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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발트뷔네…부족한 한가지

발트뷔네, 클래식 애호가들에게는 괜스레 가슴이 뛰는 이름이다. 매년 여름 주말 하루 밤 베를린필이 세계적인 지휘자를 초청해 연다는 야외공연 무대, DVD로 본 발트뷔네는 울창한 숲으로 둘러쌓인 정말 무지무지하게 큰 공연장이었다. 2만3천 명이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다하니 우리나라 웬만한 야구장보다 더 큰 규모다. 그곳에 빼곡히 들어찬 관람객들은 계단식의 맨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서로 어깨를 감싸고 한여름 밤을 수놓는 선율에 넋을 잃고 빠져든다. 각양각색의 새소리도 섞이고 숲을 헤치고 나온 바람 소리가 배경음 처럼 깔리는 위에 울려퍼지는 세계적 악단과 명지휘자가 펼쳐놓는 음악. 그런 자리에 평생에 한번이라도 가봤으면 소원을 절로 갖게 되는 모습이었다.

서울시가 국내에 발트뷔네를 만들었다고 했다.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에 조성돼 지난 어린이날 문을 연 '능동 숲속의 무대'이다. 취재를 위해 찾아가면서 가슴이 잔뜩 부풀었다. 어떤 분위기일까, 진짜 발트뷔네 처럼 자연과 예술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공간일까. 숲향기와 연주자의 열정, 관객의 감동이 녹아 흐르는 시간을 만들어낼까. 그런 저런 기대를 가슴 한가득 품고 약간 오르막인 공연장 진입로를 뛰다시피 올라갔다. 그리고 첫 인상은… 일단 나름 시원했다. 물론 발트뷔네와 같이 거대한 규모는 아니다. 서울시 얘기로는 8천석 수준이라고 했다. 그렇게 많이 들어갈 수 있을까 살짝 의심이 들었지만 무대와 바로 앞 잔디밭과 계단식으로 조성된 관람석은 그리 비좁아 보이지는 않았다. 주변을 둘러싼 나무들은 발트뷔네처럼 숲이라고 부르기에는 빈약했지만 그래도 공연장을 충분히 아늑하게 감싸고 있었다.

그날의 공연은 뮤지컬 갈라 콘서트였다. 곧 막을 올릴 예정인 '삼총사'와 이미 수차례 공연돼 큰 인기를 누린 '드라큘라', 최근 뮤지컬 팬심을 끌어모았던 '클레오파트라', '햄릿' 등의 주요 아리아와 합창곡 등이 연주됐다. 음향은 음~ 나쁘지 않았다. 야외의 뻥뚫린 공간이라 음이 흩어질 수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공연장 곳곳에 전달할 만큼 상당히 힘이 있었다. 게다가 양 옆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은 공연장 끝에서 보는 관객들이라도 무대위 공연자들의 상기된 표정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발트뷔네에는 볼 수 없었던 화려한 조명장치까지 갖춰 이날 뮤지컬 공연의 흥을 돋웠다. 이날 공연이 대형 관현악단의 연주가 아니었기 때문에 발트뷔네의 여름밤 야외공연과 바로 직접적인 비교를 하기에는 어려웠지만 발트뷔네가 전해주는 흥취를 비슷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의 하드웨어를 갖춘 것 아닌가 비전문가의 입장에서 평가해봤다.

그런데 발트뷔네에 비해 결정적으로 부족한 한가지가 있었다. 어쩌면 치명적인 차이를 가져다주는 한가지였다. 바로 공연을 즐기는 관객들의 태도였다. 아니, 자세라고 해야할까. 온가족이 돗자리를 펴놓고 각자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음악을 즐기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평소의 실내 공연장이었다면 문간에서 쫓겨나야 했던 미취학 아동은 물론  간난아기들까지 함께 공연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보기 좋았다. 그런데 곡이 연주되고 무대에서는 공연자가 온 힘을 기울여 열창을 하고 있는데도 관객 일부는 끊임없이 왔다갔다, 들락달락, 심지어 뛰어다니는 사람들까지 도저히 산만해서 음악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나도 촬영을 하고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여기저기 다녔으니까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관람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공연장의 맨 뒤를 빙 둘러서 조심조심 다니고 관객들의 반응을 묻는 인터뷰도 사회자가 소개말을 하는 시간만 이용해서 최대한 조용히 진행했다. 하지만 나의 그런 행위가 야단스럽게 느껴질 만큼 많은 관람객들은 거침없이 돌아다니고 움직였다. 그런 관객을 바라보며 공연을 하는 무대 위 가수와 연주자들이 헷갈려서 음표를 놓칠까봐, 가사를 까먹을까봐 내가 다 조마조마 했다.

DVD에서 본 발트뷔네는 나무를 심어 구획을 표시한 객석의 통로마다 진행요원들이 지키고 서서 이동을 철저히 막고 있었다. 자신의 자리에서는 애인과 껴안고 보든, 비스듬히 누워서 보든 누구 하나 상관하지 않지만 일단 공연이 시작되면 일어나서 움직이는 사람은 단 한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진행요원들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공연중에 왔다갔다 한다는 개념 자체가 이들의 머리속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 산만해지기 쉬운 야외 공연에서도 인구에 회자될 명연이 탄생하고 음악에 대한 사랑으로 하나로 어우러지는 감동의 순간이 찾아올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능동 숲속의무대'는 이런 관람태도가 계속 된다면 그와 같은 기대는 아예 접는 것이 낳을 듯 했다. 극도의 산만함이 크게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그저그런 공연이나 보는 그런 무대가 될 게 뻔해 보였다.

결국 '한국의 발트뷔네'를 만드는 것은 럭셔리한 무대도, 세계적 수준의 음향기기나 조명도, 베를린필과 같은 수준의 세계적인 연주단체도 아니다. 공연자와 관람객의 음악에 대한 사랑과 열정, 또 다른 관객의 음악 감상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배려일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발트뷔네'를 마련했다는 서울시의 발표는 또 하나의 거짓말일 뿐이었다.

 

[편집자주]  우상욱 기자는 1995년 SBS 공채로 입사해 사회, 정치,경제부를 두루 거치며 지금은 사회1부에서 서울시청 출입기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국민생활과 밀접한 시정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차분하고 성실한 취재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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