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후 1시30분 단둥을 출발해 3시간을 달리던 선양(瀋陽)행 고속버스가 본계(本溪)시를 지날 무렵 갑작스럽게 뿌연 연기를 내면서 멈춰서 버렸다.
평소 3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었던 거리였으나 고속도로 공사로 인해 국도로 우회하는 바람에 1시간이 더 걸려야 하는 상황에서 차까지 퍼지자 벌컥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군중심리를 이용해 득달같이 달려드는 중국인들의 예의 '벌떼 근성'을 지켜볼 수 있겠다 싶어 내심 기대도 됐다.
그러나 땀범벅에 시커먼 기름까지 얼굴에 뒤집어쓴 채 무던히 애를 쓰는 기사의 노력에도 한참이 지나도록 꿈쩍 않는 고속버스를 지켜보는 승객들의 태도는 예상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어느 누구도 큰 소리로 따지거나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이 없었다. 선양에서 갈아타기 위해 예매해놓은 기차시간에 맞출 수 없겠다며 지나가던 차를 잡아타던 몇몇 승객들도 차장의 환불 약속만 받고는 군소리없이 자리를 떴다.
1시간이 지난 뒤에야 도착한 새 버스의 20대 여자 차장은 승객들에게 거듭 사과하며 60일 이내에 환불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솔직히 이때만 하더라도 중국인들의 속성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자부했던 기자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둘러대는 말일 뿐 나중에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배상을 미루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빗나간 추측에 불과했다. 회사측은 아예 새로 보내온 버스에 환불해줄 돈까지 마련해놨고 버스 기사와 차장은 선양에 도착하자마자 승객들에게 요금을 돌려줬다.
이날 회사측이 승객들에게 환불해준 액수는 50위안. 버스요금 70위안의 상당 부분을 승객들에게 되돌려준 것이다.
중국이 변하고 있다. 성공적이라고 자평하는 베이징 올림픽 개최 이후 한없이 느긋하고 답답할 정도로 느려 자신들 특유의 문화라고 자부까지 하던 '만만디(慢慢地)'가 사라진 대신 '콰이콰이(快快)'가 자연스런 생활 모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1965년 지하철 건설 계획이 처음 세워졌던 광저우(廣州)는 문화혁명과 기술부족으로 네차례 굴착이 중단되면서 30년이 넘도록 공사가 지지부진했지만 1989년 30㎞의 노선을 첫 개통한 뒤 지금까지 115㎞를 건설했으며 이 가운데 대부분의 노선이 최근 3년내에 건설된 것이다. 내년 말까지 133㎞의 노선이 추가로 개통될 계획이다.
주민 반발과 지역별 나눠먹기식 예산 분배, 보상비 부담 등으로 사회간접자본 건설 때마다 무던히 애를 먹는 우리로서는 오히려 부러울 만큼 최근 중국의 집중력과 추진력, 속도전은 놀랍기만 하다.
불친절하기로 유명한 중국의 서비스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인들이 주로 찾는 선양의 시타(西塔)거리에 늘어선 찜질방과 식당에서는 이른 아침 종업원들을 모아놓고 친절교육을 시키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주5일 근무제가 오래전부터 시행되고 있는데도 전화국은 토요일에도 전화와 인터넷 신청을 받고 있으며 5일이 걸릴 것이라던 창구직원의 말과는 달리 전화를 설치하는데 불과 이틀이 걸렸고 토요일 오전 신청한 인터넷은 그날 오후 설치가 마무리됐다.
북새통을 치며 창구에 몰리고 새치기를 하다 고성이 오가는 말다툼을 하던, 수년 전에는 흔했던 모습들은 공공기관에서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대기번호표에 따라 업무가 처리되기 때문에 민원인들은 자리에 앉아 느긋하게 순서를 기다리면 된다.
담배꽁초 투성이였던 기차역과 버스 터미널 대합실에서는 엄격하게 금연이 실시되고 있으며 심지어 한국에서는 가능한 터미널 승강장에서도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고 있다.
물론 교통신호를 무시한 채 무단횡단을 일삼거나 인맥을 통해야 빠르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관시(關系)'가 여전히 통용되고 있고 공무원들의 부정부패가 사회적 문제로 지적되고 있지만 어쨌든 올림픽 이후의 중국은 변화하고 있음에 틀림없어 보인다.
선양의 한 한국 교포는 "자원이 없는 한국이 중국보다 우위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특유의 부지런함과 서비스 정신이었는데 중국이 변하는 모습을 보면 더럭 겁이 난다"며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우리만의 새로운 코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속버스에서 만난 20대 여성 장옌(張艶)은 이런 중국의 변화에 대해 "베이징 올림픽 이후 우리도 문화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며 "남들보다 부지런하고 서비스가 좋아야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잡으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웃어 보였다.
(선양=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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