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비 왕조를 몰아내고 신정(神政) 체제를 가져온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꼭 30년만에 이란이 대규모 시위로 일주일 넘게 요 동치고 있다.
지난 12일 대통령 선거 이후 수도 테헤란을 중심으로 이란 곳곳에서 전개된 시 위는 개혁파 후보 미르 호세인 무사비 전 총리를 지지하는 세력이 선거부정 의혹을 제기하면서 촉발됐다.
하지만, 최대 200만명의 시위군중을 집결시킨 원동력은 오랜 고립의 탈피와 개혁을 바라는 열망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보수 대 개혁 대결 = 보수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과 개혁파 후보 무사 비 전 총리의 양강 구도 속에 전개된 대선은 이란 국민 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큰 관 심 속에 지난 12일 치러졌다.
이란의 핵개발 주권을 강조하는 등 강경 일변도의 외교 정책을 구사해온 아마디 네자드와 경제개혁과 투명한 핵개발 프로그램 운영을 내세운 무사비 간의 대결은 국 내외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선거 열기를 반영하듯 투표는 애초 예정됐던 마감시간을 4시간이나 넘긴 오후 1 0시에 85%의 높은 투표율로 종결됐다.
그러나 이란 중앙선관위원회가 다음날 발표한 개표 결과는 근소한 차의 승부일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아마디네자드가 62.6%의 득표율로 33.8%에 그친 무사비를 `더 블 스코어' 차이로 따돌린 것으로 나타났다.
◇시위 확산 = 무사비는 투표가 종료된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자체조사에서 자 신이 유권자 65%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으나 개표 결과가 아마디네자드의 압 승으로 발표되자 즉각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고 선거 불복을 선언했다.
무사비의 낙선 소식이 전해진 13일 그의 지지자 수천명도 테헤란 시내에 모여 ` 독재 타도' 구호를 외치며 항의시위에 들어가면서 30년 전 이슬람 혁명 이후 처음으 로 이란 곳곳에 시위의 불을 지폈다.
무사비는 14일 성명을 통해 헌법수호위원회에 이번 대선 결과를 무효화해 줄 것 을 공식 요청했고, 개혁파의 시위는 갈수록 확산되면서 경찰과의 충돌을 가져왔다.
이란 정부는 시위에 참여한 170명을 체포하고 이슬람이란참여전선(IIPF) 등 개 혁파 진영의 지도자 10여명을 불법시위 주도 혐의로 검거하는 등 강경 진압으로 대 응했다.
이란의 시위 사태는 15일 테헤란 아자디 광장에 수십만명, 전국적으로는 200만 명이 참여하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이날 시위에서는 이란의 준군사조직인 바시지 민 병대가 시위대에 총탄을 발사해 최소 7명(앰네스티는 15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 기도 했다.
헌법수호위원회가 일부 지역 투표함의 재검표를 발표했음에도 개혁파 지지세력 은 반정부 시위를 이어갔고, 18일에는 민병대의 발포로 숨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어 정부를 압박했다.
◇하메네이의 경고 = 시위의 기세가 꺾이지 않자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19일 이례적으로 테헤란 대학에서 금요예배를 직접 주관하며 이란 국민에게 시위 중단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향후에 시위사태가 재발할 경우 응분의 책 임을 묻겠다고 개혁파 세력에 최후통첩을 보냈다.
하메네이는 설교를 통해 선거부정 의혹을 일축한 뒤 "나의 대내외 정책관이 아 마디네자드의 것에 가깝다"며 현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줌으로써 이번 사태의 수습을 시도했다.
이런 그의 연설은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들과 유엔의 거센 비난을 초래했다.
◇이란號 어디로 = 하메네이의 경고와 이란 정부의 강력 대응 방침에도 불구, 무사비의 지지자들은 20일에도 산발 시위를 이어갔다.
대선 후보 중 한 명이었던 메흐디 카루비 전 의회 의장은 이날 시위 취소를 발 표했으나 무사비는 헌법수호위원회에 대선 결과의 무효화를 거듭 주장하며 지지자들 을 향해 자신은 순교자의 길을 갈 준비가 됐고 연설해 하메네이 체제에 대립각을 세 웠다.
이란 당국이 무사비를 전격적으로 체포할 수 있다는 소문이 떠도는 가운데, 무 사비는 지지자들에게 자신이 체포되면 전국적 규모의 총파업을 벌여달라고 주문하고 나서 이번 시위사태는 수구와 개혁 세력 간의 날선 대치상황으로 치닫게 될 가능성 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카이로=연합뉴스)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