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은 어제 갔던 길이다.
출발할 땐 원시림처럼 숲이 울창했었는데... 5천 미터 가까이 올수록 이젠 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닭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사람 냄새도 없다. 살아있는 것이라곤 트래커들과 야크, 약간의 키 작은 식물들 뿐이다. 그나마도 조금 더 올라가니 식물들도 보이지 않는다.
민둥산 같은 벌거벗은 산과 노출된 암반, 그리고 곳곳에 보이는 설산들이 이곳은 '눈들의 고향' 히말라야임을 말해준다.(히말라야는 산스크리트어로 '눈들의 고향'이란 뜻이다.)
갈수록 바람도 거세진다. 대낮에도 파카를 꺼내 입어야했다.
투클라부터 로브제까진 약 3시간 동안 계속되는 오르막길을 걸어야한다. 경사가 크게 심한 곳은 없지만, 계속 바위 사이를 걸어야 한다.
가다보니 한쪽 다리가 없는 외국인이 목발을 짚고 험한 길을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멀쩡한 사지로 빌빌 거리며 간신히 올라가는 나에 비해 너무도 자연스럽게 씩씩하게 잘 올라가고 있었다.
그의 의지와 체력이 존경스러웠다...
조그만 롯지가 보였다.
'아...다왔구나...'
오늘 베이스캠프로 들어갔을 것 같았던 국장님도 롯지에서 하루 더 머물고 계셨다. 식당에 모여 앉아 있는데 베이스캠프에서 두 명이 내려왔다.
원정대와 3월 말 출발해 한 달 넘게 살고 있던 스페셜 팀의 박준우 PD와 동아일보 황인찬 기자였다. 조금 뒤엔 원정대의 신동민 대원이 내려왔다. 우리를 마중나온 셈이었다.
다음날 아침, 베이스캠프로 가는 마지막 롯지 고락셉으로 갔다. 5천 미터를 넘어섰다. 점심쯤 고락셉에 도착하니 원정대가 모두 내려와 있었다.
베이스캠프로 가는 길이 있고, 칼라파타르(5,545m)로 가는 길이 있다.
베이스캠프에선 에베레스트가 보이지 않고 칼라파타르에 올라야 볼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트래커들은 고락셉에서 칼라파타르에 다녀와 하루 자고 다음날 베이스캠프에 잠깐 들렀다 하산을 시작한다.
에베레스트를 배경으로 스탠딩을 잡기 위해선 칼라파타르에 올라야한다. 고락셉에서 베이스캠프에 가는 도중에 에베레스트가 보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스탠딩을 잡는 방법도 있다.
어쨌든 우리는 칼라파타르에 들렀다 바로 베이스캠프로 들어가기로 했고, 새벽 4시에 출발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주 엉뚱한 일이 터지는 바람에 난 칼라파타르에 못 갔다.
롯지는 2인 1실이었다.
새벽 3시쯤?
내 옆 침대가 살짝 소란스러웠다.
설마 무슨 일이야 있으랴 싶어 비몽사몽 계속 잤는데...
맙소사...
눈을 떠보니 내 신발이 축축했다.
불면증에 고생하던 내 룸메이트가 잠이 잘 안 온다며 전날 센 수면제를 두 알 먹고 잤더니 환각 작용이 왔던 모양이다.
방 안을 화장실로 착각하고 내 신발이 놓인 벽을 변기로 생각했는지 내 신발을 향해 소변을 본거다.
도저히 이 상태로는 신발을 신을 수가 없었다.
한편으론 아쉬우면서도 '베이스캠프 가는 길에 스탠딩 잡으면 되지 뭐'
'나중에 정 필요하면 베이스캠프에서 칼라파타르까지 나와도 되는 것 아닌가'란 생각에 새벽부터 산행을 안 해도 된다는 안도감이 더욱 컸다. ^^:;;
해가 뜨자마자 슬리퍼를 찾아 신고 햇볕이 가장 잘 드는 곳에 신발을 말리기 시작했다. 날씨가 맑아서 다행이었다. 햇볕은 강했고, 신발은 금세 말랐다.
원정대와 함께 베이스캠프로 떠났다.
산행을 할 땐 가장 잘 걷는 사람이 가장 처지는 사람과 함께 맨 마지막에 간다.
처음엔 동민이형이 나와 같이 갔는데 베이스캠프 근처에 와선 부담스럽게도 박 대장이 내 옆에서 같이 걸었다.
사진 오른쪽 산 아래 하얀색 얼음 덩어리 같은 곳이 베이스캠프다.
조금씩 텐트도 보인다. 드디어 베이스캠프에 들어왔다.
듣던 대로 빵집이 있었다. 좀 들어가서 빵도 사먹고 쉬다가면 좋으련만 그런 사치는 허락되지 않았다.
대신 원정대의 셀파가 주전자를 들고 나와 길에서 주스같은 걸 한 잔 줬다.
박영석 원정대의 텐트는 베이스캠프의 맨 끝쪽에 있었다.
내가 베이스캠프에 들어온 건 어린이날, 28일 루클라를 출발한 지 8일만이었다.
박 대장은 다음날 정상도전에 나설 계획이었다.
겸사겸사해서 이날 저녁은 특식이었다.
빙하에서 한 달 넘게 삭힌 홍어다.
5,364미터에서 제대로 삭힌 홍어를 먹게될 줄이야...
이 홍어회로 찐감자만 먹으며 올라왔던 그동안의 식욕부진은 한방에 날아갔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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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보도국 문화부의 젊은 피, 유재규 기자는 종교계와 대중문화, 문화재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2005년 SBS에 공채로 입사한 뒤 국제부를 거쳐 사회2부 사건팀을 거쳤습니다. 따뜻한 시선과 섬세한 시선으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하는 유 기자는 최근엔 박영석 원정대의 에베레스트 남서벽 도전을 현지에서 동행취재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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