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이 전방위 지원에서 선별적 지원과 구조조정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작년 9월 국제 금융위기가 불거진 이후 정부는 신속한 자금 지원과 보증 확대, 만기 연장 등 자금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를 했다. 이에 따라 건설.조선.해운 등 일부 업종과 대기업에는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었지만 중소기업은 무풍지대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정부의 각종 지원책으로 중소기업의 자금난이 완화되고 경기 회복 조짐도 나타나기 시작함에 따라 중소기업도 구조조정의 사정권 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중소기업 지원이라는 정책기조를 유지하면서도 무차별적인 신속 지원 방식에서 벗어나 옥석을 가린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은 금융당국과 채권은행이 구조조정에 착수하는 등 중소기업 정책에 변화가 나타나자 우려 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 1만여개 중소기업 옥석구분
16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은행권은 주채권은행에 진 빚이 50억 원 이상이면서 금융권 신용공여액이 500억 원 미만인 1만여 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신용위험 평가를 할 예정이다.
은행들은 최근 영업실적과 현금흐름 등을 고려해 늦어도 이달 말까지 기본 평가를 할 계획이다. 기본 평가에서 불합격한 업체를 대상으로 7월 말까지는 세부평가를 하고 채권은행간 협의를 거쳐 A등급(정상기업), B등급(일시적 유동성 부족 기업), C등급(부실징후기업), D등급(부실기업)으로 분류하게 된다.
일부 은행은 거래 중소기업에 대한 기본 평가를 이미 끝냈으며 이르면 이달 말까지 세부 평가도 마칠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은행 관계자는 "영업활동 현금과 이자보상배율, 이익전망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4개 등급으로 나눈다"며 "C등급을 받은 업체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고 D등급은 법정관리를 추진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동안 은행별로 거래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위험 평가는 상시적으로 했지만 금융당국의 지도에 따라 은행권 전체가 중소기업 전반에 대한 일제 평가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대기업과 건설·조선·해운 등 업종별 구조조정을 하느라 중소기업 구조조정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며 "이번 평가는 지원해서 살 수 있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한계기업을 가려내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작년 9월 국제 금융위기가 터진 직후에는 중소기업 자금 지원에 중점을 뒀다"며 "앞으로도 이런 정책을 유지하겠지만 구조조정도 병행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 中企 자금난 완화..선별지원으로 선회
금융당국이 중소기업 정책에 변화를 주는 이유는 각종 지원 대책으로 중소기업의 자금난이 다소 풀렸고 경기 회복 조짐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권은 정부가 작년 10월에 도입한 중소기업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패스트트랙)을 통해 올해 5월 말까지 중소기업에 대출 전환, 신규 여신, 만기 연장 등의 방식으로 15조3천억 원을 지원했다.
정부의 대출 보증 확대 조치에 힘입어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 등 신용보증기관의 보증서 발급규모는 올해 들어 5월 말까지 32조7천억 원(만기연장 12조2천억 원 포함)에 달했다.
이에 힘입어 중소기업의 자금 사정도 금융위기 이전인 작년 상반기 수준으로 호전됐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중소제조업 자금사정전망 BSI(기업실사지수)는 올해 1월 56까지 떨어졌다가 2월 64, 3월 65, 4월 72, 5월 83, 6월 84로 점차 개선됐다. 작년 1~6월 평균 중소제조업 자금사정전망 BSI는 83이었다.
중소기업조합중앙회가 1천414개 중소제조업체를 대상으로 발표하는 업황전망 건강도지수(SBHI)도 올해 1월 59.8에서 2월 60.0, 3월 70.5, 4월 77.4, 5월 85.0, 6월 86.6으로 상승했다.
정부는 이달 말로 시한이 끝나는 패스트트랙의 운영을 연말까지 연장하면서도 무차별적인 지원보다는 선별 지원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은행이 패스트트랙에 따라 중소기업에 대출할 때 신용보증기관의 보증이 붙는데 이때 중소기업에 대한 상담절차를 생략하던 것을 7월부터 부활시키기로 했다. 보증기관의 보증 처리 기간도 현행 5일 내에서 7일 내로 늘릴 계획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중소기업이 심각한 유동성 압박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이는 만큼 대출 보증에 대한 위험관리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감독원도 대출을 받은 중소기업의 단기 폐업이나 연체 등 도덕적 해이 유형을 분석하고 있으며 이달 안에 이를 은행들에 제시해 대출 심사에 활용하고 신용위험 평가를 강화하도록 지도할 계획이다.
◇ 업계 "인위적 구조조정 우려"
채권단이 대기업에 이어 중소기업 구조조정에 착수하고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에도 변화가 나타나자 중소기업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구조조정은 시장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하는데 정부에서 대기업 구조조정이 일단락되자 곧바로 착수한 점으로 봐서 인위적으로 속도를 내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다수 중소기업은 국제 금융위기라는 외부적 요인으로 어려움을 겪었을 뿐인데 이 때문에 반강제적인 구조조정이 추진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서울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백모씨도 "보증부 대출마저 은행이 높은 금리를 요구해 자금 조달에 애를 먹는 상황"이라며 "구조조정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진다면 중소기업들의 회생 의지를 꺾어버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이번 구조조정이 `알짜' 기업들에는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옥석 가리기'로 견실한 기업이 살아남으면 더욱 효율적인 지원이 가능해질 것"이라며 "대출 요건 강화 등으로 압박은 받겠지만 자금 조달 사정이 크게 악화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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