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반세기전 한국전쟁의 난리속에도 피난처에서는 각종 재판이 열렸습니다.
엄혹한 시절, 고단한 피난생활과 전쟁의 참상이 배어있는 당시 사법부의 사진과 자료를 정성엽 기자가 소개합니다.
<기자>
6.25 전쟁이 터지자, 대법원과 서울소재 법원들도 피난처인 부산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이 부산에서 처음 소집한 전국법원장 회의.
사법부의 권위를 지켜주려는 듯 이승만 전 대통령 부부가 함께 포즈를 취했고, 법원장들은 한결같이 말쑥한 정장 차림이었습니다.
당시 형사재판을 맡았던 한 법관이 남긴 육성기록엔 피난민들의 고달팠던 삶이 베어있습니다.
[형사사건 피고인의 90%가 나무를 무단 벌목해 움막을 지은 산림법 위반자들이었다. 전쟁에 집이 없어 벌어진 안쓰러운 일이다.]
한 때 북한군의 손에 들어갔던 등기부 등본입니다.
재산상 권리관계가 적힌 서류지만, 북한군은 등본 중간을 뜯어 생긴 공간에 지뢰매설방법을 빼곡히 적어 놓았습니다.
전쟁 통에 한상범 대법관 등 법관 44명이 실종되거나 납치돼 퇴직 처리됐고 그런 와중에 판사합격 증명서를 받아 법관의 길을 처음 내딛는 이도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