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는 사실의 조각들을 조립하여 진실을 그려내는 과정입니다. 사실은 막연하고 관용적인 표현이 아니라 구체적인 표현으로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요즘 언론은 관용적 표현으로 상황을 전달하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북한문제와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수사를 보도한 지난주 SBS 뉴스에서도 이런 경향을 볼 수 있습니다.
4월 23일 SBS 뉴스는 미국 의회에 나가 외교 최우선 현안을 밝힌 클린턴 장관의 대북 메시지는 '단호'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뉴스는 클린턴이 특히 로켓 발사와 핵 활동 재개 같은 북한의 도발 행동에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습니다. 반면에 뉴스가 인용한 클린턴의 육성은 북한과의 대화를 추구하는 미국의 입장이 변하지 않았음을 말해줍니다. “북한 정권의 예측할 수 없는 행동에 굴복하지 않고, 강력하고, 인내심을 갖고 일관성 있게 대응해 나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정치인들의 추상적인 표현에 어떻게 구체적인 내용을 담느냐 하는 것은 언론에 달렸습니다. 뉴스가 인용한 클린턴의 한마디 속에는 '굴복하지 않고', '강력하고', '인내심을 갖고 일관성 있게' 라는 표현들이 들어 있습니다. 이들 중에 클린턴이 힘을 실은 단어가 '일관성 있게'이며, 그것은 곧 종래의 미국 입장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강조임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4월 21일 북한의 요구로 가졌던 남북접촉에서 우리 쪽이 전달받은 통지문 내용이 이틀 뒤인 23일에야 공개됐습니다. SBS 뉴스는 북한 쪽 통지문이 개성공단을 유지할 수도 폐지할 수도 있다는 '상반된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책임을 우리 측에 떠넘기려는 의도'가 명확하다고 분석했습니다. 뉴스는 북한이 경제적 실리 증대를 전제로 개성공단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보이면서도 남측이 6.15선언 무시, PSI 참가 등으로 사태를 악화시킬 경우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경고를 한 것이 바로 '상반된 메시지'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상반된 메시지가 아니라 뉴스가 나중에 다시 분석한 대로 '고강도 압박'에 해당됩니다. '책임을 우리 측에 떠넘기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개성공단이 폐쇄되었을 때를 상정한, 성급한 예단입니다. 청와대 관계자의 반응처럼 북측의 제의가 진정성이 담긴 것인지, 아니면 개성공단 폐쇄 등 강경 조치를 위한 명분 축적용인지를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것입니다.
한국 언론들은 흔히 우리 정부나 미국 등 우방국 정부의 태도에 대해서는 '단호함'과 같은 긍정적 표현을 쓰고, 북한에 대해서는 '책임전가'와 같은 부정적 표현을 쓰곤 합니다. 언론의 사실 보도가 이와 같이 선입견에 좌우되면, 시청자들에게 실제 상황과는 다른 이미지를 심어줄 위험이 있습니다. 노 전 대통령 소환을 앞둔 지난 며칠 동안 언론은 이와 관련된 소식을 연일 주요뉴스로 보도했습니다.
SBS 뉴스는 4월 26일과 28일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에도 소환을 앞두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뉴스는 긴장감을 설명하는 구체적인 상황을 제시하지는 않았습니다. 뉴스가 전한 26일과 28일의 봉하마을 표정은 긴장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마을에는 하루 종일 침묵이 흘렀고, 노 전 대통령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그동안 이어져 왔던 측근의 방문도 없었고, 주민들은 오리쌀 모판 만들기 등 영농 준비를 하며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뉴스는 이와 같은 사실 위에 기자의 추측을 덧붙였습니다. 노 전 대통령 측은 자택 안에서 검찰 출석에 대비한 본격적인 준비에 착수한 것으로 '보이며', 주민들도 겉으론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사태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예민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전직 대통령의 소환을 앞둔 봉하마을과 노 전 대통령 주변이 긴장한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따라서 긴장감이 고조된다는 것 자체는 뉴스가 아닙니다. 구체적인 사실을 뒷받침해야 뉴스가 됩니다. 이를테면 마을 사람을 인터뷰 한다든지, 만일 인터뷰하기가 어려우면 그 사실을 설명하든지 해야 합니다.
지난 며칠사이 노 전 대통령 소환 관련 뉴스는 풍성하게 나왔지만, 혐의와 관련해서는 새로운 사실이 거의 없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어떤 교통편을 이용하여 서울로 올 것인가를 두고 서너 차례나 보도했고, 노 전 대통령을 구속할 것인가 아닌가를 두고도 여러 차례, 노 전 대통령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대질심문이 있을 것인가를 두고도 몇 차례 엎치락뒤치락하는 기사를 보도했을 뿐입니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을 구속할 것인가를 분석한 4월 27일 뉴스는 형사소송법상 구속요건 충족이 어렵다는 점과 거액의 뇌물수수를 불구속 수사하는데 대한 형평성 시비사이에서 검찰이 고민하고 있다는 식의 피상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분석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소환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그의 유죄를 전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습니다.
시청자들의 진정한 관심은 노 전 대통령이 어떤 교통편으로 서울로 올 것인지가 아니라 실체적 진실이 어떻게 밝혀지느냐에 있습니다. 그러나 알맹이가 빠진 노 전 대통령 관련 뉴스라도 그것이 미친 영향은 컸습니다. 사람들은 으레 소환관련 이야기를 화제에 올렸고, 그 때문에 검찰은 공정하고 신중한 기관으로 부각되었으며, 재 보궐선거, 남북접촉 등 여러 굵직한 정치 사회적 이슈들이 묻혀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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