 '젠틀'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 가기 전 제게 배워간 몇 마디 한국말을 한국 친구들이 잘 못 알아 들어서 한국말로 짧게나마 이야기를 나눠보려던 것이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것이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었다고 야스나리君은 말했습니다.
그 때 서울에서 혹시 불편하거나 힘든 것은 없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 것은 전혀 없었노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아마도 야스나리君이 보기에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지난 금요일 김포공항에서 있었던 것과 비슷한 볼썽 사나운 모습을 야스나리君이 지난 봄에 서울에서 봤을 수도 있고 한국 사람 때문에 짜증이 났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앞에서 말한 몇 가지 사례는 한국의 실제 모습 가운데 일부입니다.
아니라고,극히 일부분일 뿐이라고,일본 사람들이 짜증스럽다고 느끼는 것은 문화와 사회적 관습이 다르기 때문이며, 극히 사소하고 개인적인 경험만을 근거로 한국을 후진국이라고 말하는 것은 터무니 없는 비약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것도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지요.
제가 아는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은 한국을 높이 평가합니다.
한국 사람인 제 앞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기도 하겠지만 제가 봐도 높이 평가받을 만한 부분이 한국에는 많이 있습니다.
아직도 열기가 식지않고 있는 韓流열풍은 '일본인의 한국 재발견'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의 흐름은 높는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라면 일본 내 한류 열풍은 일본에는 없는 것,일본보다 나은 것이 한국에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일본 사람들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한국에 대해서 비판적인 일본인들도 적지 않습니다.
한국 생활을 경험해보지 않았거나 한국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한국을 알 만큼 아는 사람들 가운데 한국에 비판적인 사람도 많습니다.
앞에서 제가 이야기한 모습 때문에 한국과 한국 사람이 싫다는 경우도 많습니다.
근거 있는 비판입니다.
우리가 뼈아프게 받아들여할 이야기들입니다.
일본 사람이 하는 지적이라고 감정적으로 반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바른 자세는 아니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느 사회나 그렇듯이 한국에도 좋은 모습과 그렇지 않은 모습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한국은 대단히 빠른 속도로 좋은 것은 더 좋게 발전시키는 동시에 부정적인 모습은 그보다 더 빠르게 지워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야스나리君은 앞으로 기회가 되면 한국과 관련이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우선은 한국말을 제대로 배워서 한국 청년들과 한국말로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야스나리君이 그런 희망과 계획을 갖고 있는 것은 한국이라는 나라의 부정적인 모습을 몰라서가 아니라 한국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면을 높이 평가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야스나리君에게 감사하는 것은 그런 자세 때문입니다.
친구가 되기 위해 손을 먼저 내미는 자세,옆나라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먼저 보려는 자세가 기특하기 짝이 없습니다.
야스나리君같은 일본 청년들이 많기를 바랍니다.
또 야스나리君과 같은 또래의 한국 청년들이 君같은 성숙하고 사려깊은 자세로 일본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청년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두나라의 미래는 우호친선의 길로 이어지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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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일본 사회를 관통하는 깊이있는 시각과 연륜이 느껴지는 윤춘호 기자는 2007년부터 SBS 도쿄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1991년 SBS 공채 1기로 입사해 사회부와 정치부, 국제부 등에서 일했고 특히, 북한 관련 취재와 통일안보분야, 국회 정당팀에서 오랜 기간 활약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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