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박쥐]만큼은 아니지만 이 영화도 일반 관객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홍상수 감독이 이전 작품들보다 밝아지고 투명해졌다면 [마더]는 봉 감독의 전작들보다 다소 차가워지고 무거워지고 어두워졌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또 [살인의 추억]이나 [괴물]처럼 점점 감정이 고조되다가 확 터뜨리는, 그래서 재미있게 잘 보고 주변에 추천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만드는 요소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도 꼽을 수 있겠네요.
저는 나름대로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치밀한 이야기 구조와 정교한 촬영, 멋진 연기가 잘 어우러졌고, 무엇보다 사건의 전개과정에서 중반이후 상식과 통념에 반하는 전환이 주는 묘미가 짜릿할 정도로 맘에 들더군요.
자그만 시골에서 약재상을 하며 '야매'로 침도 놔주고 사는 엄마(김혜자)는 스물여덟이지만 다소 지능이 떨어져 동네에서 바보 취급을 받는 아들 도준(원빈)과 단둘이 살고 있습니다. 물가에 내놓은 애처럼 항상 무슨 사고라도 칠까 노심초사 하고 또 실제로 크고 작은 사고를 치고 당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고생이 살해당하고 도준이 범인으로 몰려 구속됩니다. 엄마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는데 군내에서 제일 잘나간다는 변호사마저 도준을 진범으로 생각하고 형량을 줄이는 방법을 제안합니다. 그럴수록 엄마의 속은 타들어갑니다.
마우스질(?) 빠른 분들이라면 인터넷 이곳 저곳을 서핑하며 본 자료로 잘 아시겠지만 이 영화의 출발점은 국민 어머니라는 호칭을 붙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김혜자라는 배우에서 출발합니다. 감독이 대학시절 동아리방이 이 배우의 자택 근처였고 존경하며 지켜보다가 결국 유명 감독이 되어 출연제의를 했고 관록의 대배우와 당대의 명감독이 손을 잡고 만들게 된 거죠. 그러다 보니 김혜자씨가 평소 드라마에서 보여줬던 친근한 국민 엄마의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자고 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모성애의 극단적 형태가 주제가 된 것입니다.
치밀하고 꼼꼼한 만듦새는 각 장면의 구도와 배치 등에서 흠잡을 구석이 없을 뿐 아니라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훌륭합니다. 영화 첫 장면 엄마가 춤추는 들판의 곡선이 주는 묘한 입체감, 화장장으로 가는 길의 구부러진 공원묘지길, 고물상 아저씨 집과 주변 풍경, 차속에서 바라보는 한 그루 나무, 그리고 전국을 뒤진 끝에 찾아냈다고 하는, 지는 해의 각도 때문에 일 년에 딱 사흘 찍을 수밖에 없는 현장에서 어렵게 건져낸 마지막 버스 속 춤 등 강렬한 잔상을 남기는 장면이 많습니다. 영화 초반부, 엄마가 작두로 약초를 썰며 길 건너편에서 친구 진태와 함께 개와 놀고 있는 도준을 지켜보다가 결국 작은 사고가 일어나는 장면의 불안한 긴박감과 엄마가 피살자 장례식에 찾아가 아들이 범인이 아니라며 항변하다가 벌어지는 소동 장면 등은 정교함과 에너지를 함께 갖춘 명장면으로 꼽을 만 합니다.
또 김혜자, 원빈, 두 주연배우뿐 아니라 진구, 윤제문 등 조연배우들의 연기 조화도 훌륭한데 특히 세팍타크로 형사로 나오는 송새벽의 등장은 신선합니다. 대학로의 촉망받는 젊은 연극 배우가 엇박자로 치는 대사의 타이밍과 압축된 표현 등이 인상적이어서 또 다른 버전의 송강호나 김윤석의 등장으로 점칠 만하더군요. 여기서 보이는 모성애의 형태는 우리가 드라마나 대중 소설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식의 틀을 뛰어넘어 인간의 원초적인 부분까지 확대되기 때문에 불편해 보입니다.
개봉 후 인터뷰를 보니 모든 것을 꿰뚫어볼 수 있는 통찰을 가진 것처럼 보여 천재감독이라는 말을 듣는 감독도 자신의 결단과 판단으로 촬영하고 편집하고 나서 극장에 건 뒤에도 자신의 작품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하는 걸 보니 감독이 작품을 갖고 놀며 즐겼다기보다 작품이 오히려 이 천재감독을 갖고 논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구요.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고, 많은 질문이 떠오르는데 감독 자신조차 명쾌하게 대답을 잘 못하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김혜자 선생님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여기서 도준을 연기한 원빈의 연기는 그 캐릭터의 모호성과 신비로움에 인물 해석과 연기 방식의 탁월함 때문에 많은 찬사와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반전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도준의 대사가 품는 의미가 무엇인가, 과연 모든 것을 알고 있었느냐,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인가도 논란이 되는 부분입니다. 일각에서는 음모론까지 제기되더군요.
이전 작품에서 터뜨리고 발산하던 경향과는 반대로 그 자체의 중력 때문에 점점 수축해가는 백색왜성 같은 느낌입니다. 발산과 수렴이라는 틀로 해석해보고 싶은 [마더]를 보고나니 봉준호 감독의 다음 행보가 더욱 궁금해집니다. 주변의 기대에 너무 부담 갖지 말고 만들고 싶은 영화를 계속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군내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변호사가 '싸가지 없다'고 못 마땅해 하는 것들에 대해 '싸가지 없게' 시정을 명령하는 행태 설정은 특정인 혹은 특정세력을 염두에 두고 만든 캐릭터 같아서 흥미롭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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