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검찰청에 소환됐던 4월 30일,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언론과의 약속대로 이날 밤 10시에 세 번째 브리핑에 나섰습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진행상황을 간략하게 얘기하던 홍 기획관은 "11시쯤 박연차 회장과 노 전 대통령의 대질 신문이 시작될 것 같다"고 먼저 털어놓았습니다. "대질이 완결되는 시간은 12시까지로 잡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양쪽에서 대질하겠다고 했습니까?"
홍 기획관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아직 의사는 못 물어봤습니다. 11시쯤 조사 끝나면 대질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기자의 질문이 뒤따랐습니다.
"대질 하겠냐는 의사도 안 물어보고 언론에 먼저 공개하는 이유는 뭡니까?"
이에 대해 홍 기획관은 "일부 언론에 대질 부분이 보도돼서 공개하는 것입니다. 또 어차피 질문이 나올 것 같아서..."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홍 기획관은 "권양숙 여사의 재소환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확인해 줬습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에서 의혹이 해소되면 권 여사를 안 부를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권 여사를 소환할 경우 비공개로 할 것이란 방침도 밝혔습니다. 이 역시 "일부 언론에 보도가 됐기 때문에 확인해 주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분명 평소와 다른 모습들입니다.
통상 검찰은 대질신문을 하게 될 경우 양측의 의사를 먼저 물어봅니다.
그 전에는 '대질을 검토하고 있다'는 식의 '가능성'만 언급할 뿐, 이번처럼 단정적으로 얘기하지 않습니다.
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감안해 그동안 "나중에 지켜보자"는 식으로 말을 아껴왔습니다.
실제로 이날 대질은 무산되고 말았고, 홍 기획관은 나중에 "노 전 대통령측이 대질을 거부해 불발이 됐다"며 노 전 대통령측에 유감을 표시했습니다.
권 여사의 재소환 가능성을 언론에 확인해 준 것은 검찰의 평소 모습과는 더더욱 멀어 보입니다.
그동안 검찰은 아무리 언론에 보도가 되더라도 '소환 계획만큼은 미리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의 경우에는 더욱 철저히 비밀에 붙였습니다.
더욱이, '비공개 소환 계획'을 미리 '공개'하는 것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검찰이 권 여사를 처음 조사했을 땐, 그 다음날에야 조사했다는 사실을 언론에 알렸습니다.
이처럼 검찰의 태도가 평소와 달랐던 것은 왜일까요?
홍 기획관의 말에서 추론의 근거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홍 기획관은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 변호인을 통해, 조사받고 있는 노 전 대통령에게 모두 보고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검찰이 브리핑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을 압박하려 한 것은 아닐까요?
노 전 대통령이 남은 조사에서 '자백'을 하지 않을 경우 박연차 회장과 대질을 하거나 권양숙 여사를 재소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노 전 대통령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전날 검찰은 "지금까지 박연차 회장이 대질에서 져 본 적이 없다"며 대질의 '위력'을 은근히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홍 기획관의 브리핑 후 언론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연차 회장이 대질했다'고 미리, 그것도 비중있게 보도했다가 정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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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03년 신문기자로 시작해 2007년 SBS에 입사한 김지성 기자는 사회2부 법조팀에서 검찰 출입기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뚝심있고 끈질긴 기자정신으로 현장을 누비는 김 기자는 정치부에서도 활약했으며, 2003년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숨겨놓은 비자금'과 관련한 특종보도로 큰 반향을 불러오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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