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이나 무술영화 팬들이라면 다른 영화적 장치 없이 무술로 시작해 무술로 끝나는 순수 무술 영화에 갈증을 느끼셨을 텐데 [엽문]은 그런 갈증을 해소할만한 우직한 무술 영화입니다.
1930년대 중국 불산은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각자 도장을 열고 후학을 양성하는 중국 무술의 메카입니다. 수많은 고수들 가운데 우리의 주인공 엽문(견자단)은 엄청난 스피드와 내공을 자랑하는 영춘권의 대가로 무술 실력에 걸맞은 인품까지 갖춰 주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중일전쟁이 일어나고 불산에 몰아닥친 일본군들 때문에 엽문 가족은 물론 중국인들이 가난과 배고픔의 나락에 굴러 떨어져 고생하는데, 주둔군 사령관은 일본 무술을 신봉하는 고수로 비열한 방법으로 중국 고수들을 하나씩 제거하고 그 가운데 독보적인 엽문에게는 무술 전수를 지시하며 압박과 유혹을 하지만 엽문은 의연하게 이를 거부하고 중국인들에게 몰래 무술을 가르칩니다.
이런 엽문을 간악한 일본군이 그냥 놔둘 리 없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처럼 무술 액션을 영화의 스펙터클을 풍부하게 하는 하위 요소로 사용하는 게 아니어서 입이 쩍 벌어질만한 규모는 별로 없습니다. 고작해야 수십 명이 무술 연마를 하는 정도가 스펙터클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무술 자체에 대한 집중이 이 영화의 특징입니다.
스토리 전개와 영상은 별다른 기교를 부리지 않고 단순하면서 우직한데 그것이 단점으로 작용한다기 보다는 시대적 배경과 캐릭터의 특성과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복잡한 것을 높이 평가하는 분들이라면 선과 악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평면적, 관습적인 인물묘사와 이야기 전개가 맘에 안드는 촌스러운 영화라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것이 순도 높은 쾌감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악독한 일본놈들과 10대 1로 대적하는 장면에서 엽문의 분노를 가득 실은 무술 동작을 보며 제 손에 괜히 힘이 들어가더군요.
주인공 견자단은 젊은 시절의 약간 느끼했던 외모가 중년에 접어들며 중후하게 바뀐 데다 이미 무술 고수인데도 이 영화를 위해 영춘권을 9개월 넘게 연마했다고 하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실존 인물이었던 이 영화의 주인공이 바로 이소룡의 스승이고 항일투쟁의 선봉에 섰던 훌륭한 분이니 견자단 입장에서도 엄청난 부담을 느꼈을 법 합니다.
이소룡은 스승 엽문에게서 배운 영춘권을 토대로 자신의 절권도를 창안했다고 합니다. 성룡처럼 아기자기한 아크로바틱한 몸동작도 아니고 이소룡처럼 과장된 표정도 아닌 무표정한 얼굴에 간결하고 절도 있는 동작이 멋져보여 무술도 어느 경지에 이르면 예술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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