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울산의 장생포 하면 고래잡이로 유명하던 곳입니다. 세월이 변했습니다. 요즘 이 지역은 고래 관광 열기로 뜨겁습니다.
정연 기자가 장생포에 다녀왔습니다.
<기자>
망망대해를 거침없이 헤엄치는 거대한 동물.
고래는 예로부터 희망과 꿈의 상징이었습니다.
실제로 고래가 꿈을 안겨줬던 곳, 울산 장생포.
멸치, 정어리 같은 고래 먹이가 풍부해, 고래 잡이 전성기였던 1960년대부터 고래는 이 지역의 주 수입원이었습니다.
[대한뉴스/1963년 : 울산만 장생포 부두에 큰 고래가 잡혀왔습니다. 작년만 해도 277마리를 잡았는데, 여러분이 보시는 이 고래는 값이 현시가 75만원(현재 2천2백만원정도) 된다니, 훌륭한 문화주택 하나를 마련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조옥자/주민 : 전에는 많이 보고 했지, 우리집 앞에 장생포 그 앞에서도 펄떡펄떡 뛰었다 아닙니까.]
하지만 고래잡이가 금지된 1986년 이후, 장생포의 고래 경제는 쇠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역 주민은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포경 기록과 고래뼈 등이 전시된 고래박물관.
그리고 길가에 늘어선 고래고기 식당들이 옛 고래 항구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을 뿐입니다.
[박두레 : 약간 젓갈 냄새가 풍기면서 맛있어요. 너무 단가가 세서 자주 못 먹어요.]
[고래 가게 주인 : 여기가 등쪽 부위고요. 이게 고래 갈비살, 이게 내장이랑 허파고 이게 옆구리쪽입니다.
[윤행원 : 기름기가 많으니까 포만감이 빨리 와요.]
고래는 포획이 금지돼 있지만 죽은채 발견되거나 다른 수산물과 섞여 그물에 잡히면 식용으로 유통될 수 있습니다.
수협 위판장에서 돌고래는 보통 1마리에 2백만 원, 밍크 고래는 2천만 원 정도지만 공급량이 부족하면 값이 2배까지도 오릅니다.
장생포 앞바다에 고래를 보여준다는 관광선이 승선인원 4백 명을 모두 태우고 처음 닻을 올렸습니다.
국내 최초로 유료 고래 관광이 시작된 것입니다.
[선장 : 출항통보입니다. 9시 10분 내항부두 출항.]
고래잡이가 금지되기까지 30년 동안 고래잡이 배를 탔던 이상식 씨.
고래를 보러간다고 생각하니, 등을 반짝이며 떠오르던 고래떼가 눈에 선합니다.
[이상식/전 포경선 선장 : 한 번 왔을 때 하루에 나가서 7마리까지 잡았어. 그때는 버글버글했지,고래가.]중학교 졸업을 하고 바로 포경선에 승선해서 배를 타다가 고랫배가 끝날 때까지 탔어요.]
배를 탄지 2시간 반.
기대에 들떠있던 사람들의 표정에 아쉬움이 짙게 배어 나옵니다.
배 타고 나간다고 아무때나 고래떼를 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열 번에 세 번 정도로 확률은 높지 않습니다.
[이상식/전 포경선 선장 : 먹이 따라 움직이니까 먹이가 없으면 안오는 거고.]
[이지은 : 고래 보고 싶었는데요. 못 봐서 섭섭해요.]
고래 관광선은 고래 축제 기간인 사흘 동안 열 한 차례 운행됐습니다.
이르면 다음 달부터는 주말마다 운행에 들어갈 계획입니다.
고래 관광이 시작된 건 국내 연안에 출몰하는 고래 개체수가 급격히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울산 앞바다에는 각종 고래가 연간 5천 마리 이상 모여드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이선호/울산남구청 고래계장 : 많은 관광객들이 유입이 되고 고용창출도 되고 지역 전체가 발전될 것입니다.]
고래 개체수가 늘다보니 배에 부딪쳐 죽거나 고기잡이에 나선 어부들의 그물에 걸리는 고래수도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고래떼로 인해 선박이 좌초되는 사고가 나기도 합니다.
고래잡이를 제한적으로라도 허용하자는 목소리가 그래서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고래잡이가 허용된다면 고래류가 아예 멸종될 것이라며 절대 불가를 외치고 있습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지역 주민들의 희망이었던 고래.
고래 관광이 침체에 빠진 장생포에 다시 활기를 불어 넣어줄 것으로 주민들은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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