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대는 1차 정상 도전에 나섰다.
베이스캠프에는 곳곳에 돌탑이 있고, 네팔 국기와 원정대의 국기, 그리고 각종 깃발이 펄럭인다.
어느 곳이든 100% 안전한 곳은 없다고 할만큼 워낙 사고가 많은 히말라야다보니 에베레스트의 여신 미욜랑상마에게 무사 등반을 기원하는 일종의 제단이다.
어느 원정대건 출정에 나설 땐 먼저 이 제단에 향을 피우고 행운을 빌며 떠난다.
박영석 대장의 기도는 이랬다.
"좋은 날씨와 지혜를 주소서."
그랬다.
원정대에게 가장 중요한 변수는 다름아닌 '날씨'였다.
특히 남서벽은 2000미터 넘는 수직 절벽을 기어올라야 하기 때문에 '바람'이 가장 중요한 변수였다. 바람이 시속 40킬로미터를 넘어서면 벽등반을 하던 사람을 날린다고 한다. 그러므로 사실상 등반이 불가능하다.
히말라야의 날씨는 말 그대로 시시각각 급변한다.
아침엔 맑다가도 점심때부턴 텐트를 날려버릴 것같은 강풍이 불다가 갑자기 눈이 쏟아지기 일쑤였다.
그러니 산악 예보, 특히 8천미터 넘는 산악 예보가 좀 어렵겠는가...
박영석 원정대는 위성 인터넷으로 매일 매일 외국의 날씨 정보를 받아봤다. 6,000미터와 8,000미터 높이의 날씨와 바람세기 등이 나와있는 예보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나보다.
첫 리포트가 나간날 6,500미터 캠프 2까지 올라갔던 박영석 대장은 무전으로 나에게 부탁을 하나 했다.
한국 기상청의 협조를 받을 수 없겠냐는 거다. 서울은 이미 밤 11시였다. 회사로 전화를 걸고 선배에게 부탁을 해 기상청 담당자의 연락처를 받았다. 다음날 이 분에게 부탁을 했고, 다행히 도와주시겠다는 답을 얻었다.
이렇게 두 곳에서 받아보는 일기예보로도 부족했다. 두 곳의 일기예보가 다르기 일쑤였기에 판단이 어려운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정대는 '상업등반대'의 동향을 매우 중시했다.
상업 등반대는 전문 산악인이 아닌 사람들이 1인당 7만 달러(우리 돈으론 약 1억 원) 정도를 내고 셀파와 산소 등의 지원을 팍팍 받으면서 올라가도록 서비스하는 회사들을 말한다.
비싼 돈을 내고 온 고객들을 지원하는만큼 고객 한 명당 셀파가 한 명 이상 붙을 만큼 규모도 크고 자본력, 정보력도 뛰어나다. 그런데 이들은 철저하게 자신들의 정상 도전일을 숨긴다.
히말라야의 날씨가 워낙 변화무쌍하고 5월 말이면 한국의 장마라고 할 수 있는 '몬순'이 시작되기 때문에 날씨 좋다는 5월에서도 사실 정상에 오를 수 있는 날은 3-4일 뿐이 안된다.
이 짧은 기간동안 베이스캠프를 가득 메운 30여개 팀이 모두 정상에 오르려 한다. 하루에 정상에 오르는 사람이 100명 가까이까지 된다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팀은 53년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게이 셀파가 올랐던 길로 정상에 가기 때문에 정상 부근 힐러리 스텝이라 부르는 난코스에서 일종의 병목 현상이 생길 수 있다.
이는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1996년 5월 10일 힐러리 스텝에서 병목 현상이 일어나 사람들이 붐비는 가운데 갑자기 날씨가 나빠지면서 하산하던 상업 등반대원 8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난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상업 등반대는 철저히 자신들의 정상 도전일과 마지막 캠프 출발 시각을 비밀로 한다.
박영석 원정대는 셀파들의 각종 연줄을 동원해 대규모 상업 등반대가 비밀로 부치는 정상 도전 일정을 알아내기 위해 열심이었다.
베이스캠프에 남아있는 대원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상업 등반대 동정 염탐이었으니까...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나의 일과는 단순했다.
네팔과 한국은 3시간 15분의 시차가 난다. 네팔 시각에서 3시간 15분을 더하면 한국 시각이다. 8시 뉴스에 나갈 2분 정도의 동영상은 위성 인터넷을 통해 전송했다. 위성 인터넷은 빠를땐 10Kbps 정도, 평균적으론 8Kbps 정도의 속도가 나왔다.
이곳에서 이용하는 위성 인터넷은 1MB당 9달러 정도를 내야한다. 한국의 사이트들은 초기 화면을 플래시와 각종 이미지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접속할 때마다 돈이 많이 들어 가능한 접속을 자제해야 했다.
40MB 남짓의 동영상을 FTP로 보내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1시간 40분.
중간에 접속 상태가 갑자기 나빠지면서 접속이 아예 끊어질 때도 있기 때문에 뉴스 시간에 맞추려면 네팔 시각으로 오후 2시쯤엔 전송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려면 전날 저녁에 대충의 기사 가안을 써놓아야 한다.
아침 먹을 시간인 7시 반(서울은 10시 45분)쯤 회사에서 전화가 온다. 전화로 기사를 불러주고, 데스크가 끝나면 다시 전화가 온다. 대개 네팔 시각 오전 10시쯤 기사가 완성된다. 이때부터 스페셜팀 박준우PD와 편집에 들어간다.
편집을 위한 노트북을 박 PD가 가져왔다. 원래는 태양전지로 전력을 공급했는데 뉴스 편집을 하면서부터 이것만으론 전력이 모자랐다. 셀파 한 명에 부탁해 대여료로 하루에 20$ 남짓 내고 고락셉에서 발전기를 빌려왔다.
처음엔 그때 그때 촬영했던 테이프를 노트북에 옮겨서 컴퓨터에서 영상을 찾아 쉽게 쉽게 편집했는데 저장하던 하드디스크가 고장이 나버렸다. --;;
결국엔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카메라로 그림 확인하면서 필요한 영상을 그때마다 컴퓨터로 옮겨 편집을 해야 했다. 그만큼 편집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박영석 대장이 워낙 빨리 오라고 채근을 했기에 난 올라오기만 하면 무진장 좋은 날씨에서 지내다 일주일 안에 승부가 나서 즐겁게 내려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상황은 이상하게 돌아갔다.
5월 8일
캠프2로 올라간 박영석 대장은 상업 등반대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며 난리가 났다. 선발대인 동민이형은 이미 캠프4를 지나 캠프 5로 한창 오르고 있을 때였다.
당초 5월 10일이 가장 좋다던 일기예보도 급변하기 시작했다. 10일엔 정상 부근에 시속 100킬로미터 가까운 제트기류가 온다는 거다. 박영석 대장은 동민이형에게 무전을 쳐 급히 철수하라고 했다. 동민이형 말에 따르면 당시 캠프 4의 날씨는 좋은 편이었단다.
결국 원정대는 9일 오후 베이스캠프로 철수했다. 그리고 9일 저녁부터 베이스캠프엔 3-4일 정도 많은 눈이 오기 시작했다.
다음 일정은? 기약이 없었다.
본격적인 베이스캠프 생활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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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보도국 문화부의 젊은 피, 유재규 기자는 종교계와 대중문화, 문화재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2005년 SBS에 공채로 입사한 뒤 국제부를 거쳐 사회2부 사건팀을 거쳤습니다. 따뜻한 시선과 섬세한 시선으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하는 유 기자는 최근엔 박영석 원정대의 에베레스트 남서벽 도전을 현지에서 동행취재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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