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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차우 - 액션의 탈을 쓴 코미디

차우(감독: 신정원, 주연: 엄태웅, 정유미, 장항선, 윤제문, 12세 관람가)

예고편이나 보도 자료를 봤을 때 누구나 의심 없이 이 영화의 장르를 주인공들이 식인 멧돼지와 사투를 벌이는 액션 어드벤처 영화로 분류했을 텐데, 영화를 보고나니 다소 애매모호해집니다. 액션 어드벤처의 탈을 쓴 기이한 코미디 영화로 보였습니다. 신정원 감독의 전 작품이 [시실리 2Km]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됩니다. (죽은 줄 알았던 권오중이 이마에 대못이 박힌 채로 살아나 날뛰는 장면이 기억나네요.)

영화의 줄거리는 충분히 예측 가능합니다. 평화로운 시골마을에 거대한 식인 멧돼지가 나타나 동네 사람들과 사냥꾼, 주말 농장에 참여하기 위해 내려온 서울 사람 등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고 마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경찰관, 사냥꾼, 생물학자 등이 연합한 주인공 집단이 멧돼지를 추격하고 사투를 벌인다는 내용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멧돼지를 묘사한 컴퓨터 그래픽의 조악함을 지적하더군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정교한 화면에 눈높이가 높아진 요즘 관객들을 생각한다면 정말 수준이 많이 떨어집니다. (못해서 못한게 아니라 안하려고 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멧돼지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 초반부의 스릴이나 서스펜스는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새로운 것은 없지만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를 표현하는 관습에 충실하거든요. 그러나 중반 이후 거대하고 난폭한 자태를 드러내면서부터는 이 느낌이 사그라집니다. 별로 안 무서워요. 

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실패한 영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도 없습니다. 코미디가 정말 독특하거든요.

[개그콘서트]처럼 다양한 연령대와 취향을 포섭하려는 코미디가 아니라 '난 이게 웃기다고 생각해서 넣었는데 웃고 안 웃고는 늬들 자유다'하고 대내외에 선포하는 것 같습니다.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며 낄낄거리다가 어렸을때는 어머니의, 지금은 아내의 타박을 받고 있는 제 입장에서도 폭소와 실소 사이를 오갔습니다.

제 앞자리에 앉은 주파수가 맞은 것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 관객 두 분은 시종일관 폭소를 터뜨렸고, 나이 지긋한 중년 부부는극장 문을 나서며 불만을 터뜨리더군요.

모든 등장인물들이 엉뚱합니다. 목숨 내걸고 멧돼지와 맞서 싸우는 '비장한 영웅'은 없습니다.

경찰은 어떻게든 어려운 자리를 피하려 하고, 유학파 포수는 생각보다 겁쟁이이고, 생물학자도 가끔 히스테리 부리는 4차원녀입니다. 

가령 이렇습니다. 주말농장에 내려온 젊은 부부가 과일 따는 장면, 아내가 나긋한 목소리로 '여보~ㅇ! 이제 그만 따고 가자' 하니 다정한 표정의 남편이 '몇 개만 더따자' 하자 아내의 표정이 갑자기 바뀌며 '왜? 더 따서 그년 갖다 주려고?'하며 남편 얼굴에 정통으로 과일을 집어던집니다.

이런 장면들이 관객에게 가하는 의외의 일격은 의외로 재미있습니다. 본서에서 파견 나온 신형사(박혁권)는수시로 무언가를 주머니에 챙겨 넣고 마을 잔치를 멧돼지가 쑥대밭으로 만드는 장면에서 겁쟁이 박순경의 행동도 많이 웃깁니다.

아~ 산속 베이스캠프에서 생물학자의 캠코더에 반응하는 주인공들의 액션에서는 뒤집어질 뻔 했습니다.

저는 코미디로는 비교적 재미있게 봤습니다. 하지만 모든 분들에게 선뜻 추천하기 난감합니다.

감독이 세상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시니컬한 것 같습니다. (투자자와 제작자에 대해서까지도?)

내 안의 탐욕과 비겁함을 들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장르영화의 관습을 파괴하고 뒤틀며 자신의 장기와 취향을 살린 이 영화에 관객들의 반응은 극단적으로 엇갈릴 것 같습니다.

그 반응의 비율은 감독이 다음 영화를 얼마나 쉽게 찍을 수 있을지 와 관계있을 것 같습니다. (암컷 멧돼지를 잡은 뒤 마을회관에서 벌이는 잔치 장면에서 초대 가수 공연에 반응하는 주민들의 리액션 컷 정도……?)

  [편집자주] '영화를 보는 편안한 시선'  남상석 기자는 2002년부터 영화계를 출입해 온 베테랑 문화 담당 기자입니다.  1993년  공채로 입사해 사회부와 정치부 등을 거쳐 오랜 기간 보도국 문화부에서 내공있는 필력을 과시해 왔습니다. 영화와 영화인들을 좋아하며  '평론가처럼 어렵지 않은.. 관객의 한사람 같은 친근한 눈높이의 영화평'으로 개인 블로그도 큰 반향을 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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